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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가체프 Apr 12. 2022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언어의 온도> 이기주 지음

  위로의 표현은  익은 언어를 적정한 온도로 전달할  효능을 발휘한다. 짧은 생각과 설익은 말로 건네는 위로는 필시 부작용을 낳는다.

  "  "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이런 멘트에 기운을 얻는 이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기력조차 없는 사람 입장에선 "기운 "라는 말처럼 공허한 것도 없다. 정말 힘든 사람에게 분발을 종용하는  위로일까, 아니면 강요일까.                                      <언어의 온도> p 69









유산을 하고 오롯이 상실의 아픔을 감내하고 있던 하루 중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유산했다는 사실을 내 입으로 주변에 알려야 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말, 입 밖으로 내기엔 아직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없는 데 있는 척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슬픔에 매몰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음과 동시에 현실을 인정하고 빨리 털고 일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예정일이 언제인지 확인차 연락한 친구,

임산부가 왜 이리  살이 빠졌냐는 동네 엄마,

안정기가 되면 만나자고 만남을 미루던 직장 동료…


어쩔 수 없이 전하게 되는 사실에 상대방은 하나같이 당황했고 눈물짓기도 했다.

괜히 미안했다…

참 괴로웠다…


힘든 일을 겪은 건 나인데 도리어 내가 미안해야 할 상황이라니...


더 괴로운 건 사실을 전달한 후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마음의 상태였다.




이제 좀 괜찮아?

힘내세요!

또 가지면 되지.
 
 


무슨 말을 기대하고 전한 건지, 으레 돌아오는 그들의 반응에 나는 불을 뿜었다가 냉소적인 말을 내뱉다가 반복이었다.

 


너라면 괜찮겠니?

이런 일을 겪고 어떻게 힘을 낼 수 있을까?

임신이 그렇게 쉬운 일이었나?



그들은 정말 내가 괜찮기를 바라고 힘내기를 바라여 그렇게 말한 것이다. 너무 뜨겁거나 혹은 너무 차가웠던 그때의 나에게 그 말의 온도는 제대로 와닿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이 참 많은 듯하다.

<언어의 온도> p 67


 
 


그분에게도 유산 소식을 전했다.

‘또 이런저런 예상 가능한 답변이 오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이번에는 평정심을 유지하겠다는 대단한 결의 아닌 결의를 했다.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나는 더 뜨거워지지도, 차가워지지도 않았다.

뜨뜨미지근한 적당한 36.5도, 사람의 체온을 회복하는 듯했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메시지였다.

몸은 괜찮으세요? 힘내세요! 잘 될 거예요. 같은 말이 없어

특별하다면 특별했던 위로의 말이랄까.


이 한마디를 얻기 위해 나는 그렇게 뜨거운 말로 나를 지져 대고, 차가운 말로 상대를 얼어붙게 했던가!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상대에 대한 '앎'이 빠져 있는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찬찬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 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내도 늦지 않을 거라고 본다. <언어의 온도> p 70





나는 오늘도 읽고 쓴다.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미라클 미타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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