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의 만남이 이끈 평생의 사랑
이번 메인 디쉬는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더욱 감칠맛을 더해줄 요리들이다. 이전의 요리들이 청춘의 밝은 꿈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하나의 꿈을 품다 보면 그 꿈만큼 아끼는 사람이 삶에 들어온다. 한 방향을 보며 나아가는 두 사람, 사랑. 사랑의 단면을 보는 것만큼 맛있는 요리는 없다. 사랑은 놀랍도록 빠르게 찾아온다.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랑은 즉흥이 만들어낸 평생의 마법이다. 기차에서 마주친 두 남녀가 해가 뜨기 전까지 함께 보내는 하루,《비포 선라이즈》를 통해 사랑의 깊은 풍미를 느끼자.
운명적인 사랑이 있을까. 누구나 꿈꾸는 사랑이지만 살다 보면 운명 같은 로맨스는 기억 저편으로 아득한 꿈처럼 사라진다. 그런 세상에서 하루 만에 운명을 만든 두 남녀가 있다. 그것도 로맨스와는 거리가 먼 비엔나행 기차에서 말이다. 각기 여행의 목적은 달랐지만 우연한 대화로 서로에게 이끌린 '제시'와 '셀린느'는 아무 계획 없이 함께 비엔나에 내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즉흥성이 펼치는 마법에 하루를 맡긴다.
셀린느는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다니는 학생으로 개강 시점에 맞추어 파리로 향하고 있었다. 한편 미국에서 온 제시는 여자 친구와 끝을 맺고 기차에 타 스스로를 위로하던 중이었다. 각자의 이유로 비엔나행 기차에 탄 두 사람은 모두 책을 읽고 있었는데 우연히 한 커플의 다툼을 본다. 그러다 제시가 건너편 좌석에 앉은 셀린느와 눈이 마주치고 그녀에게 끌림을 느낀 제시는 셀린느에게 말을 걸어본다.
"저 두 사람 왜 다투는지 알아요?" "저도 몰라요, 미안해요. 독일어는 잘 못하거든요."
모르는 커플의 다툼은 제시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를 핑계로 셀린느에게 말을 붙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셀린느가 읽던 책은 조지 바타유 작가의 '마담 에드와다'였고 제시는 킨스키 저자의 '내게 필요한 건 사랑뿐'이라는 책을 보고 있었다. 실용적이고 깊이 있게 사회 문제를 탐구하는 셀린느, 감수성이 풍부해 세상을 열정적인 로맨스의 장으로 바라보는 제시.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책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의 다름을 느끼며 동시에 상대에게 더 끌리게 된다.
커플의 다툼을 피해 식당으로 간 제시는 셀린느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원래 목적지인 파리로 가지 말고 자신과 같이 비엔나에 내리자는 것. 철두철미하고 계획을 중시할 것 같던 셀린느는 잠시 고민하다 의외로 제시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다. 나중에 셀린느가 그와 비엔나에 내린 이유를 설명한다. 한 레스토랑에서 셀린느와 제시는 전화를 연결한 친구로 가장해 역할 놀이를 하는데, 이때 둘은 서로의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기차에서 만난 남자랑 비엔나에서 내렸거든, 아직도 비엔나야." - 셀린느
"너 미쳤어?" - 제시
"아마도." - 셀린느
"왜 같이 내렸어?" - 제시
"사실은 나도 같이 내리고 싶었어. 그전에 짧게 대화를 나눴는데 너무 멋있어 맘을 뺏겼거든." - 셀린느
평소 학구적이고 치열하게 삶을 사는 셀린느에게 이런 '즉흥성'은 제시의 물음대로 미친 것처럼 보이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셀린느의 마음은 확고했다. 뜨겁게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것에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그녀는 열정이 넘쳤다. 그런 그녀에게 '계획'보다 더 잘 어울리는 단어는 '우연, ' '만남, ' 그리고 '즉흥'이었다.
제시와 셀린느는 함께 하는 하루 내내 '즉흥성'의 힘을 보여준다. 짜 맞추어진 만남보다 우연한 마주침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 계획된 여행보다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길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것.
둘은 트램을 같이 타고 음반 가게에서 음악을 듣는다. 국적도 언어도 다른 두 남녀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트램에서 오래된 친구처럼 대화하는 장면은 그저 놀랍다. 셀린느는 서슴없이 자신의 옛사랑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수영 선수와 사랑에 대한 성명서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 기억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비범했던 그녀의 모습이 드러나고 사랑에 있어서도 주체적으로 살고픈 그녀의 생각이 투과된다.
