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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맘 Aug 17. 2020

산책

 평일에는 유치원을 가고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별이지만 요즘에도 주말 외출은 여전히 즐기지 않는다. 지금은 평소 외부 활동을 하기 때문에 큰 걱정은 덜었지만 그런 별이를 두고 나도 신랑도 고민이 많았다. 혹시 불안이 높은 별이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지나치게 걱정하여 외출조차 꺼리게 된 건지, 아니면 집에서만 보내는 시간이 별로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서 그런 건지를 두고 우리 둘의 의견이 언제나처럼 달랐다. 


 사실 처음엔 나도 겁 많은 아이에게 유치원에서의 안전 교육과 나의 조심스런 행동이 불안을 더 불러일으키게 한 건 아닌가 걱정이 많았다. 어쩌면 별이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유치원조차 가지 못하고 우리 셋 외에 아무도 만나지 않았던(가족을 포함하여) 생애 처음 겪는 단절된 경험 앞에 참 많이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역시 난생처음 겪는 제대로 된 '고립'이었다. 신랑은 우리의 생계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외출을 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우리 만큼의 고립을 경험하진 못하는 듯했다. 신랑의 눈에 우린 지나치게 겁을 먹고 한없이 움츠러든 그래서 본인이 보호해야 할 어린 강아지들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고립된 우리 또한 우리 밖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고 우리 안의 세계가 마치 전부인양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집 안에서 생활하고 또 적응하였다. 


 불안은 인간의 지독히도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우리는 '불안'을 통해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다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기질적으로도 예민하기도 하지만, 겁이라면 두 번째 가라 하면 서러워할 엄마와 지낸 시간이 많은 별이가 불안과 걱정이 많은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성향 덕분에 별이가 설사 위험한 장난을 시도하거나 과감한 도전을 하더라도 난 그리 크게 동요하지 않고 지켜볼 수 있는 쿨한 엄마인 척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신랑은 진심으로 우리를 걱정하고 있었고, 그런 신랑의 생각이 나름 타당성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온라인을 통해서나마 집 밖 세상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름의 소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이 입장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별이는 나보다 더 알지 못하여 '더' 두려울 수 있겠다 싶었다. 불분명한 실체가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나는 믿었고, 그래서 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되도록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알려주려고 애썼었다. '꽤 많이' 위험하지만 우리가 '결코' 극복하지 못할 위험은 '아니며' 우리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강력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별이가 충분히 이해하였고 그래서 마음 놓고 집 안 놀이에 몰입하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반대로 두려움을 잊기 위해 별이가 더 몰입하려 노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나의 의도대로 별이가 두려움을 극복했던 것인지도 혹은 지나친 정보로 인해 더 두려움을 느꼈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없다. 그저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내 아이의 눈빛을 읽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을 뿐. 


 어찌 되었던 나와 별이는 생각보다 더 즐겁게 적응하고 우리 둘만의 특별한 추억을 쌓아가고 있는 듯하였지만 언제나처럼 못하겠다 먼저 소리치는 건 역시 나였다. 극도의 고립을 선택했던 우리(라 하였지만 사실은 그것을 선택한 건 별이가 아닌 나였다.)는 지나치게 두려웠지만 더 두렵지 않으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감히 추측하건대 지난 그 시간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구나 우리처럼 각자 나름의 기준과 방식으로 이 위기를 겪어내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결국, 이 모든 일들은 해결될 것이고 우리는 새로운 일상과 마주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차려 주는 밥을 먹고 싶다 징징대는 나를 위해 별이는 아침마다 시리얼을 차려주었다. 밥이 먹고 싶었던 어느 날 슬쩍 밥 먹을 준비를 하려는데 별이가 묻는다. "엄마, 내가 차려주는 시리얼이 그립지 않겠어?" 나는 자연스럽게 기다렸다는 듯이 "당연하지, 오늘도 부탁해도 될까?" 물었더니 별이 특유의 쑥스럽지만 만족스러운 미소로 답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왜 내가 차려주면 더 맛이 있는 걸까" 엄마도 너무 이상해. 별이가 하면 왜 거의 항상 모두 특별한 걸까.  그렇게 보름이 넘도록 시리얼은 우리의 약속된 아침이었고 지금까지도 별이는 아주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시리얼을 먹는다. 


