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사연
최금란이는 뜸 들이는 박 씨 부인에게 말했다.
"뭔데? 속 터지겠어... 기다리다가"
"아이, 이 여펜네... 슬픈 사연이니까... 마음 좀 추스르고..."
"자기야... 서론이 긴 얘기 중에 하나 제대로 된 거 없다는 거 알지?..."
"그래, 말해줄게..."
"당신도 알 거야, 김부동 씨에게 누나 한 명이 있었던 거..."
"그야, 잘 알지... 누나가 사고로 젊은 나이에 죽은 것도 알고..."
"그런데 그 사고가 바로 있었던 곳이 이 동네였다고 하더라고. 군사 정권시절 초기였던 1960년대 초에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누이는 서울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었던 시기에 반독재 기사를 쓰기 위해서 갔다 내려오던 길에 이 지역에 주둔하던 군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폭행을 당했던 것 같아..."
"그런데 김부동 씨가 여기서 30년 넘게 살면서 유일하게 누나를 매일 밤 10시 저 위의 별을 보면서 만나왔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이제 이곳이 철거되고 다른 데로 가려고 하니까... 발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지..."
최금란은 박 씨 와이프의 얘기를 듣는 동안 말을 잃었다.
"뭐, 다들 돈 많이 받고 이곳을 떠나면 잊겠다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김 씨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
"아니... 뭐, 자기만 슬픈가,... 나도 얼굴 한 번 만나지 못한 형님이..."
갑자기 최금란은 울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자기야. 남편 속사정을 좀만 이해해 줘... 돈을 더 많이 받으려고 말하지 않은 게 아니고... 막상 돈 받고 이 동네를 떠나려고 하니까, 누나와 헤어지는 기분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날,
"나 일찍 나갔다가 올 테니, 복동이 밥 좀 챙겨주고..."
김부동은 저녁에 들어와서 아침에 나갈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최금란 역시 남편의 분위기만 보고 있다가 답답했는지 말을 꺼냈다.
"그래요, 잘 다녀오세요"
따르릉, 따르릉...
집에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내가 깜박한 게 있었는데, 엄마와 아빠 여권 있지요? 미국은 입국심사가 까다로워서..."
"영희야, 우리가 여권이 어디 있냐? 내가 비행기를 탈 일이 있었어야지..."
"큰일이네... 다음 주말에 출발해야 하는데,... 그럼 일단 급한 대로 내일 오전에 집에 들를 테니까, 아빠한테 어디 가지 말라고 하세요... 알았죠?"
"그래, 알았다."
"엄마, 그리고 아빠하고 미리 사진 좀 찍어둬요. 사진관에 가서 여권에 필요한 사진이라고 하면 돼..."
"그래, 알았다. 그럼 내일 잘 오고..."
"응, 엄마 그럼 낼 봐요"
저녁이 되어서 김부동은 집에 들어왔다.
"여보, 영희한테 전화가 왔는데, 내일 우리 집에 들러서 여권 만드는 것 도와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합시다. 나 피곤한데, 먼저 잘 테니 불 좀 끄고..."
"당신, 엊그제 일로 계속 내게 화가 나있는 거요?"
김부동은 문쪽을 쳐다보면서 누워서 있었다. 최금란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45년 전에 죽은 시신이 되어서 나타난 누이의 얼굴이 생각이 났던 것이다.
"누나... 누나... 일어나 봐... 누나... "
주검으로 변해 돌아온 누이의 얼굴을 보면서 김부동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김부동의 엄마는 기절했다.
"엄마, 엄마... 왜 그래요? 엄마 눈 좀 떠보세요..."
김부동의 아빠는 부동이가 여섯 살이 되던 1950년에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가 북한 괴뢰군이 쏜 총에 맞아 순국했다. 김부동의 나이 40이 되었을 때, 부친은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어서 예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누이의 죽음 앞에서 쓰러진 엄마는 충격으로 오랜 기간을 병원에서 지내다가 김부동 나이 20에 돌아가셨다. 최금란은 김부동이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시어머니를 만났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기구한 인생을 살아온 김부동이를 지난 세월 동안 이해하고 살아왔던 사람은 바로 최금란이다.
40년째 그렇게 슬픈 사연 속에 살고 있는 김부동을 쳐다보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최금란이었다.
그리고...
연재소설 '운수 터져버린 날(제7화)'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