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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Feb 19. 2023

한 손에 가위를 들고

방글라데시에서 나 혼자 머리 자르기

외국에 와서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가 미용실을 가는 것이다. 


한국의 미용 실력은 세계 최고라고 생각된다. 어딜 가나 크게 실패를 하지 않는다. 특히 섬세하게 우리의 요구사항을 파악해 그에 맞게 잘라준다. 하지만 해외 미용실의 악명은 유튜브를 통해 많이 접했다. 마음대로 자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실력이 좋지 않아 이상한 스타일이 탄생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인도 미용실에 관한 영상은 나에게 두려움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도시였던 다카는 나름 그래도 남자를 위한 바버샵이 많았다. 가격 대비 서비스도 좋다. 하지만 내가 있는 가이반다의 이발소들은 여행 관련 유튜브에서 봤던 갈색 빛깔의 판잣집에서 머리를 잘라주는 스타일이었다. 겉모습으로 판단을 하면 안 되는데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직접 겪어보지 못해 평가는 하지 못하겠지만 이곳만큼은 가기는 싫었다.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길렀다.


주로 한국에서는 머리숱이 많아 관리하기 편하게 짧게 하고 다녔다. 평균적으로 3주에서 4주에 한 번은 미용실을 방문했다. 가장 많이 길렀을 때도 6주 정도였다. 하지만 방글라데시는 덥기도 하고 습해서 머리를 기를 수가 없다. 비교적 더 자주 관리해줘야 한다. 특히 물도 좋지 않아 머리끝이 금방 상했다. 원래 수세미 같은 내 머리카락이 철 수세미로 변한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한계가 찾아왔다. 다카에서 머리를 자르고 4주쯤 됐을 때였다. 다카에서 비교적 머리숱을 많이 치지 못해 머리 길이는 짧은데 머리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자고만 일어나면 폭탄 머리가 되어있었다. 


한국에서 혹시 몰라 이발기, 숱가위 등 이발에 필요한 여러 도구들을 가져왔다. 군대에 있을 때 이발병을 겸직했어기에 기본적인 이발 방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 자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방글라데시에 오기 전 미용실에서 혼자 머리 자르는 법이나 머리 손질에 관한 여러 팁들을 듣고 왔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머리에 빵꾸를 낼 봐 두려웠다.


머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손질을 하기가 어려워지기에 빨리 행동으로 옮겼다. 먼저 옆머리였다. 이발기를 들고 옆머리를 밀기 시작할 때 특히 불안했다. 옆머리를 밀 때는 안경을 벗고 밀어야 했기 때문이다. 안경을 벗으면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나의 시력은 좋지 못했다. 오직 내 감만 믿고 옆머리를 밀어야 했다. 이발기를 살짝 머리에 가져다 될 때마다 경쾌한 기계 소리가 둔탁하게 변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짧은 머리카락들이 떨어졌다. 잘 안 다듬어져도 상관이 없었다. 머리에 빵구만 내지는 말자는 마음이었다. 옆머리를 다 밀고 안경을 썼을 때, 은근히 괜찮아 보여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머지는 숱만 쳐주기로 했다. 아직 머리가 짧기 때문에 숱만 치면 될 것 같았다. 숱가위로 머리숱을 칠 때마다 짜릿했다. 가위질 한 번에 긴 머리카락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자르면 자를수록 머리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뒷머리는 나 혼자 자르지 못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오직 나의 감만 믿어야 했다. 게다가 다 자르고 확인하지도 못한다. 아직 나의 감과 실력을 완벽하게 믿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뒷머리를 정리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뤘다.


결과적으로 잘 잘랐는지 모르겠다. 그냥 나 혼자 머리를 잘랐다는 뿌듯함과 머리가 가벼워졌다는 사실만으로 나의 마음은 가벼웠다. 큰 사고가 안 났다는 것에 다행스러운 마음도 컸다. 그저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이제 정리만 하면 된다. 머리숱을 꽤 쳐서 그런가 화장실 바닥에 머리카락이 천지였다. 이발기로 민 짧은 머리카락들은 사방팔방에 붙어있었다. 난 어쩔 수 없이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다. 내 몸에 붙어있는 머리카락들도 떼어내야 했으며 작은 머리카락들까지 모두 다 치우고 싶었다. 떨어진 나의 일부들을 최대한 쓸어 담고 나머지는 물청소를 진행했다. 도저히 안 사라질 것 같던 작은 머리카락들이 물과 함께 사라질 때마다 기분이 묘하게 시원했다. 


화장실 청소도 끝내고 머리도 감고 모든 것을 다 하고 나왔을 때는 그저 행복했다. 두려움에 둘러싸여, 하지 못했던 것을 도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음의 숙제를 끝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가벼워진 내 머리와 함께 내 마음도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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