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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가체프 May 15. 2022

육아 7년 차가 되어서야 알게 된 그의 산후 우울증

<언어의 온도> 애지욕기생_당신이 있어 참 다행입니다.

아이의 7번째 생일 전날 밤, 우리는 아기 때 앨범을 넘겨 보았다.


"엄마, 나 키울 때 힘들었지?"

젖 물고 잠든 사진, 기저귀 가는 사진, 이유식을 바닥에 쏟은 사진, 유모차에 누워 우는 사진을 본 아이는 제법 진지했다.



"조금 힘들긴 했는데 윤서가 너무 너무 귀여워서

괜찮았어."



"엄마는 쉬는 날이 없었어? 토요일, 일요일은 아빠가 회사 안 가니깐 엄마 쉴 수 있잖아."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질문에 신랑을 흘겨보며 대답했다.


"그러게. 아빠는 엄마 없이도 혼자 아기를 엄청 잘 돌보는 사람인데 엄마한테 쉬라고 안 하더라."



신랑과 함께 있을 때 물론 나는 쉴 수 있었다. 허나 온전히 혼자인 시간과 혼자의 공간이 필요했다.


잠자코 있을 줄 알았더니 신랑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아빠는 엄마랑 같이 있는 게 좋았어. 혼자는 무섭고 싫었어."


그리고는 나에게만 들릴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네가 옆에 없었으면 나 너무 힘들어서 그때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몰라. 산후 우울증이었나 봐."







육아 7년 차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전혀 몰랐다. 그저 나의 주말 외출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는 나의 산후 도우미를 자처했다. 한 손으로 아기를 안고 능숙하게 밥도 잘 먹었다. 신생아 목욕도 곧잘 시키고 손톱도 잘 깎아주었다.


밤에 서너 번은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에 매번 그도 같이 깨었다. 수유하는 내 옆을 지켜주는 그가 참 고맙고 든든했다.


그런 그였기에 나 없이 혼자서도 괜찮을 줄 알았다.


일찍 퇴근한 날에는 아이를 목욕시키고 먹이고 재웠다. 평일 야근에 시달려도 주말 출근은 웬만하면 하지 않았던 그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온전히 쉴 수 없었던...

아빠가 처음이었던 그가 오죽 힘들었을까!



그때는 나만 힘들다는 생각에 헤아리지 못했다.

내가 하염없이 신랑의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며, 그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듯이 그에게도 나는 그런 존재였다.




그대에게 내가 있어 다행입니다.
나에게 그대가 있어 참 다행입니다.


서로 기대어 버티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있어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이가 7살이 된 지금도 그는 혼자의 취미 생활 혹은 친구들과 술 한잔의 회포 풀기보다는 나와 맛있는 음식 먹기, 딸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기를 좋아한다. 힘겨운 세상사와 고단한 회사 업무를 이겨낼 힘을 그렇게 충전한다.




"그래요. 당신이 곁에 있어 참 다행인 것 같아요. 나도 당신 덕분에 버티고 있나 봐요."

나는 이 말을 듣고 괜스레 가슴이 울렁거렸다. 한편으론 의문도 들었다. 아니, 환자의 보호자가 환자 덕분에 버틴다니, 무슨 말이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번쩍하고 머리를 스치는 글귀가 있었다.

애지욕기생 愛之欲其生이란 말이 퍼뜩 떠올랐다.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끔 한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이기주 지음 <언어의 온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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