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는 반복을 참 좋아하고 루틴을 무척 즐기는 아이다. 그래서 나이답지 않게 집중력이 좋은 편이기도 하고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을 잘 해낸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별이의 기준이 내게 늘. 너무. 벅찬다는 점이다. 내 입장에서는 항상 넘치게 아이의 입장을 고려하여 내가 가진 능력 이상으로 아이의 욕구를 따라주려 노력하는데 아이 입장에서는 언제나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4살 어린이날 전날 아빠가 충동적으로 사 주었던 촉촉 모래놀이를(어린이날 약속을 가는 것이 미안했던 아빠는 나와 별이가 즐겁게 놀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깜짝 선물을 주었다. 물론 나와 별이가 고르긴 했지만) 별이는 무려 5~6시간 이상을 하고도 모자라 했다. 당연히 그 놀이는 엄마와 함께였고 한 시간은 나도 처음 느껴본 촉촉 모래의 촉감을 같이 공감하며 우리는 재미있게 놀이하였다. 그러나 점차 나는 움직임도 둔해지고 말을 잃어갔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 시간을 보냈고 나는 의미 없이 모래를 만지는 시늉만 하였다. 놀이를 중단하고 싶은 마음에 점심을 핑계로 씻기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실패하였다. 밥을 다 먹자마자 별이를 약속대로 다시 모래놀이를 시작하였고 나 역시 또다시 영혼 없이 놀이를 하는 척만 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결국 더 이상 못하겠다고 짜증을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러고도 별이는 혼자 한참이나 모래놀이를 하였고 그렇게 며칠을 쉬지 않고 모래놀이만 하였다.
'언니 놀이'는 엄마, 언니, 오빠, 아기 네 식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언니는 당연히 별이 자신이고 엄마는 나다. 오빠는 보이지 않지만 별이가 좋아하는 어린이 유튜버이고 아기는 인형이다. 오빠와 아기는 계속 언니 하고만 놀고 싶어 하고 엄마는 언니에게 늘 도움을 요청한다.(별이가 원하는 각각의 역할이 그러했다.) 특히 나는 엄마와 아기 역할을 해서 너무 바쁘고 힘들었다.
'언니 놀이'는 아이라면 대부분 좋아하는 역할 놀이이다. 역할 놀이을 통해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엄마 역할을 맡은 별이가 평소 내가 입에 달고 사는 잔소리를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마음 한 편이 살짝 불편해지기도 했다. 그러면 나 역시 별이로 분하여 연신 아이의 단골 멘트 "싫어 싫어"를 외쳐댄다. 알 수 없는 통쾌함에 나 역시 진심으로 즐겁다. 싫다는 표현이 이토록 시원하고 즐거울 수 있다니. 그래서 별이가 즐겨 쓰나. 아무튼 그런 나를 다독이는 아이의 말이 제법 따뜻하고 설득력 있다. 처음에는 따뜻하게 받아주다가 한숨을 쉬기도 하고 다독여도 봤다가 화를 내기도 한다. 아아 얼마나 인간적인 나의 모습과 닮아 있던지! 역할 놀이야말로 공감 능력을 최단시간 내에 키울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이라고 나는 자부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평소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표현함으로써 감정을 공유하고 또 해소할 수 있는 무척 훌륭한 놀이이다. 그동안 별이가 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여 애가 탄 적이 너무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을 기억하여 전달할 능력이 되지 못했거나 혹은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바로 얼마까지만 해도 그것이 이 아이의 어떠한 결핍으로 인한 것인지 또한 절대 불변의 성격으로 고착화된 건 아닐지 계속 고민하고 걱정하였다. 또래보다 말을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했던 능력 때문에 어쩌면 아이에게 더 큰 부분을 기대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원생활에 대해 아이를 통해 아무런 얘기를 들을 수 없었는데 나는 그게 늘 아쉬웠다. 그런 아이가 선생님 놀이를 하면 선생님과 친구들의 행동과 이야기를 자연스레 들려주는 것이다. 이때 혹시나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질문을 해대면 아이는 바로 순수한 재미를 잃어버리는 듯하였다. 더 어린 아기였을 때는 천진난만하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더니만. 어찌 되었든 난 아이의 온전하지 않은 이야기에 상상을 덧붙이기도 하고 선생님과 아이 친구 엄마의 이야기를 얹어 상황을 이해해보려 무척 노력하기도 했었다.
물론 가장 강력한 장점은 아이가 '큰'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놀이에 있어서 사실 그보다 중요한 건 없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아이와 함께 역할에 동화되어 놀이할 때는 즐겁다. 그런데 같은 상황을 즐겁게 하고 하고 또 하는 아이에게 차마 거절하진 못하고 억지로 하는 척하면 결국 눈치 없는 아이도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날은 언니 놀이를 하다가 "엄마, 재미없다. 다른 놀이하자"하며 놀이 주제를 바꾸기도 하고 "엄마, 지쳐 보인다"며 먼저 나를 걱정해주고, 계속 누워서 놀이하던 내가 더 쉴 수 있도록 나름의 배려를 해준다. 이렇게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아이를 나는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던 건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놀이가 아닌 아이와의 놀이에 지쳐있었던 것 같다. 집 안에서 오직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그렇다고 해서 유튜브 시청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은 놀이를 억지로 버텨냈지만 결국 난 내 아이의 소중한 놀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 고심(?) 끝에 우리는 유튜브 시간을 조금 더 늘리게 되었고...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졌다.
별이는 (내 기준으로는 충분히 보았지만) 갈증을 느꼈던 동영상을 아주 실컷 시청할 수 있었고 그 이후에는 스스로 멈추고 다른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나 역시 그 시간만큼은 마땅히 해야 할 집안일을 놓고 보고 싶었던 유튜브와 책도 보고 때로는 절친과의 전화 수다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도 제법 무거워진 나를 비우고 나니, 다시 본연의 나로 돌아오고 아이와의 시간을 진심으로 즐겁게 채울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가끔 '언니 놀이'를 하고 있지만, 매일매일 저항하다 수용하고 어느새 동화되었던 그 '언니 놀이'가 이제는 살짝 그립기도 하다.
언니 놀이는 거실에서 시작했다가 안방에서 하기도 하고, 꽤 오랜 시간 드레스룸에서 했다. 특히 드레스룸은 이불이 얼마 없는 옷장 안이 언니의 방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에 정말 오래도록 언니 놀이의 주 무대였다. 그렇게 자주 하던 놀이였음에도 사진이 거의 없다... 저렇게 좋아하는 놀이였건만... 엄마가 늘 하기 싫어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