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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승 May 07. 2024

전력질주 후 닭가슴살

평생 써먹는 닭가슴살 부드럽게 삶는 법 

며칠 전,

학교 밖으로 삼삼오오 뛰어나오는 하굣길 아이들 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어디를 가려고 저렇게 신이 나 달리는 것일까. 친구네? 분식집? 설마 학원 가는데 저렇게까지 뛰지는 않겠지? 가야 할 곳에 먼저 마음을 던져 놓고서 이제 몸만 가면 돼!라는 듯 한 달리기였다. 상체가 앞으로 쏠려 금방이라도 넘어질 거처럼 달리는 아이는 좀 말리고 싶었을 정도.


넘어지면 아플 텐데.

분명.

애들은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전속력으로 달렸다.




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뛰는 것 말고도 사사로운 많은 일들에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던 시절이.


웃을 때는 배가 찢어지도록 웃고, 별 일 아닌 일에도 숨 넘어가도록 소리 내 울었다. 누군가 좋아할 때는 태풍의 한가운데 풍선이 된 거처럼 정신없이 붕붕거렸고, 또 미워할 때는 흑마술을 연마할 수 있다면 악마 숭배도 서슴지 않을 기세로 활활거렸다. 


고3 때는 영화에 푹 빠져 미래야 망가지든지 말든 거의 매일, 영화를 보느라 밤을 새웠다. 부모도, 담임도, 내가 대학은커녕 사람 구실이나 제대로 하면서 살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나는 당당하게 영화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 내 기고만장은 하늘을 찔렀으나 안타깝게도 가진 재능은 바닥이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거는 또 다른 거였다. 그래도, 그런데로도 즐거웠다. 내가 찍어 간 엉망진창의 다큐멘터리를 본 교수가 너는 남자였으면 싸대기 맞았어, 라고 했을 때에도, 학점이 2점대를 겨우 넘겨도 그저 카메라를 들고 설쳐대는 것만으로 신났다. 후에, 영화를 만드는 일이 내 적성이 아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관둔 후에는 나는 누구고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인지 모르겠는 채로 한참을 방황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그저 마음 가면 가지는 대로

대책 없이 전력 질주해 버렸다.

그러나 그때의 무모함이, 하염없는 속 없음이 퍽 그리워지는 이유는 왜일까.




이른 아침, 여느 때처럼 강아지 산책을 하다가 학교 앞 아이들처럼 달려보고 싶어졌다. 나는 매일 다니는 산책 코스를 벗어나 8차선 도로 옆 보행로로 향했다. 그리고 쭉 뻗은 길 따라 무작정 뛰었다. 있는 힘껏. 개와 함께. 지칠 줄 모르고 달리는 강아지와는 다르게 500m 좀 못 가 주저앉고 말았다. 개는 혀를 길게 빼고서 빨리 일어나 좀 더 뛰자고 보채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미안하게도 도무지 더 못 뛸 거 같았다. 온몸이 달아오른 채 허리가 쩌릿쩌릿 저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겨우 숨 고른 후 집에 도착해 보니 오전 7시 반. 오늘 하루가 시작도 되기 전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다만 달리고 오니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바로 아침 식사를 대충 하고 싶지 않게 된다는 점. 새벽부터 뛰고 왔는데 아침을 대충 먹으면 기껏 운동한 게 도루묵 되는 기분이 든달까. 가벼우면서 허기와 식욕을 채워줄 만한 든든한 음식을 찾아보았다.


집어든 것은 냉동칸 안 닭가슴살.


나는 닭가슴살을 봉지 째 찬물에 넣어 녹이기부터 했다. 냉동 상태로 삶아도 삶아지기는 하지만 종종 너무 질겨져 도무지 먹을 만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 강아지 밥 챙기고 이부자리 정리한 후 샤워하고 나오니 닭가슴살이 어느 정도 녹아 있었다. 그대로 냄비에 넣은 후 찬물을 부어 중불에 놓고 끓였다. 물이 팔팔 끓어오르면 약불로 옮겨 또 한 15분 더 삶았다. 닭가슴살의 가장 도톰한 정 가운데 부분을 젓가락으로 찔러 핏물이 안 나오면 다 익은 것. 불을 끈 후 닭가슴살을 바로 꺼내도 되지만, 뜸 들이면 좀 더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너무 오래 담가 두면 닭가슴살의 쫄깃한 식감이 사라져 거의 뭉개질 정도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적당히 식었을 때 빼는 게 낫다. 접시에 올린 후 가운데를 갈라 내부가 잘 읽었는지부터 확인. 아주 잘 익었다. 적당히 탄력 있으면서도 야들야들 부드러운 게 의도대로 삶아져 흐뭇해졌다.


소스는 허니머스터드나 스리라차, 간장과 꿀, 올리브유를 동량으로 섞은 간단한 오리엔탈 드레싱 등 어떤 것이든 잘 어울리지만 개인적으로 아침 식사로 먹을 때에는 누가 뭐래도 바질 페스토가 최고다. 따로 샐러드 채소가 준비된 게 없을 때라면 더욱더. 바질 페스토의 푸릇함이 아침 식사에 프레시한 활기를 불어넣는다. 아낌없이 듬뿍 찍어먹어야 제 맛.


이토록 단출한 차림으로도 충만한 아침 식사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종종 달린다. 늘 강아지와 함께. 여전히 녀석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 하지만. 


실은, 전속력을 다하다 넘어지고 깨지던 상처 때문에 더는 뛰지 못하는, 아니 뛰지 않는 어른이 된 내 몸과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심정으로 뛰는 것이다. 다 식어 재가 돼 훌훌 날아가버린 지 오래된 줄로만 알았던 내 안의 열정이, 어떤 용기가 땅을 박차고 뛰어오를 때마다 파바박, 스파크 튀듯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그러니, 뛰는 수밖에. 


닭가슴살 부드럽게 삶는 법
1. (냉동의 경우 해동한 후) 닭가슴살을 냄비에 넣는다. 
2. 닭가슴살이 완전히 잠기도록 찬 물을 붓는다. 
3. 중약불에 삶는다. 
4. 팔팔 끓어 오르면 약불로 줄인 후 15분 더 삶는다. 
5. 젓가락으로 가잠 두툼한 부분을 찔러 핏물이 나오지 않으면 다 익은 것. 그대로 뜨거운 물에 좀 더 둔다. 오래 둘수록 부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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