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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있는 밤 Sep 08. 2020

사랑은 일상을 다른 매일로 바꾸는 변주《사랑의 블랙홀》

'뭐든 다른 건 좋지, 오늘은 내일이야' 

《비포 선라이즈》처럼 즉흥의 순간이 이끈 사랑은 늘 새로운 모습으로 펼쳐진다. 연인은 매일 당신의 곁에 있지만 그 사람과 함께 하는 하루는 매번 다르다. 그래서 사랑은 '같은 일상을 다른 매일로 바꾸어주는 변주'이다. 《사랑의 블랙홀》 은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블랙홀 같은 사랑을 보여준다. 이번 요리를 천천히 맛보며 어느새 사랑의 변주에 끌리는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혼자 살아가는 날들은 대부분 같은 하루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 살며 일과가 다른 특징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나의 같은 일상을 다른 매일로 바꾸어주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어떨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기다려질 것이다. 《사랑의 블랙홀》의 원제는 'Groundhog day'이다. 영어로 '성촉절'을 뜻하는 이 행사에서는 마못이 주인공이다. 매번 똑같은 일기예보와 성촉절 보도를 하던 기상캐스터 '필'이 성촉절에 블랙홀처럼 자신을 끌어당기는 사랑을 만난다.


기상캐스터 '필' ㅣ 네이버 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원제와 한글로 번역된 제목 모두 의미가 있다. 먼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충실히 반영한 원제는 작품에 대한 몰입을 돕는다. 이와 달리 한글 제목은 영화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번 영화 요리가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랑을 다루었기에 그 감정을 블랙홀이라 묘사한 것이 와 닿는다. 

 블랙홀은 주변의 것을 끌어당기며 영향력을 끼치고 주의의 대상인 동시에 신비의 대상이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이다. 뻣뻣한 성품의 필은 '리타'를 만나며 알게 모르게 그녀의 긍정성에 몰입된다. 그래서 필에게 리타는 자신을 더 좋은 쪽으로 바꾸어주는 신비로운 사람이다.


성촉절을 보도하는 필과 리타 ㅣ 네이버 영화


 평소 이기적이고 말도 비꼬아했던 필은 유명 기상캐스터이다. 매년 성촉절에 펑서토니라는 도시에서 행사를 보도하는데, 마못이 다가오는 겨울의 지속기간과 날씨를 예측하는 것을 보는 축제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이것에 관심을 가지고 각 지역의 방송국도 참여해 행사를 보도한다. 리타도 필의 후배로서 함께 성촉절 행사에 참여한다. 하지만 매년 같은 축제를 보도하다 보니 필은 이 'Groundhog day'에 흥미를 잃게 되고 기계적으로 축제를 보도한다. 


 올해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한 필은 성촉절을 보도한 후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다음 날 집으로 가리라 생각한 필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눈을 떠 보았더니 2월 2일, 다시 성촉절인 것이다. 이것을 믿지 않는 필은 다시 잠자리에 누워보지만, 아침 6시에 알람이 울리면 어김없이 같은 하루가 펼쳐진다.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필 ㅣ 네이버 영화


 이렇게 영화에 판타지가 더해지며 아이러니하게도 로맨스의 힘이 배가된다. 필은 점차 똑같은 하루를 겪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하든지 다음날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한다. 비싼 자가용을 사 거칠게 운전을 하고 코스프레를 한 채로 영화관을 방문한다. 또 그는 살이 찌는 것에 대한 걱정 없이 내키는 대로 마음껏 먹는다. 그의 사정을 알 리 없는 리타는 막무가내로 살아가는 필을 이해하지 못한다. 


  겉보기에 필과 리타는 상반된 성격을 지녔지만 사랑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었다. 똑똑하고 당찬 리타의 성품에 반한 필은 그녀를 더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는 매일 같은 하루를 살기에 사랑에 진전이 없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필은 리타에게 다가간다.


리타의 취향을 알아가는 필 ㅣ 네이버 영화


 매일 같은 하루를 사는 장점이 있다면, 사랑의 걸림돌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이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간여행을 하며 과거를 바꾸었듯이, 필도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리타의 취향을 완벽히 파악한다. 그는 매일 똑같은 장면을 수백 번씩 보며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평소 리타가 어떤 주류를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여름마다 어떤 여행지를 찾아가는지, 프로듀서로서의 꿈이 무엇인지 등. 리타는 필이 자신을 완벽히 이해해주는 사람이라 생각하게 된다. 타임루프에 빠진 필이었지만 리타의 입장에서 그는 여태껏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필에게 화가 난 리타 ㅣ 네이버 영화


 필은 리타와 매일 눈싸움을 하고 음료수도 마신다. 처음에 그는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만 생각했지만 점점 리타의 맞춤형 연인이 되기 위해 애쓴다. 타임루프를 좋지 않은 방향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필의 마음에 리타도 부담을 느낀다. 그녀는 필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사랑이 쉬울 것이라 생각했던 필은 리타에게 대차게 거절을 당한다. 


