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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라 Jul 09. 2024

덜 익은 콩나물에 대한 추억

[콩나물국밥]

콩나물 생으로 먹어본 적 있는지. 나는 있다. 대야 만한 그릇에 가득 담아 아작아작. 


약 십여 년 전. 남편과 연애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이다. 남편의 9평짜리 작은 자취방으로 처음 놀러 간 날. 갑자기 남편이 밥을 해주겠다며 방에서 기다리랬다. 언젠가 내가 요리하는 것 좋아한다고 했더니 맞장구를 치며 자신도 좋아한다고 했던 게 불현듯 생각 나 내심 기대가 되었다. 방에서 음식이 다 되기를 기다리면서 그가 요리를 하며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그런데 재료가 미처 준비가 안 됐던 것인지, 두 어번 정도 나갔다 오는 소리가 들렸다. 집 바로 앞, 편의점 하나가 있기는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뭘 사다가 요리를 한다는 것일까. 살짝 문 열어 내다 보니 그는 거의 다 됐다며 웃었다. 


식탁 위에는 눌러 담은 흰쌀밥과 프라이와 스크램블 그 사이 어디쯤의 계란 요리, 소고기 장조림 통조림 (이것 때문에 편의점 간 거였다)이 올려있었고, 마지막으로 콩나물국이 나왔다. 그것은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있을 리 없는 국그릇 대신, 거의 대접 수준의 라면기에 담겨 있었다. 선뜻 먹어 볼 엄두가 안 났다. 한눈에 봐도 콩나물이 전혀 안 익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재배 중인 상태라 해도 믿을 판. 그러나 성의를 봐서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국물을 먹어보았다. 맹물이었다. 콩나물은 역시나 아삭아삭했다. 


당시 내가 남편을 좋아하기는 했었나 보다. 생 콩나물, 한 줌을 씹어 먹고는 맛있다 그러며 언젠가 또 해달라 했던 거 보니. 남편은 만족스러워 보였다. 


식사를 마친 후 저 사람이 왜 요리를 좋아한다고 했을까, 곰곰해졌다. 좋아한다고 했지, 잘한다고 한 적은 없으니, 뭐. 9평짜리 작은 원룸이라서 테이블 옆 육중한 5단짜리 책장이 딱 붙어 있었다. 나는 행주로 테이블을 훔치며 불현듯, 내가 대학서 문학을 했다고 하니, 자신도 문학에 관심이 많다고 했던 게 생각이 나 책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사회 과학 사이에 문학 작품이 몇 권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전부 다 표지가 빳빳한 게, 한눈에 봐도 새로 산 지 얼마 안 된 책들이었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남편의 저도 좋아합니다, 라는 말은 사실

저도 좋아하려 합니다, 였다는 거. 


나와 남편은 전혀 다른 세상에 살다가 우연히 만났다. 나는 문학을 전공했고, 남편은 공대를 나왔다. 자연스럽게 일하는 분야도 달랐고, 관심사 또한 겹치는 게 없었다. 나의 유일한 취미는 걸으며 사진 찍는 것이나 당시 남편은 그 흔한 카메라 한 대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어떤 취미를 갖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랑 대화 속에서 에너지 주고받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나는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안정을 느끼는 타입. 성격마저도 완전히 반대인 것이다. 하다 못해 가까운 동네 살았던 적이라던지 같은 계절에 태어났거나 하는 소소한 우연조차도 일절 없는 우리. 가끔은 그런 우리가 결혼을 게, 그처럼 엄청난 결정을 내린 게 퍽 신기하기도 하다. 나는 공유할 수 있는 게 많아서 대화가 잘 통하거나 성격이 비슷해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상대랑 결혼하는 게 좋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해 왔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나 결혼 후 알게 되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같고 다름은 계속해 변한다는 사실을. 

하는 일과 하고 싶은 것, 

취미며 취향,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중요한 것은, 서로가 얼마나 같아질 수 있고, 또 얼마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지였다. 


남편은 이제 나보다 더 사진을 잘 찍고, 할 수 있는 요리도 제법 늘었다. (아무래도 취향인 건지, 콩나물을 여전히 덜 익히지만) 나 또한 남편이 추천한 과학 기술에 대한 뉴스레터를 받아 보기도 하고, 운전할 때는 요즘 어떤 노래 듣는지 묻고 같이 듣는다. 사소한 거지만 우리 둘 사이에 차곡차곡 쌓여, 우리를 더 친밀하게 만들어준다. 여느 부부처럼 시시콜콜한 일로 입씨름하고, 다시는 안 볼 기세로 험한 말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상대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는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려 한다. 그럴 때마다 늘 싸움이 커졌다. 왜 싸우게 됐는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저 사람과 내 세상 전부가 충돌되었으니까. 또한, 그렇게 지난한 싸움 후 남겨진 상처는 아무는 데 더 오래 걸렸다. 


이제 겨우, 혹은 무려 결혼 13년 차. 

우리는 닮은 점이 늘었고, 

또 여전히 많이 다르다. 



모처럼 콩나물국을 끓였다. 먼저 물에다 다시마와 황태 넣고 푹 끓인다. 그래야 밥 말아먹기 좋은 뽀얗고 푸근한 육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 국물이 뽀얗게 변하면 다시마 건져 낸 후 콩나물 넣고 또 한 소끔 더 끓인다. 파와 간 마늘, 파 넣고 불을 끈 후 들기름 한 바퀴 휘리릭. 서로 상극인 관계를 물과 기름에 비유하고는 하는데, 콩나물국 끓일 때만큼은 예외다.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이 완전히 섞일 이유도, 또 완벽히 분리될 필요도 없이,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번진 채 적당히 조화로우면 일이다. 콩나물황태국 끓이는 거보다야 100배 넘게 어렵긴 하지만.


황태국 간단 레시피

① 다시마와 황태 머리, 황태채를 넣고서 푹 끓인다. 
② 팔팔 끓어 오르면 다시마는 건져 낸다. 
③ 콩나물을 더한다. 
④ 파와 간 마늘 넣고서 간을 한다. (새우젓 추천)
⑤ 불을 끈 후 들기름을 한 바퀴 두른다. 

tip 

황태채를 들기름에 볶기도 하는데 들기름은 열을 가하면 산화되 안 좋은 물질이 나온다고 한다. 또한 그 향도 옅어지기 때문에 마지막에 넣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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