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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Oct 31. 2020

이래 봬도 '노벨상의 나라'

헝가리 이야기


2002년 한국이 월드컵으로 들썩일 때, 헝가리에선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했다.



「운명, Sorstalanság」 (헝가리어로 번역하면 '운명 없음', 한국에는 '운명'이란 이름으로 출간됨)



임레 케르티스(Imre Kertész),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인 그는 1944년 15세 소년으로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고, 그 후, 1975년 나치의 강제 수용소 체험을 다른 소설 '운명'을 출간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헝가리 내에서도 노벨상 수상 전에 그의 이름조차 모르던 이들도 많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국민들의 어안이 벙벙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운명'



'운명'에 대한 평가는 양극이다.

"역시 걸작!" or "이게 왜 노벨상을?"

한국에서 헝가리 문학은 다른 유럽 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소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이 나라 문학을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2차 세계대전'과 '강제 포로수용소'라는 키워드만으로도 충분히 접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단, 절판된 곳이 많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책은 가독성이 높진 않다. 스토리도 소재에 비해 상당히 단조로운 편이다.

3년 전에 한국에서 오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선물 받은 건데, 아직까지 완독 하질 못 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워낙 재미있게 읽어 내려갔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아끼고 아껴 기대하면서 읽는 책이 있는 반면에,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 숙제처럼 마음의 짐을 안고 보는 책이 있는데 '운명'은 후자에 속한다,라고 감히 언급해본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타이틀 중 으뜸 되는 것이 ‘노벨상의 나라', '발명품이 많은 나라'이다.



www.nobelprize.org



인구 대비로 따지면, 전 세계 랭킹 13위를 차지한다(헝가리 출신 중 망명자, 이민자 등을 포함하면 20명이 넘는다고도 한다).

한국의 1/5, 전체 인구 약 천만 명이 안 되는 헝가리에서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미국, 독일, 프랑스를 앞서가는 수치이다.



출처 : wikipedia




아래 목록을 보면  '기초과학' 분야로 높은 수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의학, 기초과학 분야의 발달로 한국에서, 그리고 전 세계 곳곳에서 헝가리로 유학하러 오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의대생이다.

헝가리에서 세계 최초의 비타민C를 발견했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한다. 영국이다, 미국이다 말이 많았지만 헝가리가 맞다. 1920년대 말 헝가리의 생화학자 얼베르트 센트죄르지(Albert Szent-Gyorgyi)가 괴혈병의 치료제로 비타민씨를 발견하였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얼마 전(2020.10월)에 노벨 화학상의 발표가 있었다.

꽤 기대를 걸었는데,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 과학분야 수상이 점쳐졌던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의 수상이 아쉽게도 불발됐다. (헝가리에선 지금까지 5명의 화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출처 : wikipedia



한때는 '헝가리 현상'이란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노벨상 수상자가 집중 배출되었던 나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국가 상황이 나아질수록 노벨상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 나라의 발전이 개인의 창의적 사고를 막는 것인가? (헝가리도 유럽에선 교육열이 높은 편에 속한다. 우리나라를 비춰봤을 때, 교육열과는 반비례하는 것 같기도 하다)



헝가리 출신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세계적 베스트셀러 '몰입(Flow)'의 저자)는 "2차 세계대전과 50년의 소련 지배로 헝가리 교육은 획일화됐고 학생들은 학습이 '지루한 일'이란 인식을 갖게 됐다"며 거기서부터 헝가리가 추락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창의성을 금기시했고 교육도 주입식 위주로 바뀌었다. 헝가리는 2015년 국제 학업성취도 시험(PISA) 점수가 OECD 평균 이하의 하위권 국가로 전락했다. 칙센트미하이는 "교육 수준이 낮고, 그렇다고 미국처럼 기업들이 매우 혁신적인 것도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2017.1.4일 자. 조선일보 기사 내용 중)




"헝가리엔 뭐가 있어, 대체 뭐가 유명해?"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 이 ‘노벨상의 나라'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여타 유럽 국가엔 각국에 알맞은 이미지들이 구축되어 있는데, 헝가리는 아직까지 갖춰진 것에 비해 모호한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 항상 아쉬웠다.



헝가리 국립도서관의 옛 모습 : 책 읽는 사람들






내가 겪은 헝가리 사람들은 순박하다. 트램이나 버스 등에서 여전히 종이책을 지니고 다니며 흔들리는 움직임 속에도 활자에 집중을 하고 있는 이들을 수월하게 발견할 수 있는 나라이다. (‘그게 뭐가 대수냐! 우리도 그래'라고 하기엔 최근 들어 여느 나라에서  스마트 기기가 아닌 책다운 책을 쥐고 있던 이들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에..) 지혜롭고 성실한 친구들이 참 많은데 티가 잘 안 난다. 아니, 티를 잘 안 낸다고 하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이려나?


내 경험으로 이 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일반화시킬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지켜보면 이들은 각자의 만족으로 삶을 살아간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다 온 나에게는 꽤나 신선한 기류였다.


내 맘 같아선 검증된 자랑거리를 내세워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고, 잘난 체도 좀 하고, 위세도 떨쳐가면 좋겠다, 싶은데 내가 받은 느낌은 '받으면 받나 보다. 내가 좋아서 한 건데, 뭐' 이 정도 반응에 그치니.. (이러니 내 주변엔 모두들 하나 같이 "헝가리가 노벨상을?" 하는 반응을 보이지...)

호들갑 떨지 않아서 좋긴 하다만, 가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너무 본인들을 꾸밀 줄 모른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굳이 헝가리에 사는 한국인이 이렇게 발 벗고 나서는 것이다. (난 전문 오지라퍼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보다는 내가 행복해야 좋은 이들이기에 굳이 나서서 어필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 상황 자체를 순간적으로 만끽하고 즐긴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내가 헝가리를 좋아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라 볼 수 있다. 이건 지내면서 발견한 이 나라의 후천적 장점이다.


이들 사이에 있으면 나도 '지금 이대로, 행복'해진다. 그리고 내가 알던 '삶의 충족'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어제 올렸던 포스팅'쓰레기 잔치'에서도 받은 인상이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 그 자체로, 내 만족으로.

언젠가를 위한 노력이 아닌, '지금을 누리는 것'이 평생 행복이란 것을 알게 해 준 소중한 나라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행복'이란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내가 감동받아한 부분은 부족한 것에 대해 욕심 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것에 만족할  아는 태도. 수용하는 자세이다. 물론 헝가리 애들이 모두 욕심이 없다, 라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이 친구들은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넘어선 것을 탐내지 않는다. 비교하지도 않는다. 본인에게 주어진 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극대화하려 애쓴다. 애도 안 쓴다. 그냥 살아간다. 이게 당연한 것일 수 있는데, 내게는 왜 이 모든 것들이 이토록 초월적인 삶으로 다가오는지.. (노벨상 이야기하다가 곁길로 샜다)


비단 헝가리에 국한되어 참 평온을 누리는 내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이곳에 살면서 '본연의 만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 그만큼 내 눈 앞에 펼쳐지며 보고 느끼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가끔 이 친구들이 부럽다. 부럽다기보다 신기하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아니, 가진 게 쥐뿔도 없다) 그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는다. 지식이 아닌 지혜를 겸비한 친구들이라 감히 평해 보고 싶다. '노벨 지혜 상의 나라'로 타이틀을 바꿔야 하나?


그 근본 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이따금씩 호기심을 가져본다. 그 뿌리를 찾아내면, 내 뿌리도 닮아가고 싶은 방향으로 뻗어 가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기대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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