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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가체프 May 20. 2022

그의 출근길 플레이 리스트

마야_나를 외치다

홀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치이는 조직 생활에서 제 한 몸 추스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까. 반복적인 하루를 보내며 간신히 버티는 날이 수두룩하기 때문일까.



<언어의 온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 p 131








연애 시절, 좋아하는 노래를 서로에게 소개해 주기 바빴다.

이어폰을 한 짝씩 나누어 끼고 같이 들었다.



결혼하고 나서 자동차를 장만했다.

블루투스를 처음 연결하던 날, 그 서라운드를 잊을 수 없다.

함께였던 평일 출퇴근길, 주말 나들이길에 우리의 플레이 리스트는 그렇게 반복 재생되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함께 음악 감상 할 시간이 없었다.

차 안에는 아기 상어, 뽀로로, 노부영 노래만이 울려 퍼졌다.



우리의 플레이 리스트가 잊혀져 갈 무렵, 

공유하고 있던 음악 재생 앱에서 그의 "출근길" 플레이 리스트를 발견했다.



곤히 자고 있는 나와 아이를 뒤로 한 채,

이 노래를 들으며 매일 혼자 출근하는 신랑을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새벽이 오는 소리 눈을 비비고 일어나
곁에 잠든 너의 얼굴 보면서

힘을 내야지 절대 쓰러질 순 없어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뒤쳐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


<마야_나를 외치다>






나와 신랑은 입사 동기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업무를 했던지라 회사 분위기와 업무 강도를 잘 알고 있었다.


야근이 잦았고, 매년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다.


힘들면 그만두라고 아니면 육아 휴직을 쓰라고 해도

그는 힘들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일이 많은 것과 힘든 것은 다르다고 했다.


그는 나와 달리 스트레스에 강했고, 공과 사의 구분이 명확했다.


독박 육아에 지쳐가던 나는

여전히 잘난 척 쟁이인 그를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문득 방금 본 사내의 일상과 낙타의 하루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 사내도 오아시스에 대한 흐릿해져 가는 기억을 붙잡은 채 쑤신 무릎을 부여잡으며 매일 황량한 사막을 횡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가족을 위해.



<언어의 온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 p 132





그는 내 생각보다 나를 훨씬 더 사랑하고,

때로는 힘들어할 줄도 아는

완벽하지 않은 그저 한 남자였다.



토닥토닥

내 사람을 매일 꼭 안아주자!!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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