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가슴살 부드럽게 삶는 법]
도대체 어디를 가려고 저렇게 신이 나 달리는 것일까. 친구네? 분식집? 설마 학원 가는데 저렇게까지 뛰지는 않겠지? 가야 할 곳에 먼저 마음을 던져 놓고서 이제 몸만 가면 돼!라는 듯 한 달리기였다. 상체가 앞으로 쏠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그런 달리기. 넘어지면 아플 텐데, 분명. 애들은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전속력으로 달렸다.
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뛰는 것 말고도 사사로운 많은 일들에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던 시절이. 웃을 때는 배가 찢어지도록 웃고, 별 일 아닌 일에도 숨 넘어가도록 소리 내 울었다. 누군가 좋아할 때는 태풍의 한가운데 풍선이 된 거처럼 정신없이 붕붕거렸고, 또 미워할 때는 흑마술을 연마할 수 있다면 악마 숭배도 서슴지 않을 기세로 활활거렸다.
고3 때는 영화에 푹 빠져 미래야 망가지든지 말든 거의 매일, 영화를 보느라 밤을 새웠다. 부모도, 담임도, 내가 대학은커녕 사람 구실이나 제대로 하면서 살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나는 얼떨결에 영화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 내 기고만장은 하늘을 찔렀으나 안타깝게도 가진 재능은 곧 바닥을 보였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거는 또 다른 거였다. 그래도, 그런데로도 즐거웠다. 내가 촬영한 엉망진창의 다큐멘터리를 본 교수가 너는 남자였으면 싸대기 맞았어, 라고 했을 때에도, 학기마다 학점이 2점대를 겨우 넘겨도 그저 카메라를 들고 설쳐대는 것만으로 대책 없이 신났다.
그렇게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마음이 가지면 가지는 대로
전력 질주해 버렸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퍽 한심하기도 한데,
그 시절의 무모함이,
그 하염없는 속없음이
어째서 이토록 그리운 것일까.
오늘 아침, 여느 때처럼 강아지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하굣길 아이들처럼 달려보고 싶어졌다. 나는 매일 다니는 산책 코스를 벗어나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8차선 도로 옆 보행로로 향했다. 그리고 쭉 뻗은 길 따라 무작정 뛰었다. 있는 힘껏. 그러나 지칠 줄 모르고 달리는 강아지와는 다르게 500m 좀 못 가 주저앉고 말았다. 개는 혀를 길게 빼고서 빨리 일어나 좀 더 뛰자고 보채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도무지 더는 못 뛸 거 같았다. 길거리에서 벌러덩, 누워 버리고 싶을 정도로 숨이 찼다. 어기적 어기적 집에 도착해 보니 오전 8시. 오늘 하루가 시작도 되기 전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다만 달리고 오니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바로 아침 식사를 대충 하고 싶지 않게 된다는 점. 새벽부터 뛰어서 그런지 배가 고팠고, 든든하게 먹고 싶어졌다. 냉장고를 열어 가벼우면서 허기와 식욕을 채워줄 만한 든든한 음식을 찾아보았다.
집어든 것은 냉동칸 안 닭가슴살.
나는 닭가슴살을 봉지 째 찬물에 넣어 녹이기부터 했다. 냉동 상태로 삶아도 되기는 하는데, 자칫 질겨질 수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해동을 하는 게 나았다. 강아지 밥 챙기고 이부자리 정리한 후 샤워하고 나오니 닭가슴살이 어느 정도 녹아 있었다. 그대로 냄비에 넣은 후 찬물을 부어 중불에 놓고 끓였다. 물이 팔팔 끓어오른 에는 약불로 옮겨 15분 정도 더 삶았다. 닭가슴살의 가장 도톰한 부분을 젓가락으로 찔러 핏물이 안 나오면 다 익은 것. 불을 끈 후 닭가슴살을 바로 꺼내도 되지만, 뜸 들이면 좀 더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너무 오래 담가 두면 닭가슴살의 쫄깃한 식감이 사라져 거의 뭉개질 정도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적당히 식었을 때 물에서 건져 낸다. 접시에 올린 후 가운데부터 갈라 내부가 잘 읽었는지부터 확인. 아주 잘 익었다. 적당히 탄력 있으면서도 야들야들한 게 의도대로 삶아져 흐뭇해졌다.
소스는 허니머스터드나 스리라차, 간장과 꿀, 올리브유를 동량으로 섞은 간단한 오리엔탈 드레싱 등 어떤 것이든 잘 어울리지만 개인적으로 아침 식사로 먹을 때에는 누가 뭐래도 바질 페스토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따로 샐러드 채소가 준비된 게 없을 때라면 더욱더. 바질 페스토의 푸릇함이 아침 식사에 활기를 더해준다. 아낌없이 듬뿍 찍어먹어야 제 맛. 단출하지만 충만한 아침 식사가 되었다.
달리며 알게 되었다. 전속력을 다 해 뛰다가 넘어지고 깨져서 난 상처 때문에 더 이상 뛰지 못하는, 아니 뛰지 않는 어른이 된 거라는 사실을. 인생에 가장 바보 같았던 그 시절이 그리운 이유도, 다시는 그렇게 뛸 수 없어서 일테지.
닭가슴살 부드럽게 삶는 법
① 냄비에 닭가슴살을 넣는다.
② 닭가슴살이 완전히 잠기도록 물을 붓고서 중불에 삶는다.
③ 팔팔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인 후 15분 더 삶는다.
tip
❶ 젓가락으로 가잠 두툼한 부분을 찔러 핏물이 나오지 않으면 다 익은 것.
❷ 다 익은 후 그대로 두면 둘수록 좀 더 부드러워진다.
❸ 생 닭가슴살보다 냉동한 닭가슴살을 해동해 익혔을 때 늘 더 부드러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