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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라 Jul 02. 2024

생선 한 마리가 전부인 밥상

[연어차밥]

친구가 죽고 난 후 총 세 번, 꿈에 나왔다. 


제일 처음 꾼 꿈은 그 애가 나를 보며 아무 말 없이 웃는 꿈이었다. 그게 다였다. 


두 번째는 그 애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꿈. 

- 너 살아 있었어? 

나는 너무 놀라 말을 더듬거리며 떠는데 그 애는 활짝 웃으며 사정이 있어 그랬다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거 정도로 가볍게 끝 낼 사안이 아니지 않냐고,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냐고, 치미는 말들을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울음이 터지기 직전인데도 자꾸만 걔 따라 웃게 되었다. 


마지막은 꽤 최근에 꾼 꿈으로 내가 어느 대학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는 거부터 시작을 한다. 한 무리 학생들이 나에게 다가와 p가 살아있던 거 알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한 한생이 서둘러 창가 쪽 낮은 책장에서 한 노트를 꺼내와 나에게 건넸다. 그 애의 것이라 말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노트를 펼쳐 보았다. 그러나 그 애의 필체가 아녔다. 내가 믿지 않자 노트를 건넨 학생이 그 애가 곧 올 거라며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금방이라도 온몸이 펑 터져 가루가 될 거 같은 기분을 겨우 진정시키며 한없이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끝내 그 문은 열리지 않았다. 꿈에서 깬 후, 나는 차마 눈을 뜨지 못 한 채 울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한 그 문을 박차고 나가 건물 안을 다 뒤져서라도 그 애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 애가 살던 집은 구조가 특이했다. 대문 바로 옆, 쪽문이 있는데 그 문을 열면 바로 방이 나왔다. 다시 말해 대문을 거치지 않고도 외부에서 방 문을 열 수 있는 셈이다. 삐걱거리는 알루미늄 미닫이 문을 열면, 바닥에 늘 이불이 깔려 있고, 벽에는 빈 공간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옷가지가 치렁 치렁 걸려 있는, 초라한 세간살이가 한눈에 들어오는 그 애의 방이었다. 모두가 철없던 때라 나뿐 아니라 그 애의 다른 친구들도 모두 다 아무 생각 없이 그 문을 열어젖혀 그 애를 불러 내고는 했다. 그 문은 잠겨 있던 때가 거의 없었다. 사실상 그 문이 그 방의 창이었으니 잠가두기가 번거로웠을 것이다. 어째서인지 나는 오랜 시간 그 문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마지막 꿈을 꾸고 난 후 번뜩 그 문이 생각이 났고, 그 애와 관련한 작은 에피소드 하나가 마치 엊그제 일처럼 떠올랐다. 


아침에 그 애랑 같이 학교에 가려고 여느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 문을 열었다. 늘 그렇듯 형형색색 이불이 두세 장 깔린 방 위에 자그마한 밥상이 차려 있었다. 쌀밥과 생선 한 마리가 전부인, 단출한 밥상 앞 그 애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가 그 애 방으로 아침상을 가져다준 것 같았다. (애는 부모가 이혼을 한 후 줄곧 할머니댁에 살았다) 아무튼 그 애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어쩐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좀 당황해하며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나 또한 괜스레 머쓱해져서 잽싸게 문을 닫은 후 골목 밖으로 나가서 그 애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애가 나왔다. 늘 그렇듯 배시시 웃으며. 나는 어쩐지 걔가 밥을 다 먹고 나오지 않은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기억은 도대체 우리 몸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디에 있다가 이렇게 불쑥 튀어나오는 것인지. 겨우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 일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기억의 늪 저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그 장면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너무도 마음이 아리다. 어른이 된 나는 그 단출한 밥상은 가족의 상실을, 동시에 부모 없이 자라는 가여운 손주를 위해 아침상에다 올릴 생선을 굽는 가난한 노인의 노고를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혼자 밥을 먹을 때에는 그다지 생선을 굽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씩 따뜻한 차밥이 먹고 싶어질 때만 예외적으로 연어를 굽는다. 겨우 생선 한 마리에다 밥을 먹는 건데도 초라하지 않고, 도리어 근사한 거의 유일한 음식 아닐까, 싶다. 앞으로 혼자 먹을 생선을 구울 때마다 나는 이불 위에서 흰 쌀 밥에 생선 한 마리, 혼자 밥 먹던 그 애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매번, 이제 막 생각이 난 거처럼 똑같이 먹먹해질 것이다. 


언제든 문 열어젖히면 만날 수 있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리워하며 살다 보면 꿈길 위에서 만날 수 있겠지. 아니면, 언젠가 또 잊고 있던 추억 하나가 스르륵, 떠밀려 와 줍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세상 떠난 지 오래된 사람과 또 새로운 추억을 쌓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생선 한 토막으로 충분한 연어차밥 (오차즈케) 간단 레시피

① 오븐이나 팬으로 생선을 굽는다. 
② 밥 위에 올린다. 
③ 녹차를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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