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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Aug 10. 2023

동생이 생긴 5살 언니의 심술

가족들의 거짓말 



동생이 생기면 첫째들의 행동이 변한다. 어리광이 늘기도 하고, 징징거리기도 한다. 혀 짧은 소리를 내기도 하고, 동생의 볼을 꼬집기도 한다. 아기보다 더 관심받고 싶어 과한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동생을 못 만지게 아예 엄마에게 안겨있기도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다 이유를 알고 있다. 


동생이 생긴 첫째의 마음을 흔히 보위를 빼앗긴 왕의 심정이나 남편이 데려온 젊고 예쁜 둘째 부인으로 비유한다. 그 마음이 안쓰러워 온 가족이 부단히 첫째에게 신경 쓴다. 엄마는 평소보다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안아준다. 아빠는 퇴근하면서 첫째가 보고 싶어서 달려왔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동생에게는 관심 없고, 오로지 너를 보기 위해 놀러 왔다고 매일매일 말해준다. 할아버지는 올 때마다 마트에 데리고 나가서 간식과 장난감을 사준다. 


온 가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5살 언니의 심술(할머니의 표현)은 끝이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도 많아졌다. 작은 일에도 울고 불고 하여 그치는데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엄마가 나를 업고 아빠가 밥을 먹여줘라 같은 요구를 들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비가 많이 와서 편의점에 갈 수 없다는 말에 한 시간씩 우는 아이를 달래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신생아 아기에게 막대사탕을 먹이고 싶다고 막무가내로 떼를 부리는 아이를 어찌해야 하는지 온 가족이 혼란스러워했다.  



동생이 생기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어느 날 할머니는 센터에 전화를 하셨다. 보통 엄마들이 상담문의를 하는데 할머니가 안타깝고 힘들어서 초록색 창으로 알아보시고 연락을 하셨다. 3달간의 스토리를 눈물 콧물 닦으시면서 쉬지 않고 말씀하셨다. 전화 통화였지만 출산 한 딸과 손녀딸에 대한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상담 예약을 마치고 전화를 끊으려는 차에 이런 말을 남기셨다. 손녀딸을 보면 너무 예쁘고 말을 잘해서 깜짝 놀랄 것이라고. 




출산의 부기가 빠지지 않은 엄마와 연락을 하신 할머니 그리고 깜짝 놀라게 예쁜 5살 언니가 센터를 방문했다. 엄마의 표정은 많이 지쳐있었고 할머니의 표정은 많이 안타까워했다. 반면 5살 언니는 눈이 반짝반짝하고, 처음 보는 나에게 서슴없이 말을 걸었다. 밝고 명량하고 계속해서 말을 걸었으며 표정이 변화무쌍하고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만화 속 주인공 같았다. 




놀이치료실에서 우리의 놀이 세계는 끝없이 펼쳐졌다. 처음 만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사가 척척 맞았다. 깔깔깔 웃고, 방방 뛰며, 뻘뻘 땀을 흘리며 놀았다. 놀다 놀다 아이가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선생님 할머니가 거짓말했어요.
할머니는 애기 하나도 안 예쁘다. 할머니는 우리 OO만 예쁘다. 



그런데 할머니가 동생을 보는 눈에서 하트가 떨어진다고 한다. 딸이 둘째를 출산하여 매일 같이 집에 오시는 할머니가 신생아 동생알 볼 때는 눈에서 하트가 떨어지는데 나를 볼 때는 그 하트가 없다고 말했다. 아빠도 내가 보고 싶어서 회사에서 달려왔다고 말하지만, 동생을 대하는 태도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5살 아이는 느끼고 있었다. 엄마도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에 할머니와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는 한 번의 유산을 하고 만난 둘째가 더 각별하기도 하고 5년 만에 신생아를 보니 첫째 때는 처음이라 긴장하고 길렀는데, 둘째는 여유가 있게 아기를 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우리 아이들이 다 크고 동생이 아기를 낳았는데 오랜만에 보는 신생아가 신기하고 예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이 집에 와서 엄마가 애기를 너무 예뻐해서 질투 났다고 했었다. 




아이는 말로는 내가 예쁘다고 하고, 하트는 동생을 보는 눈에서만 떨어지는 어른들을 보며 이상하다고 느꼈고 불안해졌다. 심술이 아닌 불안이었다. 불안의 마음을 잘 도와주는 상담이 진행되었고 얼마 후 헤어졌다. 헤어지면서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첫째에게 동생이 예쁘다고 말하면 왜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OO이 아기 때랑 많이 닮았고, 그래서 그런지 참 예쁘다고. OO도 예쁘고, 동생도 예쁘다고 말하면 될 것을. 아이랑 솔직한 대화를 하는 법을 몰랐던 거 같아요. 선생님 덕분에 마음을 속이는 대화가 아니라 진실한 대화를 하는 법을 알았다니까. 알고 나니까 애 하고 말하는 게 더 쉽고 편하고 재밌있어요. 할머니의 마지막 말에 상담사로서, 엄마로서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마음을 속이는 대화가 아닌 진실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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