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밤과 함께했던 첫 마라톤 경기 아르바이트
풋풋한 스무 살. 대학에 입학 후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지방의 4년제 체육과에 입학해 각종 규칙을 배우고 다나까를 사용했다.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예의를 차리고 눈치를 보는 것 방법을 배웠다. 그 당시의 나는 그러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불만일 때도 있었지만 분명 좋은 부분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각종 행사에 단기 아르바이트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스포츠 전공 학생들에게 일감을 자주 줬는데, 내 생각엔 '체육과 학생들이 불평불만 없이 궂은일도 척척 해내고 상하관계로 인해 말을 잘 듣는다.'라는 인식 덕분이 아닐까 한다. 물론 실제로 내가 학생 시절일 땐 그런 분위기였다. 덕분에 학기 중이나 종강 시즌에도 어렵지 않게 돈을 벌 수 있었고, 그 첫 번째 기회였던 마라톤 경기에 대해 곱씹어본다.
한 학기가 지나고 가을이 찾아올 때쯤, 1박 2일로 다녀오는 아르바이트 제안이 들어왔다. 하늘 같은 선배와 썩 편하지 않은 동기들과 하루 종일 붙어있어야 한다니.ᐟ 하지만 이틀의 일당이 탐났으며, '외박'이라는 것이 설렘을 줬기 때문에 긴 고민을 하지 않고 지원했다. 토요일엔 다 함께 차를 타고 충남 공주로 이동했다. 허름한 민박집이라고나 할까 모텔 비슷한 숙박업소에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숙소가 외지고 차가 없으면 다니기 힘들어 '이 시골 동네에서 마라톤이라니, 동네 주민이 그렇게 많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다시 집결해 이동한 곳은 '공주시민운동장'.
공주시와 동아일보, 스포츠동아가 함께 주최하고 5km/10km 그리고 하프코스 및 풀코스가 모두 준비된 국제 마라톤이었다. 마라톤 기획을 맡은 총괄 운영본부가 있고, 나는 외부 용역인 스태프로 들어갔다. 그 외 모자란 인력은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등으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첫날에는 자원봉사자 없이 스태프에게 업무를 분담하고 경기장을 세팅하는 업무를 맡겼다. 다 함께 관람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경기 시작 전, 후로 지켜야 할 수칙과 주의해야 할 점을 안내받고 이동했다. 경기장을 정비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쓰레기를 줍고 천막을 친 뒤 테이블과 의자를 펴고 물품을 정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행사는 일당이 정해져 있지만 일이 빠르게 끝나면 할 일을 더 찾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주어진 일만 하면 되니 같은 업무를 배정받은 일행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해가 지기 전 일이 끝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오전 6시에 나가야 해서 일찍 들여보냈겠지만 젊은이들은 야식과 술을 시켜 다 함께 파티 타임을 즐겼다. 선배들은 후배를 방에 초대했고, 공주의 명물이라는 '김치피자탕수육'을 시켜주었다. 탕수육은 중국집에서나 먹었지, 단품으로 주문한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김치와 치즈를 얹다니.ᐟ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솔직히 첫인상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불금에 골목에서 보이는 비둘기 밥과 비슷한 비주얼에 시큼한 향, 걸쭉한 소스가 어색했다. 하지만 따뜻하고 촉촉한 고기에 가득 머금은 소스가 얼마나 잘 어울리던지. 지금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다. 김피탕은 파는 곳이 드물고 가격이 만만치 않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적더라. 공주마라톤.ᐟ 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김치피자탕수육. 굉장히 혀가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맥주 한 잔과 김피탕의 밤이 지나고 다음날 새벽이 되었다. 눈도 제대로 뜨이지 않지만 옷을 주워 입고 운동장에 모여 인원을 체크했다. 숙취는 있었지만 낙오는 없었다. 나는 '참가자의 등 번호 및 GPS칩 전달' 업무를 맡았다. 등번호는 옷에 부착할 수 있도록 모서리에 옷핀이 달려있었고, 위치추적 칩은 운동화 끝에 걸어 부착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마라톤에 참여해 본 경험도 없고 참관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참여인원이 얼마나 많은 지 그때 알았다. 5km, 10km, 하프, 풀 마라톤에 따라 수령 부스가 나뉘어 있고 배정된 스태프와 자원봉사자도 많았다.
서서히 잠이 달아나고 배꼽시계가 울릴 때쯤 빵과 우유를 나눠줬다. 새파란 하늘 아래에서 맛보는 빵이 얼마나 달던지. 잠시 여유를 즐기고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도착해 일을 소개하고 자리를 잡았다. 이내 경기를 앞두고 참가자가 몰려 들어왔다. 다행히 등 번호를 숫자에 맞게 정리해둬서 찾아 드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응대를 맡고 자원봉사자들이 번호를 건네주고 칩 착용을 도왔다. 학생들은 쾌활했고 대학생인 나에게 동경의 시선을 보내며 잘 따랐다. 스무 살이 된 이후로 처음 '성인' 대접을 받는 느낌이랄까?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경기가 시작된 후에는 참가자가 휩쓸고 간 자리를 정리하고 부스를 정리했다. 다시 돌아와 칩을 반납할 때까지의 할 일은 '기념품을 포장하는 것'으로 빵과 음료, 메달과 알밤을 준비했다. '알밤 막걸리의 도시, 공주!' 답게 실하고 단단한 알밤. 간혹 참가자들이 남는 알밤을 더 챙겨달라며 생떼를 쓸 땐, 무겁다며 두고 간 알밤을 모아뒀다가 꺼내 줬다. 근데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아서 자원봉사자와 스태프들이 가방 한가득 챙겨갔던 기억이 난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현장을 정리하고 졸음이 쏟아지는 몸을 이끌며 버스를 탔다. 경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며 느낀 건, '하나의 행사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이들이 힘을 쓰는구나.'.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즐겁게 만드는 이벤트의 과정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마라톤을 도전하는 이가 굉장히 많다.'로 나도 체육을 전공하고 뗼 수 없는 관계로서 언젠가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물론 그로부터 7년 뒤 도전하긴 했지만. 행사 아르바이트로서 좋은 경험을 한 덕분에 그 이후로도 꽤 다양한 행사 아르바이트에 참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