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도 나의 일부니까
눈이 더 나빠지면 어떡하지. 치매에 걸리면 어떡하지. 당뇨나 암에 걸리면 어떡하지.
내가 매일 하는 걱정이다.
나는 일종의 건강 염려증 같은 걸 앓고 있어서
어릴 때부터 내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전전긍긍하다가 잠시 안심하고,
또 다시 염려하는 짓을 반복해왔다.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이 건강염려증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오히려 안심했다.
본인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해서 병이 날 지경인 사람이
나 하나 뿐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무려 그 증상을 가리키는 의학적인 용어가 따로 있으니
현대 의학의 인정(?)을 받은 기분이었다.
진단명이 있으니 치료법도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도 생겼다.
언제부터 이랬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가장 또렷하게 기억나는 일화는 대략 초등학교 3학년 때다.
할머니댁에서 ‘세계의 미스터리’ 비슷한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그날 주제는 ‘인체 발화’였다.
인체 발화란 외부에서 불이 옮겨붙는 것이 아닌 인체 그 자체에서 불이 나는 현상인데,
굉장히 드물게 일어나고(그러니 다큐에 나왔겠지만) 주로 서양인들에게 일어난다.
그러니 동양인인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안락의자에 앉은 채로 새까맣게 타버린 사람(이었던 것)의 흔적이
내 건강염려 세포를 몹시 자극했는지
그 뒤로 나는 꽤나 긴 시간 동안 내 몸에서 불이 날까 봐 공포에 떨어야 했다.
매운 음식을 먹고 위와 식도가 뜨끈뜨끈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면
‘이러다 내 몸에 불 나는 거 아니야?’ 하는 공포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어린 마음에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합리성 유무와 별개로 화면 속의 끔찍한 이미지는
내 뇌리에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고,
나는 자신의 몸이 불에 탈까 봐 두려움에 떠는 어린이인 채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그 다음 공포의 대상은 CRPS였다.
이 공포는 사실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CRPS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의 영어 약자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질병으로 인해 겪는 고통도 커다란 공포였지만,
그것보다 더 공포스러웠던 것은 발병 원인이 확실치 않은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었다.
큰 부상을 당하고 난 뒤 발병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수롭지 않은 작은 부상 혹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발병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너무 무서웠다.
그렇다면 살짝 넘어지는 것만으로도 걸릴 수 있는 거잖아.
아니, 재수가 없으면 어느 날 갑자기 걸릴 수도 있는 거지.
죽고 싶을 정도로 아프다는데… 무서워. 너무 무서워.
CRPS에 대해 떠올리면 내 내면의 불안이 마치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날뛰어댔고
심박수는 미친 듯이 올라갔다.
알던 지인이 어느 날 갑자기 CRPS 투병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증상이 더 심해졌다.
사실 이 글을 쓰려고 CRPS에 대해 검색해 봤는데
공포감이 또 스물스물 올라와서 재빨리 검색창을 꺼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워낙 걱정이 많아서 CRPS 말고도 걱정해야 할 질병이 많다는 점이다.
암, 심근경색, 고지혈증 등 각종 성인병부터 시작해서
당뇨, 치매에 걸리지는 않을지, 어느날 갑자기 실명하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방문 예정인 치과에서 이가 썩었다는 진단을 듣지는 않을지도 골고루 걱정해줘야 한다.
원체 생각이 많고 불안감도 잘 느끼는 덕분에
한번 걱정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이내 세상에서 가장 근심 많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쯤 되면 정신과의 도움을 받아봐야 하는 건 아닌지 염려하는 독자분들도 계실 텐데,
또 하나 희소식은 워낙 바쁘게 지내는 데다 하고 싶은 일도 많아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는 암이고 치매고 다 잊어버린 채 지낸다는 것이다.
당장 오늘 마감해야 하는 번역이 있는 상황에서
먼 미래에 어쩌면 걸릴 지도 모르는 질병 걱정을 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한가할 때나 마음이 취약해져 있을 때
불안과 걱정이 마음의 연약한 틈을 뚫고 들어오는데,
그럴 때는 불안 전문가(?)인 나도 솔직히 버겁다.
예전에 정신과에서 기질 검사를 받아봤는데 불안도가 100명 중 1등이 나왔다.
상위 1퍼센트의 불안 기질이라는 뜻이다.
이딴 걸로 1등 먹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타고난 걸 어쩌겠나.
매사에 불안해하는 나를 데리고 잘 살아보는 수밖에.
그래도 30년 가까이 불안 기질을 떠안고 살다 보니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겼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불안해지면 어쩔 줄 몰라 하며 불안에 매몰되어 버리곤 했는데
요즘은 여러 가지 행동을 통해 불안을 완화하려 한다.
내 경험상 불안을 잊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창작과 운동, 그리고 언어화다.
창작은 글쓰기와 만화 그리기 등의 활동을 말하며,
운동은 무엇이든 좋지만 이왕이면 땀이 나고 근력을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언어화는 내가 지금 느끼는 불안을 언어의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있고,
이야기하기 곤란한 문제라면 노트에 적어보는 것도 좋다.
불안이 심할 때는 머릿속의 온갖 감정과 생각이 꿈틀거리며 마음을 사정없이 공격하는 느낌이다.
그럴 때 창작과 운동을 통해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발산하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고,
언어화를 통해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내 마음을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언어화가 제일 힘들었다.
워낙 말이 없기도 하고 남에게 내 이야기 하는 걸 어려워하기 때문에.
하지만 처음이 어렵지 조금씩 해버릇하다 보면 점점 수월해진다.
그러니 ‘나는 무뚝뚝한 성격이라 그런 거 잘 못해’라고 애초에 선을 긋기보다는
마음을 열고 조금씩 시도해보자.
장담컨대 생각지 못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할 일이 많아서 아침부터 몹시 불안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오후 5시 34분,
나는 이미 목표한 모든 과업을 끝마치고 글의 마지막 문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1년에 한 번 있는 치과 검진도 마쳤고
일주일 전부터 자꾸 조는 반려 앵무새들을 병원에 데려가 진찰받은 뒤 약도 타왔고
미루고 미루던 속옷 빨래도 마쳤다.
무거운 앵무새 이동장을 들고 지하철을 탈 때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고 손과 마음이 몹시 무거웠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날씨도 마음도 말끔하게 개었다.
앞으로의 나날도 먹구름과 화창한 날씨의 반복일 것이라 생각한다.
먹구름이 오는 것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먹구름을 잘 견뎌내고 화창한 날씨로 빨리 복귀하는 것은 온전히 내 손에 달렸다.
먹구름이 물러간 뒤 마알간 얼굴로 돌아온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내 마음도 저렇게 고요하고 단단하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