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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승 Jun 18. 2024

반찬 대신 저장 음식

주말 아침, 엄마가 왔다. 식탁에 앉아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부터 풀었다. 전부 다 먹을거리였다. 애들은 오래간만에 할머니를 만나니 신이 나 쉴 새 없이 조잘거리고, 엄마는 무슨 말인지 다 못 알아들어도 껄껄 웃으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내 눈치를 살폈다. 보통이라면 나는 왜 그렇게 쳐다보냐며 웃어 보였겠지만 어쩐지 그날은 그럴 여력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올해 초, 남편의 갑작스러운 이직으로 지방에서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전세 대출이 늘었고, 이자는 달마다 좀 무섭게 오르는 상황. 은행 어플에 들어갈 때마다 <30대 평균 순자산 x.xx억원, 당신의 자산은?> 이라는 질문이 뜨는데, 볼 때마다 맥이 풀린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을 엄마도 어렴풋 알고는 있지만 자세히 물어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내가 돈 때문에 앓는 소리를 할 때마다 자리를 피하기 바쁘다.


아기가 막 돌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선배로부터 좋은 자리가 났다며 연락이 와 엄마에게 아기를 봐달라 부탁한 적 있었다. 다소 갑작스러운 상황이기는 했으나 엄마는 마치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며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는 듯 미안하다는 말로 거절을 표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엄마가 자신의 일을 포기할 리 없었다. 엄마는 휴가 때조차 벽에 걸린 달력을 보며 일하러 가는 날을 기다리는, 그야말로 일 중독자였다. 그래, 차라리 잘 되었다. 이렇게 된 거 나는 아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당시에 나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엄마는 그로부터 몇 해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나에게 미안해한다.


엄마가 간장에 재워 온 불고기와 버섯볶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깻잎지 등으로 밥상을 차렸다. 가만 보니 내가 장조림 만들 때 주로 쓰는 재료들이다. 나는 냄비 안 몽땅 넣어 장에다 조리는 게 다인데 엄마는 하나하나 정성껏 반찬으로 해왔다. 내가 식탁 앞에 앉자 엄마가 깻잎지가 담긴 접시를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양념을 발라 켜켜이 겹쳐서 쩌내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깻잎을 두 장씩 집어 먹는 나를 보면서 엄마는 왜 그렇게 짜게 먹냐며 말리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번져 있었다. 나는 무리해 밥 두 공기를 먹었다. 사실은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기 힘겨운 내가 이 먼데까지 반찬을 이고 지고 온 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겨우 그뿐이라, 그래서 그랬다.


식사 후에도 엄마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가지고 온 반찬들, 우리 집 반찬통에다 옮겨 담아 텅 빈 냉장고에다 착착 쌓아 올렸다.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타박도 잊지 않고서. 엄마는 이제야 좀 안심이 된다는 듯 흡족해하며 떠났다.


엄마가 왔다 간 후에 나는 어김없이 서글퍼진다. 당장에 이불속으로 들어가 울고 싶어 지는데 그 이유를 당최 알 수가 없다. 캔 음료 하나 쑤셔 넣을 데조차 없을 정도로 반찬으로 가득 찬 냉장고를 들여다볼 때 더 그렇다. 엄마는 아직도 모른다.내가 왜 반찬을 만들어두지 않고, 끼니때마다 요리하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됐는지. 아침에 엄마가 잔뜩 해놓고 간 전기밥솥 안 푸슬푸슬한 밥과 차게 식은 찌개, 그리고 아무리 먹어도 줄지 않은 몇 가지 반찬을 꺼내 티브이 앞에서 먹는 둥 마는 둥 입 안에 욱여넣은 게 어린 시절, 집밥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이라 그렇다. 어느 순간부투 나에게 반찬은 공허한 음식으로 각인돼버렸다.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에 성장한 엄마는 잘 먹이는 게 잘 키우는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배가 불러도 엄마가 오기만 기다리면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차가운 밤공기 탓인지 금세 뱃속이, 아니 명치 아래 어딘가가 허해졌다. 내 아이들은 이 같은 외로움, 모르고 자라길 품 안에 낀 채 키웠다. 그러나 너무 딱 붙어 있어서일까. 아이는 내 헛헛한 눈동자에서 불안을 읽어내었다. 내가 울적해 보일 때마다 슬쩍 다가와 어색하게 씩, 웃는다. 나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내 아이도 나처럼 허기로운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진다.


도대체 엄마는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다음번에는 이렇게까지 반찬을 많이 해오지 말라고 엄마에게 말하고 싶은데, 아마 못 하겠지. 엄마 못지 않게 자식의 역할도 어렵긴 매한가지다.



반찬 대신 저장 음식
여러가지 남은 식재료 등 쉽게 소진할 수 있고, 또 저장 기간도 반찬에 비하면 훨씬 길어 만들어두면 든든하다.  

1. 장조림
푹 삶은 고기와 반숙 계란, 버섯과 채소 등 냄비에 담아 물과 간장, 설탕을 넣어 끓인다.
- 소스의 양은 간장을 물에 1/5, 설탕은 취향껏. (내 경우 물 1L에 간장 200ml, 설탕 2T)
- 채소는 무, 양파, 고추, 깻잎 등 추천.
- 고기는 찢어서 보관하지 말 것. 미리 갈라 놓으면 육향이 옅어지면서 짜기만 하다.

2. 피클
물과 식초, 설탕을 동량으로 넣은 냄비에 채소를 넣고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까지 끓인다.
-  거의 대부분의 피클 레시피에는 동량으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사과 식초의 경우 반만 넣어도 충분.
- 피클도 장조림처럼 다양한 채소를 시도해보면 좋다. 개인적으로 허브의 종류인 딜을 넣으면 맛이 훨씬 부드러워지면서 향기롭다.
- 추천 채소는 오이와 무 종류, 양파, 올리브, 고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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