대범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영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철학적 탐구의 주제가 되는 내용도 셀린느와 제시가 이야기하면 그저 일상적인 대화처럼 느껴진다. 영화 내내 '대사'로 두 사람의 관계와 성격을 전달하는 것은 《비포 선라이즈》 만의 특징이다. '대사의 숲'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셀린느와 제시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큰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고 그들이 머무는 장소도 아무 느낌 없이, 물 흐르듯 변화한다.
애초에 대사라는 것은 그 어떤 영화적 장치보다도 사랑을 표현하는 최적의 방법이기 때문일까. 셀린느와 제시처럼 우연히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면, 그들처럼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기차에서 내려 같이 걷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어디 정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음반 가게에 들어가 부끄러운 듯 서로를 곁눈으로 볼 것이다.
다음에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해줄 대관람차를 찾겠지. 마음을 확인하고 놀란 두 사람은 아무 일 없는 척 거리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뉴브 강을 따라 걷다 한 시인을 마주한다. 그 모든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인생껏 쌓아온 가치관과 순간의 감정들을 자유롭게 나눈다.
이렇게 대사와 정처 없는 발걸음으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여정은 더없이 즉흥적이지만 더없이 긴 여운을 남긴다. 운명적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 소망을 채워주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한다면 이렇게,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 요리의 타이틀인 《비포 선라이즈》가 보여주듯, 셀린느와 제시는 해가 뜨기 전까지 함께한다. 그들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은 '즉흥성'을 높여주는 배경이 된다. 특히 강가에서 만난 시인이 시를 써주는 장면만큼 즉흥적인 여행을 잘 보여주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발길 닿는 데로 걷다가 만난 시인에게 작문을 하나 부탁하고 다시 목적지 없이 걷는 것.
해가 떠서 헤어지기 전까지 두 사람은 '즉흥'이 이끌어낸 서로의 사랑에 책임을 진다. 다뉴브 강 위의 페리에서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며 관계의 영원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출이 지나면 다시 보기 힘들겠지, 하지만 성인답게 이성적으로 생각해.' - 셀린느
'주소랑 전화번호를 주고받지만 결국 편지 한 통, 전화 한두 통으로 끝나, 왜 사람들은 관계가 영원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 셀린느와 제시
'이게 다라고 생각하지? 오늘 밤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 제시
(글의 흐름을 위해 대사를 조금 줄여 간접 인용을 사용했다.)
셀린느와 제시는 다시 보기 힘들 것을 알면서도 서로 전화번호마저 주고받지 않는다. 두 사람은 그저 그 날을 멋지게 보내고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을 선택한다. 미련 없는 듯 보이지만 제시는 약간의 초조함을 드러낸다. 셀린느에게 '오늘 밤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라고 묻는 그의 모습에서 그녀와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즉흥에서 시작해 즉흥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서로를 그 날의 기억에 두기로 하고 영원한 관계에 대한 소망을 깬다. 연락처마저 공유하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에 겁을 내지 않는 두 사람의 대화는 운명적 사랑의 절정을 보여준다. 운명이란 모르는 새 찾아오기에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 우연한 만남과 즉흥적인 여행이 이끄는 대로 걸어야 한다는 것. 셀린느와 제시가 수많은 대화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그런 것이 아닐까.
영화는 250만 달러의 저예산 영화로, 자연스러운 배경이 '즉흥에서 시작된 운명적 사랑'을 배가했다. 그리고 제시와 셀린느를 연기한 두 배우가 있다.《보이후드》, 《내 사랑》, 《매기스 플랜》 등 국내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영화로 알려진 에단 호크. 《2 데이즈 인 뉴욕》등 굵직한 작품에 참여하고 《비포》3부작의 주연인 동시에 각본에 참여한 줄리 델피. 두 사람이 제시와 셀린느를 맡았기에 영화가 더욱 빛났다. 감성적인 제시와 당차며 사랑스러운 셀린느는 두 배우의 연기를 통해 현실 속의 인물처럼 생생하게 움직인다.
특히 강가의 시인이 셀린느에게 지어준 시에서 '달콤한 케이크와 밀크셰이크, 내 생각을 그대가 알아주길, '이라는 시구는 제시와 관객들이 느낀 그녀의 특징을 정확히 묘사한 구절이다. 더불어 영화의 포스터는 두 사람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우수에 찬 눈동자'를 가진 에단 호크 배우, '금방 짜낸 밀크향과 풀잎 냄새가 나는' 줄리 델피 배우. 두 사람이 완성한 셀린느와 제시는 20여 년이 훌쩍 지나서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어쩌면 운명이라는 것은 대단한 기회가 아니라 사소한 우연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셀린느와 제시처럼 하루 동안의 만남도 평생 남는 사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즉흥이 만들어낸 평생의 마법'이다.
참고한 자료:
https://1boon.kakao.com/WATCHA_PLAY/5f3e360119527f32c56d6d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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