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동안 사랑했었지-4
1998.1.29
텅 비어있는 듯한 도시를 가로질러 오는 발걸음을 고향을 향해 내딛던
그 발걸음이 아니라 허전함과 고독의 방랑 속에서 낯선 도시를 배회하는
한 마리의 굶주린 늑대처럼 바람이 쓸고 지나가듯 침묵만으로 그리움을
삼킵니다.
5일간의 연휴 속에 언제나 들어봐도 정다운 고향이라는 마음의 휴식처에 머물다가
아침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새벽에 출발해서 그런지 막히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태릉 쪽에 있는 작은 집에서 내려 정오까지 쿨쿨 잠을 잤죠.
그곳에서 저녁식사까지 한 후 밤 열 시쯤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는 기숙사로
들어왔습니다.
며칠간의 외출로 텅 비어있던 방은 더욱 쓸쓸함과 차가움으로 나를
맞이하더군요.
평소 근무가 끝나면 바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곳이지만,
그래도 내 삶의 활력소를 주기 위해 자그마한 휴식의 공간이 마련되는
곳이기에 새들의 둥지처럼 어김없이 찾아가는 곳이죠.
기숙사 방은 총 열두 개인데, 지금 불이 켜진 곳은 단 세 군데뿐이군요.
아마 이 방중에서 내 방이 일 년 중 제일 많이 불이 켜지는 곳일 겁니다.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오신 나이 드신 분들이기에 주말이면 모두 고향으로
내려가시니까 혼자인 제 방이 불이 많이 켜지는 건 당연한 거겠죠.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풍경도 조요하고 텅 빈 도로와 가로등만이 주위를
밝혀주고 있는 지금의 고요는 혼자만의 공간 속에 갇혀 있는 나를 더욱
외로움의 파도 속에 밀어 넣어 버리는 것 같아요.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성남에 있다면 동생과 함께 있는지,
연휴 때 고향에 갔다면 올라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내일이라는 미래를 위해 시곗바늘은 돌아가고 무언가를 준비해야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지금은 그냥 이대로 당신에 대한 생각만으로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앉아 있고만 싶군요.
당신의 눈빛, 당신의 미소, 당신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더듬으며 어떤 추억들이
있었는지를 과거라는 기차역에 머물러 스치는 바람소리와 들에 핀
풀 한 포기에도 당신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그 모든 것에 나의 사랑을
전부 받치고 싶습니다.
길지 않았던 시간, 그러나 앞으로 더 길게 남아 있는 시간 속에서 당신의
존재를 느끼며 내 삶의 의미를 떠올리고 싶고, 그 소중한 마음을
영원히 간직하리라는 것을 확신할 것 같아요.
조금은 세찬 바람이 당신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시샘하는가
봐요.
고요한 침묵을 깨뜨리고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창밖으로 내
시선을 이끄는군요.
그러나,
오늘은 어두운 하늘 아래 깨어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군요.
낮에는 시끄러움이, 밤에는 고요함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지금의 이런 고요가 있기에 당신에 대한 생각에 방해받지 않을 수
있거든요.
조용한 음악과 함께 커피 한잔이 당신을 생각하기에 더욱더
괜찮을 것 같아요.
이제 얘기를 마치고,
조용히 당신을 생각하며 커피 한잔 해야겠어요.
물론 커피를 마셨다 해서 잠이 쉽게 들지 못하겠지만,
그럴수록 당신을 생각할 시간은 많아지니까요.
잘 자요. 나의 사랑!
-향기로운 커피 향에 당신의 모습을 담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