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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승 May 21. 2024

여름은 숯불 냄새와 함께 온다

돼지고기덮밥

신혼 때부터 쭉 공기 참 좋은 데서만 살았던 우리.


집들이 온 사람들, 하나 같이 서울에 이런 데가 다 있냐며 산 밑이라서 좋겠다, 했지만 마을버스 없이는 지하철, 탈 수 없으며 대형 마트는커녕 동네에 저녁 한 끼 사 먹을만한 데조차 마땅치 않으니 사실은,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번화한 동네로 이사했을 때 퍽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밤늦도록 환하게 들뜬 거리와 즐비한 밥집, 새벽을 가르는 오토바이의 부아앙, 소리마저 좋았으니까.


그러나 낭만도 하루 이틀.


여름이 온 후 늘 창을 연 채 지내다 보니 그 모든 것들이 다 공해로 변했다. 특히 집 바로 앞, 유명 고깃집에서 쉴 새 없이 피어오르는 연기와 매캐한 냄새는 정말이지, 곤욕스러웠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며 방 안의 옷가지와 이불, 내 머리카락까지도 숯불 냄새가 흠뻑 밴 거 같았으니까. 그야말로 탄내에 절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새벽까지 거하게 취한 이들이 부리는 소동은 복병 중 복병이었다.


한 번은, 여느 때처럼 창을 반쯤 연 채로 자고 있는데 날카로운 고성방가에 잠에서 확 깼다. 싸움이 난 듯했다. 시계를 보니 11시 반. 이불을 뒤집어쓴 채 억지로 다시 잠을 청해보려 했으나 높아지는 언성에 온 신경이 창 밖으로 쏠렸다. 아무래도 다시 잠들기는 틀린 거 같기도 했고,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해 베란다로 나가 보았다.  


길 건너 고깃집 앞에서 중년의 두 중년 남성이 거하게 취해 서로에게 삿대질해 가며 거친 말투로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전부 다 알아듣기는 힘들었으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얼마 안 있어 두 사람은 기어이 뒤엉켜 몸싸움을 벌였다.


아버지 제사가 어떻고, 형이 어떻고 하는 소리가 어렴풋 들리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두 사람이 형제겠구나, 싶었다. 하긴, 형제이니까 저렇게까지 한 덩이처럼 들러붙어서 싸울 수 있는 거겠지. 고깃집 사장이 뛰쳐나와 뜯어말려도 강력 접착제로 붙여 놓은 거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가만 보니 키와 체형, 머리 벗겨진 것도 똑 닮은 둘. 다행히 경찰이 출동해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사장은 무슨 의식처럼 손을 탈탈 털면서 다시 가게로 들어갔다. 고깃집 건물 위로 유령 같은 흰 연기가 쉴 새 없이 피어올랐다.




그 집 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고기라면 신물이 나 거의 먹지 않게 되었다. 사실, 이사 나온 지 몇 해나 지난 지금도 예전처럼 즐기게 되지는 않더라. 먹더라도 조금씩 먹는다. 100g 정도의 고기로 한 끼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누가 뭐래도 고기와 양파 볶다가 물과 간장, 설탕을 3:2:1 비율로 넣어 졸인 후 그대로 밥 위에 부으면 완성. 너무나 간단해 아침 식사로 해 먹는 거의 유일한 고기 요리다.




슬슬 날이 더워지는 요즈음. 고기를 간장과 설탕에 지글지글 졸이고 있으니 그 해 여름이 떠올랐다. 늦은 밤 맨발로 내디딘 차가운 베란다 타일 바닥의 촉감과 숯불과 은은한 풀 내음이 녹아 있는 대기, 그리고 일일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던 창 밖의 각양각색 소란들.


다짜고짜 구슬픈 노래를 부르는 목청껏 부르는 남자,

참으로 조용히, 그러나 무려 세 시간 가까이 나무 아래서 싸우는 커플,

같은 자리를 빙빙 맴돌며 전화 통화하는 내내 펑펑 우는 사람 등.


그 집에서 여름 나는 게 퍽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그리워지는 이유는,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처럼 어질어질한 계절, 타들어가는 마음에 컵에 서리가 맺힐 정도로 찬 술을 붓고, 서늘하게 식어 헛헛한 마음, 뜨거운 불판에 데우며 위로해 보려는 사람들 삶의 장면을 참 많이도 목도해서일 거다.


여름은 어쩔 수 없이 그러한 계절.


다행이인 것은 그렇게 애를 태우며 소진한 날들이 재처럼 검은 기억을 남겨도 어느 결엔가 훌훌 흩어져 버린다는 것. 정신 차리고 보면 여름은 꼭 끝나 있다.


돼지고기간장조림덮밥

1) 돼지고기와 양파를 볶는다
2) 돼지고기가 반 정도 잠길 정도로 물 붓고 간장, 설탕 넣어 조린다.
(2인분의 경우 돼지고기 300g일 때 물 400ml 간장 3T, 설탕 2T)
3) 고기에 색이 베면 불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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