 결국 필은 매일 같은 하루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리타에게 거절당하는 것이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필은 희망을 잃는다. 매일 같은 하루를 산다는 것은 내일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완전히 잊는다는 뜻이다. 관계가 끊임없이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희망을 잃은 필 ㅣ 네이버 영화


 여기서 《사랑의 블랙홀》은 《어바웃 타임》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자에서 주인공 팀은 타임슬립을 하며 메리와 사랑을 이루지만, 전자에서 필은 무한 타임 루프 속에서 사랑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 필의 입장에서 매일 자신만 사랑을 기억하고 리타는 늘 새롭게 자신을 바라본다. 그래서 필은 자살을 택한다. 그럼에도 그는 6시에 어김없이 성촉절 하루를 맞이한다.


 하지만 필이 반복되는 하루의 굴레를 깨기 위해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자살이 아닌 리타의 구원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해가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리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미친 사람처럼 보이더라도 사랑하는 이에게만큼은 솔직해지고 싶은 그의 마음이었다.

 

 리타는 처음에 필의 고백을 믿지 않지만, 처음 온 레스토랑 안에 있는 모든 손님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그를 보며 그의 말을 조금이나마 믿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위로의 차원에서 필과 같이 있어주지만, 그가 깨어나면 어김없이 곁에 리타가 없다. 


리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필 ㅣ 네이버 영화


 결과적으로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빈정대는 성격에 자신밖에 몰랐던 필도 리타에게만큼은 멋진 사람이 되고자 최선을 다한다. 


'당신은 나한테 과분해, 당신처럼 상냥한 사람은 처음이야, 할 수만 있다면 평생 당신의 곁에서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 


이렇게 말하는 필은 그 순간에 진심이었다.


 이처럼 사랑이 한 사람의 변화에 있어 시작점이 될 수는 있지만 사랑만이 긍정적 변모의 원동력은 아니다. 《사랑의 블랙홀》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무한 타임 루프 속에서 필은 스스로 성장한다. 주변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그가 동네 사람들을 돕기 시작한다. 방송국 동료인 '래리'도 챙겨주고 가난한 노인을 하루 종일 돌보며 식사도 사 드린다. 또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구하기도 하고 도로에서 펑크가 난 타이어도 고쳐준다. 


동네 사람들을 돕는 필 ㅣ 네이버 영화


 그렇게 선행을 베풀며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좋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과거 필이 리타의 취향을 파악해 사랑을 얻으려 했을 때 그녀는 그를 사기꾼이라 부르며 뺨을 때렸다. 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동네 사람들을 도와주는 필은 리타에게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제는 리타가 필을 선택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유명한 '눈사람 장면'을 탄생시킨다. 필은 더 이상 리타의 마음을 얻으려 억지로 노력하지 않는다. 리타가 그를 잊고 관계가 원점에 놓인다 해도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필은 그저 리타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행복감을 얻는다. 


'난 당신을 눈 감고도 조각할 수 있어. 내일이나 남은 평생이나 난 지금 행복해. 당신을 사랑해서.' 


리타에게 눈사람을 조각해 주며 한 필의 말은 진심이었다.


눈사람을 조각하는 리타와 필 ㅣ 네이버 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현재를 의미 있게 살아라'는 이야기를 한다. 필처럼 매일 같은 하루를 살고 내일 리셋이 될지라도 그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리타를 만난 후 필의 변화를 보면 그가 이기적인 사람만인 것은 아니었던 듯싶다. 내면적으로 좋은 사람이었지도 모른다. 같은 하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최대한 잘 살아보려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필이 리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사랑하는 법을 배웠을 때, 리타가 그를 먼저 사랑하고 그의 타임루프가 부서진다. 


사랑으로 타임루프가 부서진 필 ㅣ 네이버 영화


 '뭐든 다른 건 좋지, 오늘은 내일이야, '라고 말하는 필. 관객들에게도 그의 대사는 여운을 남긴다. 1년 365일 반복되던 오늘이 내일이 된 기분. 그리고 그 내일을 만들어 준 데에는 필을 먼저 사랑하기로 결심한 리타가 있었다. 그래서 사랑은 같은 일상을 다른 매일로 바꿔주는 놀라운 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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