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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한 사람이 떠나간 빈자리

영원한 건 없다. 영원한 이별도 없다.

by 에밀리

유난히 더웠던 고등학생 마지막 여름, 나는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는 중이었다. 나는 대답할 말이 없는데 삶이 자꾸만 내게 질문을 던지는 느낌이었다.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은 내 안에 실타래들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에 국어수업에서 한 사자성어를 배우게 되었다. 예전부터 익히 들어오고, 심지어는 자주 사용하기까지 했던 이 네 글자를 새삼스레 다시 배운 날이었다. 시 한 편을 배우는 중에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물어보셨다.


“너희들 인생무상이 무슨 뜻인지 아니?”


여기저기서 시시하다는 듯 대답이 튀어나왔다. 허무함, 공허함, 허탈함 같은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나 역시 그런 것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어의 정의라기보다는 그 단어와 함께 쓰이는 정서들 밖에는 없었다. 그 여름 나에게 문학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께서는 인생무상은 없을 무에 항상 상 자를 쓴다고 말씀하셨다. 인생에서 항상 그런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4개의 한자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게 된 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날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와 교정을 걷는 동안 생각했다. 지금 내 옆을 지나가는 저 친구는 인생에서 영원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걸 알고도 저렇게 신나게 떠들고 웃음이 나올까? 자아에 흠뻑 도취된 이러한 생각들을 나는 도저히 안할 수가 없었다. 고통이든 행복이든, 모든 것은 반드시 끝이 있다. 나는 갑자기 내 안의 실타래 하나가 풀린 기분이 들면서 동시에 다른 실타래가 하나 꼬여버린 느낌이 들었다.


항상 그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 나는 이 사실을 모를 수 없을 만큼 큰 상실을 겪었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외할머니와의 이별이었는데, 그 사건은 우리 가족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엄마의 삶이 망가졌고, 그로 인해 엄마를 중심으로 돌아갔던 나머지 가족들의 삶도 망가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때 당시 우리 가족은 마치 조난당한 조각배 같았다. 그 배 안에서 엄마는 제일 극심한 파도를 겪고 있었다. 불이 꺼진 방에 한나절을 들어가 있다가 아무 일 없단듯이 나오기도 하고 장을 보고 돌아오는 짧은 귀가길에도 자주 멈춰서곤 했다. 멈춰서서는 한참을 울다가 다시 걷고 그러다가 다시 계단 난간을 붙잡고 울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남아있는 네 명의 딸들 때문에 육신은 우리 집에 남았지만 이미 엄마의 영혼은 할머니를 찾아 떠나버린 게 아닐까 하고. 나는 그런 엄마의 영혼을 되찾아오고 싶었다기보다 그 영혼을 내가 어떻게도 돕지 못한다는 점이 너무 슬펐다.


반면 할머니의 부재는 그만큼 슬퍼하지 못했다. 초등학생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울고 웃었던 어떤 한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건으로 인해 내 삶에 어떤 구멍이 하나 뚫리게 되어서 그 구멍이 자꾸만 커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친구를 만나러 약속장소로 가다가, 집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다가,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불현듯 할머니를 상실했던 그 사건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 할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고 같이 TV를 봤었는데. 할머니는 내 노래를 들어주시며 더러워진 나의 손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셨는데. 할머니가 이 세상에 없다. 이런 생각이 마치 깜빡하고 못 잠근 문을 열고 들어온 도둑처럼 내 머릿속을 침투해왔다. 내가 지금이라도 버스를 타고 할머니께 가면 할머니는 나를 맞아주셔야 옳은 게 아닌가? 늘 그랬듯 방학이 되면 할머니 댁에서 며칠이고 시간을 보낼 계획을 짜야 옳은 게 아닌가? 대체 왜 나는 그러지 못해야 하나? 할머니의 부재를 둘러싼 당연한 사실들이 갑자기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상실이라는 구멍이 내 삶에도 뚫리기 시작한 때였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내 곁의 많은 사람들 중 누구와도 다시는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너무 외로웠다.


그런데 아주 신기한 것은 이러한 순간마저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이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도 어느 순간부터 현실 속의 상황에 스멀스멀 스며들기 시작한다. 배가 고팠지 하고 마저 밥을 먹기도 하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지 하고는 마저 전공책을 읽기도 한다. 그러기 시작하면 마치 언제 그런 무서운 감정을 느꼈냐는 듯 멀쩡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할머니의 존재도 영원하지 않고, 할머니의 부재를 체감하는 시간마저 영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큰 상실을 겪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상실의 무게를 체감하는 순간이 오고, 그 순간을 다시 상실하고, 또다시 그 순간이 찾아오는 아주 끔찍한 굴레가 반복되었다. 울고 웃으며, 성장해 나가며, 꽤 오랜 시간 그 굴레를 통과하는 동안 나는 어느새 이런 확신을 하고 있었다.


‘이 이별도 분명 영원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그제서야 깨달은 인생무상은 공허함이나 무력함이 아니었다. 영원한 이별도, 영원한 상실도 없다는 말이었다. 할머니가 없는 건 여전히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무상한 인생 속에서도 변치 않는 추억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대체 어떻게 이 사람을 평생 다시 못 보고 살 수 있을까하는 당혹감과 상실감이 이제는 그 언젠가 어김없이 다시 올 재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설렘과 희망으로 피어난 것도 같다. 평생을 척추장애에 시달렸다는 한 화가는 하얀 빛이 높은 담벼락을 비추고 있는 따스한 빛이라는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든 희망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제야 내 눈에도 보였다. 그 희망만이 어느 순간부터 꼬여버린 내 인생의 한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주었다.


이제는 철없이 동생과 과자 하나를 가지고 싸우던 초등학생이 아닌, 받기만한 사랑을 보답할 줄 아는 성인이 되었다는 것, 매일 열심히 노력하면서 꿈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는 것, 깊은 밤이 오면 아직도 가끔씩 엄마가 아이처럼 울기도 한다는 것.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 그 이야기를 아직은 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견디기 힘든 통증이 있다. 그렇지만 그 통증 역시 끝이 있을 것이다. 매순간 절망이 아닌 희망을 선택하기로 다짐하면 누군가로부터 따스한 손길을 나는 받을 것이고, 삶이 주는 선물같은 날들로 인해 지독한 외로움도 지나갈 것이고, 엄마의 눈물이 그쳐갔듯 그 통증도 서서히 멎어갈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엔 내가 가진 희망으로 타인의 구멍을 메워줄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인생무상이 무엇이냐 묻는 삶의 질문에 아직도 허무함이라 대답하는 친구를 만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인생은 무상하기에 꽤 살 만하다고. 무상하기에 희망은 반드시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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