인간적인 가치와 사랑을 나누는 삶은 미완성이 아닌 완생
사랑을 담은 이전의 두 요리를 통해 운명적인 만남, 사랑하는 이와 보내는 하루를 맛보았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을 함께하는 이야기를 음미할 차례이다. 일생토록 누군가의 곁에 남는 것은 깊은 진심을 필요로 한다. 《제리 맥과이어》는 그 진심이 완성하는 사랑의 단면을 담았다. 책임감을 버리고 자신이 부족한 모습이더라도 상대와 함께하려 할 때, 비로소 사랑은 완전한 형태가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삶을 완전하게 채워준다. 그래서 사랑은 '미완의 생을 완생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12번째 '담백한 영화 요리'《제리 맥과이어》는 미완성을 채워주는 사랑을 다채로운 맛으로 선보인다.
몇 해 전《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가 나왔다. 영원한 명작《노팅힐》의 '줄리아 로버츠' 배우가 주인공이어서 많은 팬들의 호응을 받은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이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삶의 본질을 꿰뚫은 제목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영화의 제목만큼 삶을 간단히 표현하는 문구가 없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잘 먹고 새로운 꿈을 꾸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그래서 행복은 외적인 가치로 표현되지 않는다. 돈과 명예, 인정받는 삶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만 그 안에 무언가 채워져 있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속이 비었다면 마음이 채워질 리 없다. 유능한 스포츠 에이전시의 매니저 '제리 맥과이어'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대 사람'으로 일하는 본질을 잊은 그에게 행복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행운아였던 것이,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선수들을 소중히 대해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영화《제리 맥과이어》는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다. 'Timeless Classic'이라 불리는 명작들을 생각해보면《어바웃 타임》이나《러브 액츄얼리》처럼 영화의 주제를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또는《노팅힐》처럼 지명을 쓰기도 하고《타이타닉》처럼 배경이 된 장소를 제목으로 삼기도 한다. 그렇기에 《제리 맥과이어》는 영화의 타이틀을 꿰찬 인물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관객들의 기대와 다르게 제리는 소위 말하는 영웅적 캐릭터와 거리가 멀다. 과거의 그는 겉이 번지르르한 빈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제리는 선수들과 관계를 맺을 때 거액의 계약금에만 집중했다. 더 많은 계약을 따 우수 고객 명단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고,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사랑에 늘 실패했다. 오죽하면 총각파티에서 그의 전 연인들이 '사랑을 못하는 제리'를 주제로 인터뷰를 하였을까.
이런 제리가 어느 순간 각성을 한다. 제리의 변화는 자기혐오와 성찰에서 출발했다. 그는 선수들을 부상과 슬럼프에서 지켜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진다. 그리고 동료들을 둘러보며 눈앞에 계약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본다. 참다못한 제리는 인간적으로 일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업무 지침서'를 쓴다. 그리고 밤새 수백 장의 지침서를 프린트해 하나의 책자로 만든다.
지침서의 내용은 이러했다. 더 적은 선수들을 매니징 하는 대신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기. 선수들을 부상과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보호하고 인간적인 유대감을 맺기. 그리고 지침서의 끝에 매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제리의 동료들은 그의 변화된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제리가 말하길 '회사에 있는 물고기도 매너를 아는데' 동료들은 아직 제리의 내면적 그릇에 무엇이 새로 채워졌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국 제리는 물고기 한 마리와 '도로시 보이드'라는 경리직원 한 명을 데리고 해고당한다.
《제리 맥과이어》가 흔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성장 이야기로 사랑받는 이유는, 제리의 이야기가 동료, 아내, 그리고 인생에 대한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제리가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동료에 대한 책임이었다. 그는 회사에서 나온 후 1인 매니지먼트 사를 차리는데 첫 번째이자 유일한 고객이 '로드'였다. 그리고 제리는 로드를 만나며 점점 변화한다. 로드가 대형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의 관리를 거절하고 제리를 택한 이유는 그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로드는 제리가 잊고 살던 가치를 일깨워준다. 이전에는 이름과 전화 몇 통으로 고객 명단을 확보하던 제리가 로드를 위해 직접 발로 뛰며 계약을 성사시키고 선수의 잠재력을 인정받으려 애쓰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였지만 제리는 그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책임감을 로드를 통해 느낀다.
로드는 제리가 계약을 따 내지 못해도 그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자 기뻐한다. '이제야 대화를 하네! 드디어 우리가 소통을 했어! 그렇지, 바로 이거야!' 하는 자세로.
그리고 제리가 돈 한 푼 없이 커리어 경력이 망했을 때에도 로드는 그의 옆에 남는다. '제리 네가 말하면 그냥 그대로 할게. 너를 믿으니까. 네가 이 연봉이 최선이라 하면 받아들일게.' 일에 있어서 로드는 아내의 조언보다도 매니저인 제리의 말을 더 신뢰한다. 그런 그를 보며 제리는 성공할 선수를 길러내는 것에서 기쁨을 얻는다.
제리는 1인 매니지먼트를 운영하며 아내에 대한 사랑도 새로이 깨닫는다. 그는 처음에 충동적으로 도로시와 결혼하는데 자신이 진정 그녀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점차 제리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제리를 지켜보던 도로시는 큰 용기를 낸다. 그녀는 제리에게 '난 행복을 원했는데 당신은 책임만 맡은 거야'라고 말한다. 그가 자신과 결혼한 이유가 의리와 책임감 때문이었음을 일깨워준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제리는 사랑이 책임으로 치환된다고 생각한다. '의리로 결혼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 나는 친구로서는 좋지만 애인으로서는 꽝이야, '라고 말이다.
도로시가 그를 떠나자 비로소 제리는 자신이 사랑할 용기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총각파티에서 그의 전 연인들이 말해주었던 것은 모두 진실이었다. 누군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을 내어 보지 못했던 제리. 제리는 완전한 삶에 아내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리가 힘든 순간에 도로시는 그가 커리어를 회생하는 것을 지지해주었다. '정말이야, 언니가 뭐라 하든 상관없이 그이의 이상을 사랑하고 그이의 현재 모습도 사랑해'라며 당당히 고백했던 도로시. 그녀는 제리가 사랑을 할 수 있게 도왔고 제리처럼 미완성이었던 삶도 완생으로 거듭날 기회를 주었다.
제리 맥과이어가 남긴 것은 업무 지침서였지만 실상 영화는 '제리 맥과이어의 인생 지침서'를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아내를 사랑하고 동료를 사랑하며 인생을 사랑하라.' 삶에서 사랑을 빼면 0이 된다. 주변 사람들과 나를 돌아보고 자신을 속에서부터 사랑으로 채울 때 비로소 삶은 미완이 아닌 완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