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듣고 쓴 후에 말해야 실수가 없다.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의 순서는 알아듣고(청, 聽), 말하고(언, 言), 읽고(독, 讀), 쓰는(서, 書) 것이다. 모국어는 어릴 때부터 이 순서로 배우기 때문에 쉽게 익히고 자연스럽게 체득하지만 외국어는 주로 뒤집어 배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때 생각지도 못하게 일본 체류를 하면서 일본어로 가득한 교실에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답답하게 3개월 즈음을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회시간에 선생님 설명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귀가 트인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선명하다. 들리니 말할 수 있고 말하게 되면서 읽고 쓸 수 있었고 학습도 가능해졌었다.
단순히 말을 배우고 읽고 쓰는 기본 언어 습득과정은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순서에 맞춰서 해야 정확하게 배울 수 있다. 처음 배우는 외국어라면 가능한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순서로 배우는 속도와 양을 조절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언어로 성장하고 사회 구성원이 되고 어른의 자격을 얻기 위한 언어는 또 다른 순서와 단계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독, 讀), 많이 듣고(청, 廳), 많이 쓴 뒤(서, 書), 비로소 말을 해야(언, 言) 실수를 줄일 수 있고 어른이라 인정할 수 있다. 태산같이 묵직한 말하기를 하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주위를 집중시키고 어른스럽게 보이지만 말이 많고 이 말 저 말을 옮기며 다니는 사람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경박해 보이기 마련이다.
주변에 참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어르신들을 보면 주로 읽고 듣는 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신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에 '100년을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님의 저서를 읽고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정말 '행동하는 지식인'이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배울 수 있었다. 언제나 읽고 이해하고 나아가 듣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셨다는 말씀을 강조하셨다. 특히 읽기는 평생의 숙제처럼 수련의 대상이라고 하셨는데 '읽기'는 학자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어른되기'를 전공하기 위해서 수강해야 하는 필수 전공과목인 셈이다.
모국어는 한 번 배우면 모국어를 학문으로 하지 않는 한은 공부의 대상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공부는 어린아이들이 하는 것이지 어른이 할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착각의 오류로 가장 큰 실수들이 나타나는 분야가 모국어가 아닐까? 물론 우리는 모두 말하고 듣고 읽고 쓸 수 있으므로 기본적인 언어 습득의 차원이 아니라 '어른의 모국어'를 습득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상황에 맞게 말하고 나서지 말아야 할 때는 참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등의 소양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매일 잔소리나 해대는 뒷방 늙은이처럼 늙고 싶지 않다면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단 덮어 놓고 읽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시작할수록 더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으니 하루빨리 시작하길 추천한다.
많이 읽으면 들을 귀가 생기고 생각을 정리해서 쓰면서 말을 다듬고 나서 입을 떼면 확실히 실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정말 말이 많았었다. 내가 이야기를 주도해야 하고 내 이야기가 먼저였으며 상대를 설득시키는 대화를 주로 이어갔다.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는 반면에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책 읽기를 일처럼 하면서 들을 귀가 생긴 순간부터는 말을 아끼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신중하게 말하기가 가능해졌다. 프레젠테이션의 전설이라는 스티브 잡스도 간결하고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의 기본은 '독서'라고 했었다. 읽고 이해하는 훈련은 어른이 진짜 어른이 되고 성공하기 위해 매일 부여잡고 가야 하는 숙명의 과제다.
독서는 바로 드러나는 결과가 없다. 심지어 유발 하라리 책이나 고전 문학 같은 책을 읽을라 치면 내용에 감탄하기보다 이런 어려운 내용을 이렇게 두껍게 쓴 작가를 존경하다가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읽고 또 읽다 보면 차츰 이해하게 되고 공감하게 되고 서둘러 앞만 보고 달리던 시야를 360도 돌아보며 현재를 포기하지 않아도 미래로 갈 수 있다는 지혜도 덤으로 얻게 된다. 독서의 질과 양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본인의 업무 능력이 업그레이드되면서 한 차원 높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도 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인사이트도 얻게 되니 우리도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처럼 될지 모를 일 아닌가!
궁금한 분야, 읽고 싶은 책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장르와 분야를 확장해 가며 읽고 또 읽어 보자. 읽으면서 주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평소에는 들리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들릴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쓰면서 말을 다듬어 이야기하면 적은 말로 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부터 독청서언( 讀聽書言)의 순서로 함께 어른의 말공부에 매진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