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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

by 감자발

술은 마법과 같아서 같이 마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얻을 수도 있지만

지나치면 인생의 큰 오점을 남길 수도 있다.


40이 되던 해에 난 술을 끊기로 결정하고 벌써 7년째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원래 술을 잘 먹지 못하는 편이라 절제하면서 먹어야 하는데

일단 술이 들어가면 정신을 차리지 못 할 정도로 부어대니

지난 20년 술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건 절망과 상처 뿐이다.

특히 술을 마시면서 안주도 제법 많이 먹는 편인데

대책없이 먹다가 술에 취하면 위에서부터 신호가 온다.


‘적당히 먹어야지, 적당히 먹어야지’

하지만 정작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술안주를 다시 토해내고 내용물을 확인 해야 하는가?

또 아침에 일어나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 잡아야만 하는 것인가?


술이 안 깬 비몽사몽의 몸으로 밤새 저질러 놓은 오물들을 정리 하는

가족들을 보고 있노라면 수치스럼움이 극에 달했다.

장모님, 와이프, 처제 할 것 없이 민폐끼치기 일수였고

화가 난 와이프는 소리를 지르며 이혼 서류를 프린트 했다.

물론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각서까지 써서 무마되긴 했지만

술을 계속 먹는 한 그냥 시한폭탄의 시간만 갈 뿐이다.


어느 추운 겨울, 역시나 술을 거하게 걸친 날이었다.

그날은 장모님 댁에 와이프와 아이가 가 있었다.

(아이가 어렸기에 친정에 가 있는 날이 많았다.)


우리집도 아니고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하면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분명히 잠을 청할때는 나 혼자 였는데

잠결에 눈을 떠 보니 4명 정도가 같이 자고 있었다.

아마도 와이프와 아이 그리고 처제가 같이 자고 있는 듯 했다.


보일러를 튼 바닥이 뜨끈뜨끈 해서 그런지 더더욱 취기가 올라왔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꾸륵꾸륵 역시나 위에서 난리가 나고 있었다.

들어가 있는 음식을 지금 당장 내보내야 한다는 아우성이었다.


‘안돼! 참아 화장실로 가자! 제발... 그때까지만...’

난 눈을 부릅 뜨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겠다고,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까지 가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지만,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이미 누워 있을때 부터 시작된 구역질을 막을 길은 없었다.


입을 틀어 막고 최대한 빨리 화장실 쪽으로 가려 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심지어 화장실은 너무 멀었다.

꾹 다문 입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정 없이 열려지고 말았다.


“우 우웁~”

난 있는 힘껏 내 작은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지만

토사물들은 여기 저기로 줄줄 흘러 나왔고


“우~ 웨~엑~”

더 이상 버티기 힘든 나는 한 무더기 토사물을 시원하게 쏟아 냈다.

쏟아진 토사물은 거실 여기 저기에 튀었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화장실로 도착한 후 또 한바탕 쏟아내는 소리에

사람들은 잠을 설쳤고

이윽고 여기 저기서 내가 흘린 토사물에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이게 뭐야~ ”

“으윽~ 내 머리에다가 아이 참~”

“으웩~”


이런 저런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뻗어 버렸다.

‘제기랄 술을 먹고 토를 할꺼면 최소한 화장실 근처에서라도 잠을 자야 하는거 아닌가?

제일 멀리 떨어져서 잠을 자다니...’

후회 해 봤자 때는 늦었다. 대형사고는 이미 터진 뒤였다.


해가 중천에 뜨고 실눈을 떠 보니 거실 풍경은..

여기저기서 청소를 하고 토 묻은 이부자릴정리하고 누군가는 화장실을 청소했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다.


그날 하루 종일 뻗어 밤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낮에는 도저히 일어나서 얼굴을 내밀 용기가 없없다.

다들 말을 아꼈지만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


‘정말 정말 미안합니다. 모두들...’


지금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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