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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지에 그려진 사랑(10화)

베토벤의 '열정'

by MRYOUN 미스터윤 Mar 29. 2025

아침에 일어난 지혜는 평상시처럼 스트레칭을 한 뒤에 거울을 보면서 오늘은 그동안 내게 도움을 줬던 공현수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날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다.  

    

번번이 만날 수 있던 기회가 주어지지 못해서 아쉬워했는데, 학교 바이올린 기악과 사무실에 들러서 그날 청강했던 담당 교수님을 찾아보면 공현수와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늘도 오후에 이론 수업과 실기 실습이 있던 상황이라서 오전에는 피아노를 연습해야 하기에 몇 가지 연주 교본을 갖고 서둘러서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어제 Silvia 교수님의 제안이었던 프라하 콩쿠르까지는 한 달 정도 남아 있었고, 아직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열정’ 곡을 완벽히 암보가 안되어져 있기 때문에 틈 날 때마다 연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전 9시 정도에 연습실에 도착한 지혜는 피아노 앞에 다가가서 갑자기 준비해 온 손수건으로 피아노 건반을 세심하게 닦기 시작했다. 각 연습실마다 놓여 있는 피아노를 개인마다 잘 청소한다고 하더라도 막상 피아노 연주할 때, 먼지라든가 물방울이 묻혀있으면 그로 인한 실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이다. 학부 졸업 후, 석사과정에 들어온 이상 전문 피아니스트이기에 모든 행동이나 운영방식 역시 다른 무언가 새로운 것이 필요한 것이었다.     


피아노를 덮개를 열은 뒤, 피아노 건반 위에 있는 건반 커버를 접어서 옆에 놓인 의자 위에 올려놓고  다시 손수건으로 88개의 건반을 닦고 나서 준비해 온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악보집을 놓았다.      


지난 3개월 동안 연습을 해왔기에 어느 정도 암보가 되어 있는지도 스스로 점검을 해 보고 싶었다. 특히 Silvia 교수님이 다음 주까지는 암보를 해서 오도록 요청하셨기 때문이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 Op57 열정(Appassionata)은 피아노 교본으로 33페이지 정도에 달하는 분량의 고난도 곡이다. 보통 피아노를 일찍 시작하면 고1정도에도 국내 콩쿠르에서 이 곡을 연주하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 없이 지혜는 악보를 보면서 연습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대학 입시에서는 쇼팽의 에튀드를 암보하여 실기시험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고시절과 달리 대학교 기악과에 전공을 하면서 학부 시절에는 암보를 위해서라기보다 각각의 구간별로 마디마디에 있는 악상기호에 보다 중점을 두고 한음 한음을 곱씹듯이 연주를 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전 악장을 암보로 연주해 본 적은 없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전과 같이 악보를 보던 것을 한 장 한 장 머릿속에 저장해둬야 한다.            


1악장 피아니시모(매우 약하게)로 시작한다. 지혜는 실전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어깨에 힘을 빼고 부드럽고 여리게 첫 음인 ‘도’를 치면서 연주를 시작하였다. 2악장으로 넘어가서 3악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지혜는 음계가 생각 낮지 않았다. 다시 시도했으나 3악장 초입부에서 멈춰진 것이다. 악보를 다시 펴서 바로 기억이 났으며, 2악장 마지막 부분과 3악장 앞 구간을 스무 번 넘게 책을 보고 친 다음에 다시 책을 덮고 오로지 기억에 의존하여 연주를 해보았다.


이렇게 모든 악장의 연주를 끝마친 것이다. 그동안 악보에 의존하여 기억하였던 음표들이 완전히 책을 덮고 암보로 연주를 하려다 보니, 온통 정신은 악상기호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이제 한 달 정도 남아 있던 콩쿠르에 자신이 없어지려고 하는데,... 누군가 연습실의 문을 노크를 한 것이다. 전용 연습실과 달리 공용 연습실을 사용할 때는 사전에 예약된 시간 이후에는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지혜가 예약한 시간 다음의 학생이 사용하기 위하여 노크를 한 것이다.      


다음번에 들어오는 학생도 아직 암보가 안되었는지 손에는 악보집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쇼팽 에튀드 교본을 들고 있던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입시 때에 쇼팽 에튀드 곡을 외워서 실기 시험을 본 기억이 다시 어렴풋이 났다.(음대 입시 시험장으로 장면은 이동한다. 심사를 맡은 교수진들이 지혜가 연주하는 쇼팽 에튀드 Op10. no.1(승리) 곡과 자유곡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No.8 ‘Pathetique (비창)’을 들어보는 중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지혜는 속으로 ”쇼팽 에튀드,... 연습할 때에는 꼭 악보를 봐야하겠지,... 정작 그렇게 생각하는 지혜 본인은 베토벤 ‘열정’을 아직도 잠시라도 봐야 암보가 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던 것이다. “     


서로 인사를 나누고 문을 나갔다. 그래도 쇼팽 곡인데 하고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방금 연주실로 들어간 학생의 연주를 잠시 서서 들어보기로 했다. 연습실에서 학생은 쇼팽의 Op.25 (겨울바람)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지혜가 연습실 밖에서 서서 듣고 있는 모습을 지나가던 Silvia 교수님이 본 것이다. 교수님이 복도를 따라서 지혜가 있는 곳으로 왔다.     


Silvia교수가 지혜에게 ”Jinna, (독일어로) 지금 안에서 연주하는 학생이 이번학기 입학할 때, 교수님들이 전부 만점을 준 수석 연주자입니다. “, ”어때요? 들어보니, 악상기호까지 모두 외우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 지혜가 가만히 들어보니, 정말 구간별로의 악센트나 크레셴도, 디크리센도, 리타르단도,.. 등이 정확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쇼팽 에튀드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지혜 역시 <겨울바람> 곡을 수백 번 이상으로 연습을 했었기 때문이다.        


지혜도 교수님에게 ”네, 그렇네요, 정말 제대로 연습하고 있네요,... “ 그런데 교수님은 한마디 더 하신다. ”그런데, 저 학생은 지금 암보를 한 상태로 저렇게 정확히 지키고 있는 거예요 “     


지혜는 분명히 악보집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지금 연주하는 것이 악보를 펼쳐놓고 연주한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정말요?, 정말 대단한 피아노 연주실력이네요... “라고 지혜는 교수님에게 얘기를 건넸다.      


교수님은 지혜에게 ”Jinna, 당신도 저 이상으로 잘할 수 있어요, 88개의 건반 앞에서 절대 주눅들것 없이 항상 당당하게 맞서세요, 30페이지가 넘는 ‘열정’ 곡 안의 악상기호를 함께 잘 외우는 방법은 내 몸이 자연스럽게 기억될 수 있도록 곡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 그것이 베토벤이 이 곡을 ”열정(Appassionata)“라고 지은 이유일 것입니다. 그게 당신의 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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