  산책조차 거부하는 별이와 정말 제대로 부딪친 그 날은 내가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올라 결국 눈물까지 보이고 말았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 순간은 그저 집이 좋고 마냥 집 안에서 노는 것이 좋다는 별이의 말이 맞았고 집에 있고 싶다는 아이의 욕구가 간절히 나가고 싶었던 나의 욕구와 처절하게 갈등했던, 지금까지 자주 있었던 하루 중의 하나였던 것도 같다. 첨예한 현장을 카톡으로 전해 들은 신랑은 다음날 바로 반차를 냈고 함께 별이와 시간을 보내겠다며 나를 억지로 밖으로 보냈다.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며 별이와 있겠다고 투정 부리던 나는 나가서 커피라도 먹고 오라는 신랑에 등 떠밀려 동네를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다 결국 생각한 것이 대형 마트의 서점이었다. 도서관에 가지 못하고 욕심껏 책을 사는 것도 쉽지 않아 그동안 나는 사실 책에 가장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도 같다.(나는 결코 독서광도 책벌레도 아님을 거듭 밝힌다.) 햇빛은 너무 따뜻했고 사람들은 많았다. 그런 광경이 나에겐 새로웠다. 이 동네는 대형 서점도 없을뿐더러 서점 자체도 적다. 제일 가까운 서점이 하필 대형 마트에 있는 서점뿐이라니. 난감하지만 도전해보려고 길을 향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은 이들이 가고 있었다. 마음을 돌려 동네나 구경하자는 마음에 평소 가지 않았던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작은 신도시여서 상권이 활발히 발달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공사 중인 현장도 많았고 빈 상가는 더 많았었다. 그런데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보지 못했던 공간에 아담하고 예쁜 카페가 어느새 하나 둘 생겨나고 있었다. 더욱이 신기한 것은 이 곳에 알고 있는 지인이라면 유치원 아이 친구 엄마들이 전부이고 특히 아주 친밀한 동네 친구는 같은 아파트 단지 내 같은 유치원을 보내는 세 사람이 내게 유일한데, 이 날 횡단보도를 건너며 그들 중 한 언니와 따님을 만났고(별이가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무척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또 공원을 가는 길에 한 친구의 남편 분과 강아지도 만났다는 사실이다. (내 마음대로) 가족까지 포함하여 12명의 사람(모두 외동인 관계로)과 1마리의 강아지(나와 별이가 너무 좋아하는)와 친분이 큰데 난 무려 3명의 사람과 1마리의 강아지를 마주쳤다는 것이다. 얼마 만에 하는 것인지 기억도 안 나는(흔적을 찾아보니 한 달쯤 되는 것 같다), 단 1시간 30분 남짓한 외출에 말이다. 


 그동안 별이는 아빠와 자동차 기름도 넣고 공원 한쪽에서 아빠와 신나게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 혼자만의 외출은 상쾌하고 즐거웠으며 나의 가족을 더 사랑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마치 며칠을 보지 못했던 것처럼 멀리서부터 뛰어와, 보고 싶었다는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다는 듯이, 최선을 다해 진정한 포옹을 하였다.

 뜬금없긴 하지만 글을 쓰면서 되짚어보니 별이 아빠는 평소엔 잘 느껴지지 않으나 아주 가끔 깜짝 놀랄 만큼 생각의 깊이도 마음의 그릇도 꽤 그럴듯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산책 이야기 끝.


별이와의 산책을 좋아하는 아빠와 주말 집순이 별이는 여러 차례 논쟁 끝에 이 주에 한 번, 둘 만의 산책에 겨우 합의할 수 있었다. 특별히 이 날은 나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아침부터 비가 많이 와 걱정이 많았다가 늦은 오후에야 겨우 나설 수 있었다. 


촉촉한 흙냄새 사이로 이름 모를 풀들과 곤충들이 가득했다. 슬그머니 올라온 버섯들과 책으로만 보던 공벌레로 있었다. 산책 중 만난 소소한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산책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주었다.  비록 아빠는 모기에 물리고 내게 안 잡히려 무리하게 놀이터를 뛰어다니다 미끄러질지라도.


 특히 아빠는 골프채처럼 휘두르다 별이의 완전 소중한 잠자리채를 두 동강 내기도 하였다. 아빠는 당황했고 나는 황당했으며 별이는 차분했다. "괜찮아, 아빠. 원래 고장 나있어서 테이프로 붙여둔 거야. 괜찮아, 괜찮아." 사실이긴 하지만 내 눈에 별이는 세상 다정한 7살 꼬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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