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하세요.
지금까지 썼던 글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글은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알람을 꺼 둔 상태지만 초창기에 알람을 켜 두었을 때 조회수 1만을 기록하는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겐 엄청난 기록일 수밖에 없는데 참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어째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왜 이렇게 고통을 받으며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걸까.......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경험을 대략 공유했는데 그 결과가 다소 허망해서 혹여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글을 쓰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지 혹시 궁금한 사람이 있을까 봐 그 후기도 기록해 본다. 알다시피 아직도 여전히 그 상사와 한 팀에서 일을 하며 매일 얼굴을 마주한다. 그래, 솔직히 처음에는 더 분노했고 좌절했다.
처음 원했던 것은 그 상사와 떨어지는 것, 단지 그거였다. 그런데 그 소원이 성취되지 않았을 땐, 내가 받았던 고통 또한 인정되지 않는 기분이었고 되려 내가 민감하고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더 울분이 터졌는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서 용기를 낸 것인데 역시 회사는 한통속인가 싶기도 했고 오히려 나의 이미지에만 손상을 입힌 것 같아 억울했는지도.
이미 상사도 내가 그를 신고한 것을 알고 있고, 앞으로 계속 얼굴을 봐야 하는 상황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회사생활을 하겠는가? 사표를 쓸까? 그건 요즘 같은 경제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아니었다. 결론은 어떻게든 덜 괴롭게 회사생활을 계속하는 것이다. 물론 공기업의 특성상 언젠가는 인사이동으로 끝날 인연이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때만큼의 고통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살기엔 내 인생이 나무 가엾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사실 어떤 회로를 거쳐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랐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했던 방법은 그 상사를 나만큼 애처롭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새파랗게 젊은 부하가 나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며 나를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상사도 얼마나 기막혔을까. 단지 감수성이 많이 달라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과거엔 아무 문제없을 이까짓 언행에 '겨우'라는 말을 달고 고초를 겪는 처지가 답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그 인생도 짠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그 상사를 더 대우했다. 솔직히 과거 왜 그를 그렇게 싫어했는가 생각해보면 기본적인 성향이 안 맞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일적으로 신뢰가 없었다. 한마디로 별로 배우고 싶은 점이 없었다. 아마 이런 내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 상사에겐 반대로 내가 건방진 부하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재밌는 것은 그런 마음을 다 내려놓고 상사라기보다 애잔한 마음으로 그냥 한 명의 어른으로 대하다 보니까 정말 무능하다고 믿었던 그에게도 장점이 보였다. 연륜과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며 단지 그 나이까지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풍파와 우여곡절을 겪어 왔을지 다시금 깨달았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존경받을만했다. 어쩌면 나는 매일 계약직으로 살다 보니 밑에 부하를 거느린 적이 없어서 부하를 거느리는 상사의 마음을 한 번도 헤아리지 못했던 건지도. 이 역시 나의 열등감이 빚어낸 산물이었을까?
어쨌든 이번 일로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으니, 너도 나도 부족한 인간이지만 우리 개개인 모두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싫은 사람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극단으로 치달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물론 상식이 통하는 인간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