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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Oct 14. 2024

실패한 오늘에 박수를 보내자

오늘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는 아니다

2024 파리 올림픽에는 206개국 10,714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우리나라는 21개 종목 143명의 선수가 출전해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로 종합 8위라는 값진 성적을 얻었다. 


금메달을 향한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을 볼 때면 두 손을 꼭 쥐고 기도하듯이 응원하기도 했다. 결승전 경기가 종료되면 메달 색이 결정된다. 가장 큰 영광은 당연히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돌아가지만, 메달 색을 떠나 최선을 다해 싸운 상대 선수에게 격려와 축하를 전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배드민턴 여자단식경기를 고대했었다. 세계 랭킹 1위인 안세영 선수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그랜드 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대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을 달성한다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팬들이 안세영 선수의 금메달 달성을 간절히 응원했다.


안세영 선수는 준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의 그레고리아 마리스카 툰중 선수를 상대로 2-1로 이겨 결승에 먼저 진출하게 되었다. 과연 어떤 선수와 결승전에서 만나 경기할지 궁금했다. 


여자 단식 두 번째 준결승전은 스페인의 카롤리나 마린(세계 4위) 선수와 중국의 허빙자오(세계 9위) 선수가 붙었다. 허빙자오 선수는 8강에서 천위페이(중국) 선수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한 인터뷰에서 안세영 선수가 천위페이 선수는 자신이 넘지 못할 벽 같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천위페이 선수를 이기고 준결승에 진출한 허빙자오 선수의 실력이 궁금했다. 


우리나라 선수의 경기가 아니라 해설위원 없이 경기를 중계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내 예상과는 다르게 경기가 펼쳐졌다. 큰 키와 스피드, 파워로 경기 시작부터 무섭게 경기를 리드하며, 21:14로 마린 선수가 첫 번째 세트의 승리를 가져갔다. 이변이 없는 한 마린 선수가 결승전에 오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바로 이어 두 번째 세트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마린 선수가 경기를 주도하며 10:5로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마린 선수가 착지를 하며 오른 발목을 접질렸다. 그녀는 통증을 느끼며 주저앉았고 경기는 잠시 중단되었다. 허빙자오 선수도 염려 가득한 얼굴로 마린 선수 곁에 있었다. 


스페인 코치의 응급조치 후 압박 붕대를 오른발에 차고 마린 선수는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숨죽이며 지켜보던 청중들이 그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지만, 앞서 보여줬던 파워풀한 마린 선수의 모습은 사라졌다. 절뚝거리며 어떻게든 경기를 이어나가려고 했지만, 바로 허빙자오 선수에게 1점을 내어줬다. 경기를 진행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마린 선수는 경기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그냥 울음이 아니었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뜨거운 오열이었다. 


결승전이 코앞이었다. 이번 세트만 이기면 올림픽 금메달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꿈이 깨져버렸다. 그 심정을 울음이 아닌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관중이 일어나 마린 선수를 향해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마린 선수의 울음소리와 관중들의 박수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심판이 스페인 감독에게 다가가 경기를 중단할지 물어보았다. 선수도 감독도 결정을 내려야 했다.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슬렀는지 마린 선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중들은 더욱 뜨겁게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고, 응원을 받은 그녀는 관중들을 향해 인사했다.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경기장을 퇴장할 때까지도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에는 모두가 같은 한마음으로 마린 선수의 노력을 인정하고 위로했다. 


안세영 선수와 결승전에서 만난 허빙자오 선수는 2:1로 패해 은메달을 땄다. 안세영 선수는 28년 만에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금메달을 획득과 함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진 시상식 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을 때 허빙자오 선수가 무언가를 꺼내 오른손에 쥐었다. '저게 뭐지' 싶었는데, 자신의 메달과 함께 손에 쥔 것은 스페인 팀 배지였다준결승전에서 부상으로 기권을 한 마린 선수를 기억하기 위해 허빙자오 선수는 시상대에 오르며 스페인 팀 배지를 챙긴 것이다.


선수들은 알 것이다. 올림픽 시상식 단상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을 했는지. 그리고 상대 선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부전승으로 자신이 결승전에 올랐지만 함께 싸운 마린 선수에 대한 의리와 스포츠인으로서의 정신을 스페인 팀 배지로 표현한 허빙자오 선수의 행동에 가슴이 뭉클했다. 


골프의 신이라 불리는 미국 프로골퍼 벤 호건은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인해 10살 때 신문팔이를 했고, 11살에 골프장 캐디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17살에 프로골퍼가 된 것도 가난 때문이었다. 그는 데뷔 10년 만에 첫 승을 이뤘고, 그 후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949년 교통사고로 인해 서른일곱 살의 나이, 최정상의 자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된다. 의사들은 그가 더 이상 골프를 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재활 훈련을 통해 1년 만에 경기에 출전했다. 많은 팬들은 그의 우승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라이벌 샘 스니드에게 1등을 내주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이 실패했다고 비웃었을까? 아니다. 그의 팬들과 신문, 잡지는 드디어 벤 호건이 부활할 준비를 마쳤다며 환호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너무 흔해빠진 위로 같았다. 어차피 사람들은 1등만 기억하고 1등에게만 박수 쳐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허빙 자오 선수와 관중들이 보여준 행동을 보며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언제든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다. 하지만 넘어졌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다.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매번 나에게 싸움을 걸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더 중요하다.

-매니 파퀴아오(필리핀 권투 선수)


혹여 오늘 실패했다고 너무 낙담하지는 말자. 실패했다는 것은 무언가에 도전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의 경험을 했다는 의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실패한 오늘에 박수를 보내자. 그리고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 도전하자. 도전할 용기,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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