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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맘 Aug 14. 2020

꼬부기와 미니

  전날 밤 아빠와 별이는 서로 속상해하며 다퉜다. 사실 표면적인 갈등의 원인은 거북이 인형이었지만,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은 늘 그렇듯 서로 생각이 너무 달랐다.    


 요즘 주로 매일 자기 전 책을 한 두권 읽어주곤 한다. 유튜브 보는 시간이 꽤 길기 때문에 잠자리 책 읽을 시간이 아주 많이 줄어들었지만 나름대로 내가 편한 부분도 있고(책 읽는 일이 나는 참 고된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의 선택이라 크게 간섭하지 않는 편이다. 신랑은 밤 퇴근이 일상인 안쓰럽지만 평범한 직장인이고 간혹 일찍 칼퇴할 때에도 피곤한 정신과 육체의 쉼이 필요한 터라 아빠와의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더욱이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부터는 낮동안 나의 휴식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가끔(혹은 자주일지도) 나의 체력이 바닥이 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나 역시 큰 불만은 없었다. 


 사건의 발단은 그 날따라 충분히 일찍부터 유튜브를 본 아이는 일찍 일정을 마쳤고 평소 읽는 속도라면 책 세 권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남게 되었다. 세 권을 읽기 싫었던 나는 한 권은 아빠가 두 권은 엄마가 읽어주겠다고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쉬고 있었다. 자의 반 타의 반 자기 전 양치를 담당하는 아빠는 책 한 권을 읽어주려는데, 별이가 갑자기 짜증을 내었다. 아마도 늘 엄마가 읽어주는 것에 익숙하던 별이는 아빠가 읽어주는 것이 못마땅한지 목소리와 느낌이 다르다며 짜증을 부렸다. 아빠는 그런 별이에게 서운함을 느꼈을 것이고 어쩌면 꽤 오래 축적되어온 서운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그래도 책을 읽어주려는데 이번에는 아빠 누운 자리를 탓한다. 나는 쉬고 싶었으므로 계속 모르는 척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아빠가 꼬부기(거북이 인형)을 베개 삼아 누웠는데 별이가 폭발한 것이었다. 눌러 담고 있던 아빠도 역시 폭발하였다. 아빠가 내 꼬부기를 눌렀다! 인형인데 왜 그러냐! 날 선 대화가 오고 가다 결국 아빠도 속상해져 본인 잠자리로 돌아가고(지금 아이방에서 따로 자고 있다.) 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내 소중한 친구를 울부짖으며 절규하였다. 꼬부기는 늘 자기 옆에 있어준다며... 패드 볼 때도 같이 있어준다고 꺼이꺼이 우는 아이를 바라보자니 그동안의 일들이 떠올랐다. 아이 친구가 꼬부기를 궁금해하길래 내가 만지게 하려니 좋아하지 않던 일, 꼬부기를 베개 삼아 눕자 화냈던 일,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꼬부기를 데리고 나와 의자에 앉혔던 일, 잘 때는 꼬부기를 늘 옆에 두었던 일, 외박이나 긴 외출할 때 꼬부기를 꼭 데리고 가고 싶어 했던 일 등등... 얼마 전엔 잠자기 전 엄마가 속상할 수 있는 말 해도 되냐며 거듭 괜찮다니까 꺼낸 진실은 그러했다. 사실 자기가 좋아하는 순위가 있는데 차례차례 얘기하더니 엄마가 두 번째고 꼬부기가 첫 번째란다. 부드럽고 늘 자기 옆에 있어준다고 엄마가 바쁘고 혼자 놀 때도 같이 있어줘서 그렇단다. 사실 그 얘기를 할 때조차 나는 별이가 꼬부기를 그렇게까지 좋아하고 의지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얼마나 둔한 엄마인지. 


바쁜 아침에 꼬부기를 정성스럽게 빗겨주기도 했었지. 저 선명한 빗 자국 같으니라고.


 다음 날 내가 깨달은 걸 신랑에게 얘기해 줘야 했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걸 더 익숙해하고 좋아하지만 아빠가 읽어주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 아빠가 싫어서 꼬부기로 화낸 건 아니고 그만큼 꼬부기가 별이에게 중요한 존재란 걸 알려주고 오해를 풀어줘야 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난 일들을 알려주었다. 생각해보면 요새 식탁 의자에 꼬부기가 참 자주 오래 앉아있곤 했다. 신랑은 이해한 건지 이해는 안 되지만 그리하려 애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별말 없이 넘어갔다. 그러다 생일에 사 준 코딩 로봇 장난감 미니 얘기를 했고 요즘 별이가 갖고 노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요즘엔 잘 갖고 놀지는 않는다고 눈 앞에 안 보이면 굳이 찾진 않고 또 눈에 띄면 갖고 놀 거라고 얘기해줬다. 이런저런 대화를 마쳤는데 별안간 별이가 미니를 찾는다. 요 귀여운 꼬맹이가 혼자 놀이하는 줄 알았는데 엄마 아빠 대화를 주의 깊게 들었나 보다. 한참 동안 사용을 안 한지라 방전이 되어버려 미니는 충전을 해야만 했다. 충전 중인 미니를 보고 나는 뭐라고 했더라... 행성 같다 했나 우주선 같다했나. 딱히 기억이 안 나는데 별이 눈엔 아기별 같았나 보다. "아기별이 떨어졌는데 다시 올라가려고 충전하는 것 같아"...... 내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별아, 대체 넌 어느 별에서 왔니...


바로 기록해놔야겠다. 며칠만 지나도 기억이 가물가물. 그래도 별이의 말만큼은 내 마음에 콕 들어와 머리에 꼭꼭 저장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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