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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Jul 29. 2023

같이 공부하고 싶은 엄마 &
같이 놀고 싶은 아이

뽀로로 책상을 버리고 싶어요.  


뽀로로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책상을 세일한다. 마침 놀이치료실 책상이 낡어서 사려는 참이었기에 얼른 샀다. 낡은 책상을 버리고 치료실 카펫 위에 뽀로로 책상을 놓았다. 책상을 마주하고 아이들과 놀 생각을 하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만능 책상이다. 그림도 그리고 클레이도 하고 인형놀이도 한다. 소꿉놀이를 할 때는 밥상, 선생님 놀이를 할 때는 책상, 병원 놀이를 할 때는 진료대, 보드게임을 할 때는 보드게임 판이된다. 책상을 세우고 몸을 움크리고 총을 쏘면 커다란 방패가 되기도 한다. 눕혀 놓으면 책상다리 네 개에 고리 던지기를 할 수 있다. 책상 하나 가지고 다양한 놀이를 하니 금방 낡는다. 



어! 우리 집이랑 똑같다.
책상 샀어요?
지난번 책상이 너무 낡아서 버리고
새로 샀어.

00네 집에 있는 책상이랑 똑같구나.

 저는 뽀로로 책상 버리고 싶어요.




놀이치료실에 들어오자마자 바뀐 책상을 알아봤다. 집에 있는 것과 같은 디자인이라며 책상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그 책상을 망치로 부숴서 버리고 싶다고 했다. 평소 조용조용하고 과격한 것을 불편해하는 친구의 말이라 약간 놀랐다. 지난주에 이은 역할놀이를 하다가 버리고 싶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 기르는 집 거실에 있는 뽀로로 책상의 역할은 다양하다. 그림도 그리고 밥도 먹고 보드게임도 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뽀로로 책상에 공부라는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다. 엄마는 얼마전 부터 아이와 학습을 시작한 것이다. 한글, 수, 연산, 영어 등의 다양한 학습 교재가 뽀로로 책상 위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엄마와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들은 말은 이렇다.


어디 보니? 책 봐야지


(책상을 톡톡 치면서) 집중해야지. 잘 들어봐.
잘 생각해봐 조금 전에 가르쳐줬잖아.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엄마와 학습을 시작하면서, 뽀로로 책상 앞에 앉으면 엄마가 점점 화를 낸다고 느꼈다. 가르쳐줬는데 왜 모르냐고 다그치고, 얼른 3번씩 쓰라고 재촉한다. 움직이면 돌아다니지 말고 집중하라는 말을 듣는다. 그림 그리면서 놀고 싶은데 이거(학습지) 다해야 놀 수 있다고 한다. 뽀로로 책상 앞에 앉으면 긴장되고 경직되는 듯 했다. 엄마가 무서워 진다. 


나는 엄마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며 지금 중요한 것은 학습보다 아이와의 안정적인 관계라고 알려드리면서 엄마의 학습을 줄이고 꼭 하시고 싶은 영역은 전문 선생님을 모시길 권유했다.   


선생님 지금은 쉬고 있지만
사실 저 꽤 인기 있는 학습지 교사였어요.
다른 건 몰라도 미취학 아이들
한글 수 영어는 잘 가르칠 자신 있어요.

 

어머님의 유능감과 가르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이와의 관계가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엄마의 열정과 결심은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 더 좋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아이를 잘 가르쳐서 개인적인 성취감과 자신감을 회복하고 싶은 엄마의 인정욕구도 있다고 고백하셨다.


    

하루에 아이와 20분 매일 매일 학습을 하고 싶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잠시 학습을 멈춰주세요. 
당분간 뽀로로 책상을 마주하고 아이와 40분씩 매일 노세요.
 
뽀로로 책상 앞에 앉으면
엄마와의 즐거운 놀이가 떠오르고 저절로 기분 좋은 감정이 느껴질때 까지 노세요뽀로로 책상 앞에서 노는 것이 특별함이 아닌 당연함이 되면
그 때 학습을 다시 시작해 주세요. 


뽀로로 책상을 보고 기분 좋음이 느껴질 때 학습을 시작 하면 긴장감이 낮아질 것이라고 권유했다.  긴장감이 낮아져야 학습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말 때문인지 엄마는 흔쾌히 그렇게 해겠노라고 받아들였다. 일주일 후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랑 학습을 하려고 하면 시간이 빨리 가는데
놀이를 할려니 10분이 너무 길어요.  
놀이에 집중이 안돼고 빨리 일어나고 싶고 역할놀이가 너무 지루했어요.   


아이가 엄마와 학습할 때 했던 말과 같았다. 엄마는 아아와 공부하고 싶고, 아이는 엄마와 놀고 싶었다.  학습은 전문가 선생님께 맡길 수 있지만, 아이와의 관계는 누가 해 줄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득했다. 학습은 지금하지 않아도 언제든 시작 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만, 엄마와의 관계는 지금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나중에 지금 만들지 못한 관계를 다시 만들려면 꽤 많은 노력이 든다고 설득했다. 엄마는 학습을 놓기 힘들어 하셨지만 결국 당분간 학습은 안하기로 하셨다. 잘 노는 관계, 안정감 있는 관계,  긴장감이 아닌 편안함이 있는 관계 ... 안정 애착 관계에 대한 설득을 하면서 뽀로로 책상으로 할 수 있는 놀이를 소개했다. 


우리집 뽀로로 책상에서 클레이 했어요.
우리집 뽀로로 책상으로 고리 던지기 했어요.
우리집 뽀로로 책상 세워서 총 놀이 했어요.




처음 놀이치료실에 가지고 왔던 어려움 들이 사라지고 있었고, 아이와 헤어질 준비를 하게 되었다. 놀이치료실에서 수 많은 종결을 준비하지만 종결의 순간은 늘 감격스럽다. 앞으로 쭉 뽀로로 책상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으면 한다. 


어머니 제 설득을 받아들여주시고, 실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유지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주변의 학습 성취 자랑에 흔들리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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