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이야기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곳에 있었다.
옛 것, (강)물, 빛바랜 건물, 과거로 회귀하려는 듯한 모습의 카페, 투박함, 잣대 없는 그들의 시선, 각자를 존중(혹은 내버려 두는)하는 사람들, 낯선 언어, 신비로움, 지리적 위치, 사색할 수 있는 다리, (강)바람, 언덕, 평야, 맑은 공기, 파란 하늘, 도시의 잿빛 얼굴, 매섭지만 사유하는 겨울, 자신을 지키는(혹은 그냥 두는) 멋, 매운 음식, 쭉 뻗은 거리, 서툰 모습의 것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내 방은 언제나 말끔한 컨디션을 유지한다.
물건들은 한결 같이 제자리를 사수하고, 그마저도 필요한 때면 때를 가리지 않고 질서를 재정립한다.
그런 내가 지난 수년간 마음에 쌓아두는 어지러움 같은 것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것들의 무질서이다.
쌓여가는 노트와 메모, usb와 노트북에 엉기성기 담겨 있는 사진들, 서류(파일철)등을 떠올리며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 무질서함이 가려지는 것이 아닌데.. 난 애써 괜찮다 미소 지으며 계속해서 다가올 압박감을 모면하고 있다.
모든 유혹하는 것들이 늘 내 빚진 마음을 이긴다.
정리가 시급하다.
시급 하다기보단 하면 된다. 하나씩. 지금부터.
Lomtalanítás, 롬떨러니따쉬
일명 '쓰레기 제거의 날'이라고 불린다.
매년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도심 곳곳은 흡사 여러 개의 골동품 박물관으로 변모한다. 각 구역마다 정해진 날짜에 원치 않는 물품을 크기와 종류에 상관없이 대문 밖에 내다 놓을(버릴) 수가 있다.
국가에서 이 모든 것을 무료로 수거(쓰레기 처리)해가기 때문에 모두에게 유용한 날이라 생각되지만, 헝가리에 처음 왔을 때, '이곳은 무법천지인가? 난 누구, 여긴 어디?' 이런 기분에 골목 곳곳을 거닐 때마다 음산한 기분을 받는 것이 퍽 좋지 않았음을 떠올린다. 주변을 지나칠 때면 바퀴벌레나 쥐라도 나올까 봐 다른 경로로 에둘러서 가기 바빴다. 특히나 밤이 되면 가뜩이나 꾸밈없는 건물들이 더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해서 언제 이걸 다 치워가나.. 눈살이 찌푸려지기 일쑤였다.
그땐 무작위로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려대고, 나라에서 이걸 방치하고 있다고 헝가리 국가 수준을 (속으로) 따지며 운운하곤 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쓰레기 잔치(!)가 도시 연례행사와도 같은 거란 걸 알게 돼서 내 불편했던 마음이 가셨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 기간이 지나면 도시가 신기할 정도로 멀끔하게 변신하기 때문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긴 하지만.
나흘 전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이들을 발견했다. '그날'이 왔구나!
이들에게는 무언가 '잇템'을 발견하는 Special Day이자, 생계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찾는 유용한 시간임이 느껴져 퍽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이번엔 나의 시선을 달리 했던 것이다. 쓰레기 주변을 둘러싼 이들은 대부분 다 집시들이다. 어찌나 구석구석 파헤치는지 난 무슨 보물이라도 숨겨 놓았나 동그랗게 눈을 뜨고 지켜보았다. 아니면, 피라미드 같은 쓰레기 더미 밑바닥에서 나만 모르는 진귀한 물건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헝가리에서 '집시'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가 없다.
우리가 아는 집시 패션의 집시라기보다 정말 활자 그대로의 살아있는 집시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이곳 부다페스트이다. 이 나라는 집시 음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집시의 최초 출신지는 인도라고 하는데, 15세기 이후로 유럽 각지에 퍼지게 되면서 지금은 유럽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는 부류가 되었다. 집시에 난민(헝가리는 4-5년 전쯤부터 유럽에 난민 문제가 이슈가 되었을 때 초반엔 우호적으로 그들을 수용했다가 지금은 엄격히 유입을 막고 있는)까지... 옆 나라 체코를 가면 보헤미안도 만나 볼 수 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며칠 동안 도시 전체가 무법천지처럼 초토화가 됐다가 며칠 후면 말끔한 얼굴로 재탄생되는 '롬떨러니따쉬' (아따! 이름 어렵다)!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헝가리의 면면을 요즘은 하나하나 검색하며 공부하고, 배워가고 있다. (나에겐 이런 시간이, 분명 필요했다)
헝가리 뉴스 기사에서도 이 '쓰레기 처리의 날'을 '혼란, 혐오, 희망'이 혼재된 그림으로 바라보며 꽤나 흥미로운 시각으로 다루고 있었다. 내용을 알아갈수록 그냥 쓰레기 더미가 있다가 없어지는 날이 아닌, 어찌 보면 사라짐(제거)과 재탄생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고, 쓰레기 속에서 발견하는 삶(생계)의 희망 같기도 하며, 누군가에게는 속 시원한 정리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쓸모 있는 발견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상당히 매력적인 날임을 알 수 있었다.
