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표현은 잘 익은 언어를 적정한 온도로 전달할 때 효능을 발휘한다. 짧은 생각과 설익은 말로 건네는 위로는 필시 부작용을 낳는다.
"힘 좀 내"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이런 멘트에 기운을 얻는 이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힘 낼 기력조차 없는 사람 입장에선 "기운 내"라는 말처럼 공허한 것도 없다. 정말 힘든 사람에게 분발을 종용하는 건 위로일까, 아니면 강요일까. <언어의 온도> p 69
유산을 하고 오롯이 상실의 아픔을 감내하고 있던 하루 중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유산했다는 사실을 내 입으로 주변에 알려야 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말, 입 밖으로 내기엔 아직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없는 데 있는 척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슬픔에 매몰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음과 동시에 현실을 인정하고 빨리 털고 일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예정일이 언제인지 확인차 연락한 친구,
임산부가 왜 이리 살이 빠졌냐는 동네 엄마,
안정기가 되면 만나자고 만남을 미루던 직장 동료…
어쩔 수 없이 전하게 되는 사실에 상대방은 하나같이 당황했고 눈물짓기도 했다.
괜히 미안했다…
참 괴로웠다…
힘든 일을 겪은 건 나인데 도리어 내가 미안해야 할 상황이라니...
더 괴로운 건 사실을 전달한 후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마음의 상태였다.
이제 좀 괜찮아?
힘내세요!
또 가지면 되지.
무슨 말을 기대하고 전한 건지, 으레 돌아오는 그들의 반응에 나는 불을 뿜었다가 냉소적인 말을 내뱉다가 반복이었다.
너라면 괜찮겠니?
이런 일을 겪고 어떻게 힘을 낼 수 있을까?
임신이 그렇게 쉬운 일이었나?
그들은 정말 내가 괜찮기를 바라고 힘내기를 바라여 그렇게 말한 것이다. 너무 뜨겁거나 혹은 너무 차가웠던 그때의 나에게 그 말의 온도는 제대로 와닿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이 참 많은 듯하다.
<언어의 온도> p 67
그분에게도 유산 소식을 전했다.
‘또 이런저런 예상 가능한 답변이 오겠지’라는 생각을 하며이번에는 평정심을 유지하겠다는 대단한 결의 아닌 결의를 했다.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나는 더 뜨거워지지도, 차가워지지도 않았다.
뜨뜨미지근한 적당한 36.5도, 사람의 체온을 회복하는 듯했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메시지였다.
몸은 괜찮으세요? 힘내세요! 잘 될 거예요. 같은 말이 없어
특별하다면 특별했던 위로의 말이랄까.
이 한마디를 얻기 위해 나는 그렇게 뜨거운 말로 나를 지져 대고, 차가운 말로 상대를 얼어붙게 했던가!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상대에 대한 '앎'이 빠져 있는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찬찬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 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내도 늦지 않을 거라고 본다. <언어의 온도> p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