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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승 Jun 11. 2024

스콘 만들기 얼마나 쉽냐면

신학기. 나는 새 노트를 펼칠 때마다 늘 조마조마했다. 글씨를 삐뚤빼뚤 쓰거나 오탈자가 나올까 봐서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긴장을 하면 할수록 (그니까 아끼는 노트일수록) 어김없이 실수를 했다. 지운 후 다시 쓰고, 그러고도 또 틀려 지우개로 벅벅 문지르다 보면 노트의 맨 앞 장은 번번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렇게 완벽하게 시작하지 못한 경우, 뒷장부터는 대충 갈겨쓰는 게 수순이었다. 그새 노트에 정이 똑 떨어져 버린 것이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에는 아직 학교에서 서예를 배우거나 칸이 그려진 노트에 정자체 쓰는 연습을 참 많이도 했다. 노트 첫 장에 대한 강박도 아마 거기서 비롯된 거겠지,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아녔다. 나는 그저 시작을 두려워하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학습과 일, 새로운 사람과 만남과 이별, 새로운 슬픔, 새로운 기쁨마저도 다. 시작과 함께 따르기 마련인 모든 종류의 생소한 부대낌에 나는 늘 썰물에 남겨진 물고기처럼 허덕거렸다. 


안타까운 점은 내가 이 같은 유형의 성격이라는 사실을 대학에 입학한 후에야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문예창작과라는 데로 흘러들어 갔는데 (좀 무책임한 말이긴 하지만 이렇게밖에 설명이 안 된다) 학기마다 새로운 시와 소설 등을 써내야 했다. 제출 마감 바로 전 날까지 존도 못 대고 있다가 초조한 마음, 달래려 밤늦게까지 술을 진탕 마신 후 술기운 빌려 겨우 개발 새발 써 내려가기를 반복한 게 내 캠퍼스 라이프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남편은 내가 보호받지 못 한 채 성장해 인정 욕구가 과해졌으며 그로 인해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엄격해진

거라며, (늘 그렇듯) 심리학자 코스프레를 하며 진단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그저 

시작이 두렵다. 그뿐인 것이다. 


어쨌든 성격이 이렇다 보니 취미 한 가지 갖는 거조차 조심스럽다. 뜻대로 안 되면 금세 관둘 게 뻔하니. 그러던 중, 도심 한 복판 살다가 지방으로 내려가 살게 되던 해였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에 나는 거의 매일 아침, 빵으로 식사를 했는데 이사한 동네는 그 흔한 프랜차이즈 빵집마저도 변변않아서 이거 참, 난감해졌다. 


거의 1년여간, 비앤씨마켓 (베이킹 전문 몰) 장바구니에 베이킹 재료를 넣었다 뺐다 반복하다가 우연히 스콘 레시피를 보게 되었다. 몇십만 원에 호가하는 반죽기라던가 성형틀 따위 없어도 되고, 그 어렵다는 발효도 아예 할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베이킹 입문자에게 딱인 것이다! 


마침 내가 북촌 살 적에 가장 많이 먹었던 빵, 또한 말차 스콘이었다. 당시에 나는 말차에 미쳐서 말차 아이스티와 말차 라떼, 말차가 들어간 빵과 쿠키와 잼, 말차 아이스크림은 물론, 일단 초록빛이 나는 음식은 아마 말차일 거야, 하고 자연스럽게 손이 갈 정도로, 그야말로 말차라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던 때라서, 빵을 고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관광객이 많지 않은 토요일 때이른 아침, 한옥 지붕을 내려다보며 한적한 계동길 지나 대로변에 자리한 그 빵집에 들어가 갓 나온 따뜻한 빵을 한아름 품고 나오는 게 그렇게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턱없이 적은 말차 함량이었다. 하지만 직접 만들면 말차를 왕창 넣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당장에 밀가루 한 봉지와 베이킹파우더를 사 왔다. 1만 원이 안 되는 가격이었다. 




레시피는 너무 쉬웠다. 가루 재료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설탕과 소금) 먼저 섞고, 잘게 자른 버터, 우유 순으로 넣은 후 반죽을 한다. 30분 이상 휴지*. (반죽을 잠시 쉬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여름이라면 냉장고에 넣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세모나 네모 등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서 오븐에 넣으면 그만이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빠트린 것만 같아, 겨우 이 정도로 스콘이 만들어질 리 없다는 의심을 품은 채 오븐 앞에서 꼼짝 않고 창 너머로 스콘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요즘은 말차 말고 홍차에 빠져 있어서(...) 얼그레이스콘을 주로 만들어먹는다.

띵. 오븐의 알람소리가 채 꺼지기 전에 나는 문을 열어 스콘 한 덩이를 접시로 옮겼다. 모양은 좀 찌그러졌지만 맛은 그야말로 스콘이었다! 


갑자기 나는 갑자기 베이킹에 아주 큰, 그러나 매우 섣부른 자신감을 얻었고, 미루던 베이킹 도구를 왕창 사들였으며 수 없이 많은 실패를 맛봐야 했다. 발효가 잘 되지 않는 것은 예삿일, 발효 중이던 반죽이 액체 괴물처럼 그릇 밖으로 기어 나올 때도 있었고, 빵이 돌처럼 딱딱하거나 덜 익은 반죽이 물컹하게 씹히는 등의. (...) 


반면에 스콘은 늘 후했다. 스콘의 놀라운 점 중 하나가 대충 만들수록 맛있다는 것이다! 베이킹은 재료의 온도에 예민한데 스콘에 들어가는 우유는 차가울수록 더 맛이 좋았다. 버터도 마찬가지. 찬 상태가 좋으며 잘게 자른 버터가 눈에 보일 정도로 반죽에 대충 섞는 게 정석. 또한, 여타 빵반죽처럼 정성을 다 해 치대지 않고, 힘 빼고 적당히 빚어야 해야 겉은 포슬포슬, 속은 촉촉한, 이상적인 스콘이 된다. (이쯤 되면 스콘이 다른 유럽권에 비해, 음식 문화가 덜 발달한 영국의 대표 브레드인 게 아주 우연은 아닌 듯싶다.) 


사소한 실수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른 빵에 비하면 스콘은 이른 아침, 잠에서 덜 깬 채 대충 만들어도 참 맛있게 만들어져서, 여전히 가장 즐겨 만든다. 대충 해도 되는, 아니 대충 할수록 잘 되는 일이라는 게 세상에 얼마나 더 있을까. 그래서인지 오븐에서 갓 나온 울퉁불퉁 못 생긴, 그러나 속은 더할나위 없이 부드러운 스콘은 늘 나에게 그럴 수도 있어! 라고 용기를 주는, 부적과 같은 빵이 되었다.


스콘 만들기
1. 보울에 밀가루 200g와 설탕 1T, 를 섞는다. 
2. 버터 50g를 잘게 쪼개 (콩 크기로) 1에 넣는다. 
3. 우유 125ml를 2에 넣어 반죽한다. 
4. 30분간 휴지한다. (여름이라면 냉장실에서) 
5. 원하는 모양으로 빚는다. (높이는 2cm 정도) 
6. 오븐 예열 후 200도에 15분 굽는다. (처음이라면 180도에서 20분 굽기부터 추천-오븐에 따라 성능이 다르기 때문에 낮은 온도부터 테스트해봐야 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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