버리는 자와 구하는 이들이 함께 이득을 보는 날,
나 같은 이방인에겐
새로운 부다페스트를 발견하는 날
일부 부지런한 이들은 (잘 사는 동네 위주로) 온갖 것을 찾아다니며 유용한 물건들을 찾아내 헝가리 최저 임금보다 더 큰 소득을 낼 수 있다고 한다.
빈곤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다. 또 몇몇 수집가들은 파열되거나 오래된 가전제품을 찾아 중요 부품을 채취해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한다고 이야길 한다.
다만 이 날은 도시의 모든 거주자들에게 필요한 때이기도 하는 동시 견뎌야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쓰레기 더미를 파헤치는(들춰보는 수준이 아니다. 두더지처럼 헤집는다) 무리를 눈 앞에서 마주하면 '이게 내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벌어질 수 일인가?'싶은 초현실적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하기에.. (살고자 하는 ‘원초적 본능'이란 이런 것인가 떠올리기도 하였다.)
이 시기가 절정으로 다다르는 부다페스트를 걷는 것은 '종말이 일어나기 직전의 모습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기사도 접했다. 참말로 절감하는 수식어이다.
한 번은 지나가다 쓰레기 더미와 눈이 마주쳤다. (큰 맘먹고) 유심히 바라보니, 모든 꾸러미' 속에 각자의 고유한 취향과 역사가 보인다. (살펴보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다. 각 집안의 민낯이 샅샅이 드러나 있어서 오히려 내가 다 부끄럽고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헝가리의 모든 역사'처럼 느껴졌다.
헝가리어로 된 마르크스의 책, 구부러진 자전거 바퀴, 헤어진 양복 재킷, 굽 없는 하이힐, 수십 년 전의 잡지 표지, 끊어진 낚싯줄, 아직은 쓸만해 보이는 낡은 컴퓨터, 깨진 술병, 흑백 여권, 분간 안 될 여행자 캐리어, 썩은 비누, 삯은 변기까지.. 그 외 수많은 사라져 가는 것들...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잘만 수집해서 한국에 가져가면 앤틱 박물관을 열어도 되겠다 싶다.
(*참고로 헝가리는 벼룩시장도 활성화되어있다. 앤틱 상점의 천국이기도 하다)
저 모든 것들이 그 당시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귀했던 삶의 조각들이겠지.
여권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설렘, 아이의 첫 자전거 시승식을 바라보며 흐뭇해했을 아빠의 미소도 생각나고, 가슴팍에 지니고 꽃다운 청춘의 사색과 철학을 품었을 빛바랜 책, 첫 출근의 희망이었을 재킷, 한 여자의 자존심이었던 하이힐....
상상의 순간들을 채집하는 21세의 한 이방인(나)이 이곳에 서 있다. 사라짐이 추억이 되는 특별한 순간을 그들에게 선물 받는 기분이다.
이 롬딸라니따쉬의 날에 대해 헝가리 정부에서 여러 가지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현 자본주의 시대에 맞지 않는 관행이라 생각하며 이 부분에 대해 세금을 거둬들여야 된다고.. (무료로 제공되는 국가 서비스라는 게 신기하다) 또 이 도시에 보기 흉한 모습을 제공하는 이 날을 근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날은 단순히 쓰레기를 비우고, 물건을 줍고 하는 날을 넘어선 한 나라의 수도 내, 인류의 귀중한 조각들을 안팎으로 재정립시키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명실상부한 '부다페스트의 날'이라고... 지나가는 한 외국인의 목소리로 이야기해주고 싶다. (참고로 난, 투박한 헝가리의 모습을 매우 좋아한다)
당신들 , 멋져요!
부다페스트 도심 곳곳(메트로 역사 내, 어느 건물 앞, 한적한 벤치 내, 매캐하고 후미진 곳 등)에 집시, 난민 노숙자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대로변에서 한 겨울에 객사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기도 하고..
일상생활을 적당히 유지하는 우리네 같은 인생사에선 냄새나고, 불안한 기운을 뽐내는 이들은 그저 피할 존재, 불필요한 존재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나 또한 그들을 쉬이 반긴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은 종종 한다. '여권 파워 상위권에 랭킹된 한국에서 태어난 내가 아니라, 어디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차 모르며, 흘러감에 몸을 맡기는 것 마저 사치인 '삶의 기반이 아무것도 갖춰져 있지 않은 집시나 난민'의 삶으로 내가 던져졌었다면...'
최소 나와 동시대에 더불어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저변에 어떤 숨은 이야기가 깔려 있는지.. 내 마음이 귀 기울여야 하는 안타까운 사연은 없는지, 할 수 있는 최소한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 번쯤은 고민해보는, 도움을 갈구하는 이들을 향해 그런 사소한 손길을 건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품으며 오늘의 이 글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이스라엘스가 그들을 거의 완벽하게 그려냈다.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는 게 이상하다. 여기 헤이그에는 매일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세계가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지. 인물화를 그리는 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내가 어떤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들은 "아,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 "저런 유의 인간들이란!" 하고 말하더구나. 그런 표현을 화가에게서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그래, 그런 일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런 장면은 사람들이 가장 진지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라 느껴졌다. 한마디로 스스로 자기 입을 막고 자신의 날개를 자르는 짓이지.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는 반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집시들'을 좋지 않게 생각하지만, 한번 생각해봐라. 세상에는 '더 많은 것을 원하면서 모든 것을 잃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