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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승 Jun 25. 2024

상추 처리에 강된장만한 게 없다

텃밭을 한 지 3년째. 

해마다 다짐을 하고도, 

해마다 어기는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잎채소 적당히 심기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상추들. 상추가 자라는 속도는 비현실적이다. 잔뜩 뜯어봤자 뒤돌아서면 또 자라나 있다. 도무지 줄지를 않는 것이다. 주변 텃밭 사정도 마찬가지라 나눔 하기도 뭐 하다. (만약 옆 텃밭 지기가 상추를 나눠주겠다 한다면 그것은 사실은 당신에게 불만이 있어요라는 말의 표식일 수도 있다) 아무튼 자칫 방심했다간 감당이 안 되는 수준에까지 이르기 때문에, 끼니때마다 부지런하게 풀을 뜯어야 한다. 마트에서 파는 것과 달리 흙과 애벌레, 달팽이 등이 붙어 있기 때문에 씻는 것도 참 일이다. 족히, 백장은 될 듯 한 상추들, 한 장, 한 장 손질하면서, 속으로 굳게 다짐하게 된다. 


내년에 상추 많이 심지 말자. 

아니, 진짜로. 


그러나 작물이 잘 자라는 계절이 다 가고 겨우내 쉬다가 이윽고 봄이 오면, 모종 가게 앞 내놓고 파는 어린 상추에 또! 또! 또! 손이 가고야 만다. 지난해 여름 내내 물리도록 풀 뜯던 기억은 온 데 간데 사라진 지 오래다. 치마 상추, 꽃상추, 로메인, 사실은 다 거기서 거기인 상추들, 대책 없이 집어와 밭에다 심는다. 그렇게 이제 막 기지개 켠 땅의 가슴에 푸릇한 상추를 한 아름 안겨 줘야만 비로소 봄이 온 것만 같다. 아아, 겨울이 너무 긴 게 문제다! 밭에 나갈 날만을 기다리다 보니 매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하는 수 없지. 소처럼 우적우적, 먹는 수밖에. 


요즘은 초여름 같지 않게 무척 더워서 도무지 대낮에 잡초 메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분명 상추놈들도 어마어마하게 불어나 있겠지. 이른 새벽, 부지런하게 집을 나섰다. 텅 빈 도로 위 모처럼 느긋하게 운전을 했다. 벌써 불 들어온 김밥집 간판과 텅 빈 주말 아침의 버스, 자전거 동호회 무리 등 아직 잠에서 덜 깬 도시를 가로지르니 사소로운 것, 하나하나가 눈에 들었다. 


15분 정도 달리니 도착. 차에서 내리자 젖은 흙내음이 훅 끼쳤다. 아, 이 맛에 텃밭에 온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직 해가 오르지 않아 그늘진 데다 풀이 적당히 젖어 있어 잡초 뽑기에 딱 좋았다. 상추를 한 바구니 거뒀고, 깻잎도 조금, 이때만 먹을 수 있는 여린 호박잎도 좀 땄다. 유월이 되면 상추 말고도 깻잎, 호박잎을 먹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 또한 지겨워질 즈음에 또 콩잎이 나는데 이게 또 기가 막히다. (제주에서는 날콩잎을 쌈으로 먹는다)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물을 주었다. 


집으로 와 곧바로 아침 식사를 차렸다. 잠에서 덜 깬 남편은 내가 싸가지고 온 채소를 정리하고, 나는 그 옆에서 강된장을 만들었다. 별다른 재료 없이 물에다 된장, 고추장 동량으로 풀고 냉장고 속 자투리 채소 등 넣어 자박하게 끓이기만 하면 되니까 간편해, 아침 식사로 딱이다. 어떤 야채든 잘 어우러지는 것 또한 장점 중 장점. 감자와 양파, 애호박은 기본, 무나 배추, 고추, 가지, 버섯 등 어지간한 건 다 잘 받아내 준다. 좀 든든하게 먹고 싶을 때에는 고기를 추가해도 좋고. 무엇보다 두부를 넣어야 식감이 보들보들하면서 맛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빼놓지 않는다. 순식간에 만들어낸 강된장과 새벽녘, 왕복 7km 달려 얻어 온 싱싱한 여름의 잎채소들, 물기 탈탈 털어내 상에 올리니 뿌듯해졌다. 


밥상 앞에서 알아서 쌈채소부터 집어 손바닥 위 착 올리는 큰 아이와 달리, 둘째는 손도 안 댄다. 반으로 자른 상추로 알사탕만 한 쌈을 싸 억지로 입에 넣어줘야만 겨우 오물오물 거리는 정도. 


어릴 때는 엄마가, 어른이 돼서는 애인이, 종종 힘내라 그러며 친구가 싸주던 쌈. 손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 

앉아 입을 아, 하고 크게 받아먹던 순간을 되짚어보니 전부 다 한 때, 혹은 여전히 가득 좋아한 사람들과의 추억뿐이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순해지는 참 편한 사람들. 사실 나는 쌈 싸주는 문화가 좀 어색해 받아먹기만 했을 뿐, 선뜻 누군가에게 싸 준 적은 없는데, 자식 낳고서 온종일 자식 입에다 음식을 넣어주다 보니까 그 마음, 좀 알게 되었다. 든든하게 먹이는 것보다 더 원초적인 사랑의 표현은 단언컨대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 땅이 우리에게 아낌없는 베푸는 사랑을, 부지런하게 받아먹기로.  

사이좋은 사람들이랑 도란도란, 

가까이 마주 앉아, 또한 

주고받으며

그렇게. 


강된장 만드는 법

1) (고기를 넣을 경우에) 냄비에 고기를 볶는다. 
2) 잘게 썬 야채를 더해 볶는다. 
3) 2의 야채가 숨이 죽으면 된장과 고추장을 한 스푼 씩 동량 넣는다. (고기와 야채, 총합이 300g 정도일 경우 된장과 고추장 각각 1.5T)
4) 재료가 잠길 듯 말 듯하게 멸치 육수를 넣어 끓인다. 
5) 다진 마늘 1T, 고춧가루 1T, 어슷 썰은 파 넣고서 한소끔 더 끓이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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