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라
우연히 학교에서 파쇄를 하다가 누군가의 자기소개서에 적힌 문구를 보게되었다. 종이는 무딘 기계안으로 이내 먹혀들어가게되었지만 그 문구만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누군가의 삶의 좌우명인 그 문구만은 집에 가는 내내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후 우연히 책을 읽다 또다시 만나게 된 그 문구는 다시보니 꽤 섬뜩하게 다가왔다.
장군들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올때면, 노예가 이 문구를 그들의 귀에 반복해 속삭이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 대략 죽는다는 걸 기억하라는 뜻이란다.
가끔은 나도 내가 언젠간 죽는다는 사실을 까먹고 산다. 이 모든것이 어느날엔가 끝이 나고야 만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로 살아간다. 마치 이 일상이 영원할 것처럼 오늘도 그저그렇게 하루를 흘려보내고 만다.
그런데 죽음은 있다. 그것이 이 땅위에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진리이다. 그러니 이 일상도 끝이 있다. 물론 더 좋은날도 있고 더 나쁜날도 있을것이다. 꿈을 이루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할 것이다. 상처를 받기도 때론 사랑을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모든게 다 언젠간 끝이 날 것이란 것이다. 삶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나는 그 사실이 벌써 아쉬워 눈물이 날 것도 같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일찍이 인간을 이렇게 규정한 바 있다.
태어날때부터 어떤 청탁도 없이 이 세계로 내던져진 피투성被投性의 존재.
그냥 이 땅아래로 던져진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이 피투성과 유한성에 대한 자각으로 불안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미리 죽어보는 것이다. 죽음으로의 선구. 요지는 미리 죽음을 직시하고 수용하는 것인데 이로써 비본래적 존재는 본래적 존재가 된다. 말이 어렵지 결국 또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세상만사에 한없이 진지했던 고딩시절 이 사람 말에 많이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죽음을 기억하면 사는 게 생각보다 단순해진다. 이유없이 세상을 따라 타인을 따라 풍류를 따라 내 삶에 부착된 모든 장식품을 버리고 본질만 남기게 된다. 이전까진 잘 버려지지도 않고 버려야하는지도 깨닫지 못하던 비본질이 어느새 떨어져나가게 된다. 시간이 그리 많지도, 2번 3번의 기회가 다시 주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제서야 이전에 억눌려 써보지 못했던 정말 귀중한 선물,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까지 자유의지를 연습하며 살아보고자 한다. 이기적인 존재로 나밖에 모르는 존재로 태어났지만 내가 진정 자유롭다면 그 자아의 늪에서도 분명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같은 사람도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까지 어쩌면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보기로 했으니까 늦더라도 멈추지말고 한번 그 세계에 가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