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술 그리고 카트
1. 영화
'아바타 2'를 방글라데시에서 보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뱅골어로 더빙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조뮤나 퓨처 파크에 위치한 영화관으로 향했다. 조뮤나 퓨처 파크는 남부아시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라고 한다. 용산 아이파크 몰만한 크기였다. 어쩌면 더 크고 더 많은 상점들이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딱히 볼 게 없다고 느껴지기는 했다. 그래도 KFC, 버거킹, 도미노 등 익숙한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었다. 친숙했다.
영화관은 조뮤나 퓨처 파크에 꼭대기에 있었다. 입구는 초라했다. 그저 매표소와 팝콘과 간단한 간식거리를 파는 상점 2~3 개가 끝이었다. 실망스러웠다. 남부아시아에서 가장 큰 쇼핑몰 중 하나인데 너무 단순했다. 영화표는 3D 기준 5200원 정도였다. 매우 싼 가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 기대가 되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전, 팝콘은 필수라고 생각해 작은 스위트 팝콘을 샀다. 역시 스위트 팝콘 또한 내가 생각한 캐러멜 맛의 골든 브라운 색을 띤 팝콘이 아니었다. 어릴 때 학교 앞에서 교회가 나눠준 아무 안 나는 팝콘에 하얀 가루가 뿌려진 형태였다. 그래도 맛은 괜찮았다.
영화표를 검사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예상치 못하게 여러 영화관들이 보였다. 내가 경험해 왔던 영화관들의 모습이었다.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니 내가 봐왔던 영화관들과 똑같았다. 많은 좌석과 큰 스크린... 심지어 좌석도 나름 푹신했다. 단지 영화관 스크린이 영화관에 비해 작은 게 문제였다. 3D 또한 홀로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3D보다 2.5D에 가까웠다. 하지만 집중을 못 할 정도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약간의 멀미가 있는 정도였다.
특이한 점은 영화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192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을 가진 '아바타 2'에 쉬는 시간이 있으니까 오히려 기분 전환할 수 있었고 나머지 후반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의외로 영화를 볼 때 조용했다. 방글라데시 영화 시청 문화는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처럼 악당이 나오면 욕을 하고, 영웅을 응원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분위기라고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소리가 의외로 조용했다. 말소리는 작고 적당한 소음정도만 있었다. 카페에서 공부하면 좀 더 집중이 잘 되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영화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다.
종합적으로,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영화 가격, 시설, 쉬는 시간,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아마 기회가 된다면 또 보러 올 것이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2. 술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국가라 술 판매 자체가 금지였다. 하지만 일부 관광지역이나 호텔 같은 곳에서만 술 판매가 허용되었다. 술은 싫어하지만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욕구가 솟구치는 법이다. 또한 최근에 워낙 신경 쓰고 준비해야 할게 많아 술이 그렇게 마시고 싶었다. 나는 같이 온 동료이자 친구들과 함께 바를 찾는 여정을 떠났다. 그리고 다카에서 가장 좋은 5성급 호텔 중 하나를 방문했다. 가격이 비쌀 줄 알고 있었지만 우리를 말릴 수 없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를 어느 정도 유지해 줄 필요가 있었다.
바는 호텔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 방글라데시에 와서 이렇게 높은 곳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모든 것이 다 보였다. 이곳은 더 이상 방글라데시도, 내가 경험했던 그 어떤 장소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에게 힐링과 기쁨을 주는 공간이었다. 술은 역시 비쌌다. 하지만 난 앞으로 11개월 간 술을 거의 못 마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가게 될 지역 주변에서 카페, 식당, 마트 등 그 어떤 편의시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난 큰 마음을 먹고 indian summer vibe라는 칵테일을 마셨다.
첫 모금은 잊을 수가 없었다. 적당히 달면서 상큼하지만 알코올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나는 술을 못 마시기에 이런 맛이 최고였다. 어두운 조명, 시끄러운 노래는 더욱 우리의 흥을 북돋아 주었다. 일부는 알코올이 없는 음료를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에 취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도 술을 많이 마신 것이 아니라 취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에 취했다. 처음 술을 마셨을 때 느꼈던 흥분을 여기서 다시 느낄 줄은 몰랐다.
3. 카트
방글라데시 유명 한국인 유투버인 '코리안바이'의 추천을 받아 동료가 카트를 타러 가자고 제안했다. 이제 나름 방글라데시 다카에 3주에서 4주 정도 있어 일상이 지루했던 나는 냉큼 따라갔다. 얼마 남지 않은 다카에서의 생활을 즐기기에는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에버랜드 같았다. 입구부터 여러 음식점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큰 동그란 건물에 가운데에 뷔페, 가장자리에 여러 식당, 그리고 그 사이에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들이 있었다. 마트나 놀이공원의 푸드코트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였다. 그 아래로는 작은 공원과 피에로가 구석에서 작은 공연을 하고 있었다. 곳곳에 작은 카페랑 와플, 아이스크림 등 디저트를 파는 상점들과 어린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범퍼카 등 여러 즐길거리는 충분했다.
이 많은 곳을 다 지나 안 쪽 깊숙이 카트를 탈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가격은 한 사람 당 6000원 정도였다. 시간을 잘 맞췄는지 사람이 없어 표를 구입하고 바로 탈 수 있었다. 면허가 없던 나는 너무 신이 났다. 원래 아무것도 없는 놈이 용기만 넘치는 법이다. 작은 카트에 몸을 싣고 헬멧을 쓰니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제주도, 경주에서도 해보지 않은 것을 방글라데시에 와서 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더 흥이 나기 시작했다. 경주가 시작되자마자 나에게는 브레이크는 없었다. 그저 엑셀만 밝았다. 헬멧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쳐 나갔다. 그리고 1분 8초로 들어왔다.
너무 짧아 아쉬웠다. 케이크의 크림만 찍어 먹기만 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방글라데시에서 이런 걸 즐겼다는 것이 신기하면서 짜릿했다. 누군가와 함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를 더 두게 되었다. 여유가 되어 다음에 또 방문하면 카트뿐만 아니라 크리켓 게임, 서바이벌 게임을 즐길 것이다.
4. 현실로
이제 현실로 돌아올 때가 되었다. 곧 시작이다. 지난 4주는 시작도 아니었다. 시작을 위한 준비과정이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일탈 아닌 일탈을 다 함께 즐길 수 있을 시간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을 준비할 때이다. 교통편을 예약하고, 기관과 연락하여 우리의 도착을 알리고,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들을 구매했다.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며 나의 마음 또한 정리를 할 때이다.
매일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카트를 타며 짜릿하고 재미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이런 추억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파도를 견딜 힘을 얻었다. 방글라데시에 처음 와 적응하며 힘들었던 나에게 작은 선물이었으며 새로운 환경의 적응에 필요할 마음의 힘을 비축할 양식이었다. 생기지도 않을 걱정들로 가득 찬 내 머릿속을 날려버릴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 아마 즐기지도 않고 걱정만 했다면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