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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맘 Aug 16. 2020

말 중독

요즘 나는 쉬지 않고 빈틈없이 말을 이어간다. 하고 싶은 말이 넘치고 넘쳐 신랑이나 친구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중간에 끊어버릴 때마저 있었으니. 나름 스스로의 장점을 열심히 듣기로 자부하던 내게 큰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그야말로 심각한 '말 중독' 상태인 것이다.

매일 보는 동네 친구들과의 수다에 몇 시간씩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절친과의 전화는 늘 간절하고 매번 소중하다. 가장 고생하는 것은 내 가까이에 나의 사랑하는 아이와 신랑이다. 최근까지 과한 업무에 시달리던 신랑은 부서를 옮기고 훨씬 여유로와졌다. 더욱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잊을만하면 상기시키는 아내 덕분에 본인 기준으로는 하고 싶은 일들의 제약이 너무 큰 반면 시간은 상대적으로 충분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우리 셋의 주말 놀이 시간은 보장되었고 그리 반갑진 않지만(나는 여전히 우리 셋이 함께하는 시간이 목마르다.) 평일 퇴근 후에는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에서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본인이 그렇게나 소원하던 취미가 하나 둘 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 당장 급할 것 없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회사 안의 그에게 카톡을 보내기도 하고 나조차도 놀란 TMI에 자삭도 여러 번. 그러면 또 굳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가 틈만 보이면 나는 여지없이 수다의 문을 활짝 열어버린다. 그의 관심 여부는 크게 관심 두지 않고. 사실 그건 신랑도 마찬가지이다. 나로선 관심 밖 분야에 참 쉬지도 않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가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내가 알던 옛날의 그는 늘 과묵했고 내 얘기를 참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하던 따뜻하고 넓은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이야기의 양이 내가 감당할 수준 밖까지 차 오르더니 지금의 그는 나와 경쟁하듯 말을 한다. 아쉽지만 나 역시 그러하니 꾸욱 참고 들어줄 수밖에. 한 번은 내가 여보가 이렇게까지 말을 많은 사람이었는지 몰랐다고 하자 나름 조용히 응수하기도 했다. 옛날의 나는 그래도 간간히 본인의 기분이나 일상을 묻기도 했는데 요즘엔 '전혀' 그런 것이 없고 '쭉' 내 말만 하니 본인도 이야기를 자꾸 '더' 하게 되더란 거다.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지만(나는 최근 그가 관심 있어하는 '부동산' 이야기를 한 시간도 넘게 듣기만 한 적이 많다! 여보 시간 있어? 는 나 부동산 얘기하고 싶다란 뜻! 내가 늘 퍼붓기만 한다는 것이 아니란 걸 굳이 밝히고 싶었다.)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나의 수다 포텐셜에 스스로도 꽤 많이 놀라고 있는 터였다.

내가 이러한 상태이니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 별이는 오죽할까. 별이는 '말 중독'의 나처럼 오랜 시간 '놀이 중독'인 상태다. 가끔은 이 아이가 타고난 놀이 천재(진부하지만 나의 감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이다.)가 아닐까 하는 기대마저 품게 하는데, 나는 별이의 그런 중요한 놀이를 자꾸 방해하고 별이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질문하면서도 궁금해한다. 그냥이라고 대답하던 별이는 조금 더 자란 탓인지 엄마가 정말 궁금해하는 것이 느껴졌는지 예전보다 더 자세히 유치원 일상 이야기며 본인의 생각과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 황홀한 경험을 하고 나니, 더더욱 아이의 생각과 일상에 하나하나 집착하고 되었고 결국 나는 아이와의 대화에 중독되기에 이르렀다. 며칠 전에는 별이가 잠에서 깨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오늘은 뮤직 클래스가 있는 날이라며 음악 수업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도 하였다. 마치 네 살 때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에 큰 영감을 받은 별이가 엄마 닭이 알을 낳고 아기 병아리가 나오는 그 상황 놀이를 아침에 나와 눈을 마주치기만 하면 반복했던 그때의 별이처럼. 별이는 언제나 온전히 최선을 다해 놀고 있다. 그것이 별이의 사명 혹은 운명인 것처럼. 그런 소중한 놀이 시간을 내가 방해하는 것이 짐짓 미안하기도 하지만 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진심으로 너무 재밌어서 도무지 멈춰지지가 않는다.

7살의 별이는 어느새 본인의 철학이 녹아든 꽤 그럴듯한 말들도 쏟아내고 여전히 타인보다 본인의 입장이 더 중요한 어린아이지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아이의 행동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쳤던 나의 생각이 미안해질 정도로 아이는 끝없이 고민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아쉽고 그래서 더 소중하고 감사했기에 나의 어쭙잖은 글재주로나마 남기고픈, 남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틈만 나면 끄적대고 새벽에 잠을 깨서도 글을 쓰게 만드는 오늘 '글 중독'의 내가 있게 되었다.


빙고 게임을 알려주었는데 처음엔 간단한 숫자로 시작했다가 색깔 넣기로 발전하였다. 글씨 쓰기 싫다는 별이에게 색칠을 권했는데 게임 시간보다 준비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다.


누구도 별이를 이길 수 없는 절대 빙고 게임. 우리 집 게임 왕, 별이. 마지막에 대충 그린 그림마저 귀엽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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