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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맘 Aug 16. 2020

결핍의 중요성

 아가 별이는 유독 책을 참 많이 좋아했다. 별이의 개월 수에 맞춰 적당한 책과 장난감을 사주는 다정한 아빠 덕분에 꼬꼬마 별이는 책과 조금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다. 별이를 먹이고 재우는데만 급급했던 내게 책은 아기 별이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놀이이자 쉼표였고, 어린 별이에겐 아마도 따뜻한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재미난 장난감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아기를 돌보는 것도, 함께 노는 것도, 전혀 알지 못하는 초보 엄마였고 그저 신랑에게 힘들다 모르겠다 징징대는 어린 아내였다. 별이를 만나기까지 아기를 그렇게 싫어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기에 대해 큰 관심도 아는 바도 없었다. 그런 내가 겁도 없이 별이를 만났다. 나 딴엔 별이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많은 인생 선배들 앞에서 감히 말하건대, 나는 육아만큼 어렵고 힘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또 (존경하는 오은영 박사님께서 하셨던 말이기도 한데) 그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까닭은 앞으로도 내게 무한대의 온전한 사랑으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내 아이가 유일할 것이라는 작은 확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별이와 책의 운명(?)적인 만남은 아주 자연스럽고 따뜻했다. 생각해보면 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것 또한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별이는 동화책을 참 좋아한다. 나는 사실 다정하고 표현을 잘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그런 부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는 순간만큼은 세상 따뜻하고 넘치는 사랑을 가진 엄마가 되었다. 사실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았던 건 '나'였다. 나는 '책'을 통하여 끊임없이 별이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였고, 내가 하지 못하는 예쁘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었다. 아마 어린 별이는 정확히 알지 못했겠지만 어떤 느낌으로나마 따뜻하고 좋은 느낌을 가졌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아기 별이는 내게 책을 가리키고, 책을 가져오고, 책을 읽어달라 표현했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진심으로 행복하니 내가 읽어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읽어주겠다는 지나친 오만마저 생겨난 터였다.

  하지만 곧 저질 체력의 한계에 부딪친 나는 좋아하는 책조차 다 읽어주지 못하는 스스로를 참 많이 원망하였다. 여기에 그치면 참 좋았을 텐데 미안하게도 별이에게  화 역시 참 많이 내기도 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덜' 화를 내면 좋았을 텐데. 지금도 별이가 속상했던 날들을 떠올려 보면 나는 참 미성숙한 엄마였다. 뭐,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리고 한없이 자책의 늪에 빠지고 싶은 날, 그런 예전의 기억을 굳이 꺼내어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물론 감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긴 하지만(사실 과거를 바꿀 수도 없지 않나!) 조금 빨리 괜찮아지고 싶다면 나는 약을 먹었다. 나는 소울메이트들의 따뜻한 위로를 먹고 아주 조금만 앓다가 금세 나아지곤 했다. 그중 유난히 현명하고 어여쁜 내 친구는 내가 책을 '넘치게' 읽어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별이에게 '적당한' 결핍을 주었고 그것이 지금 책을 '여전히' 좋아하는 별이로 만들어주었다는 매우 합리적이고 가장 따뜻한 위로를 건넜고 난 온전히 설득당하기도 했다. 어쩌면 별이는 그래서 '여전히' 책을 즐기고 함께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친구의 생각을 존중하고 신뢰한다.


어느 날 별이는 함께 그네를 타는 친구에게 본인이 어떻게 그네를 잘 타게 되었는지 진지하게 설명하였다. 별이의 생각은 '엄마가 그네를 밀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네를  스스로 연습하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잘 타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아... 그네를 밀어주는 대신  투명 줄을 던졌던 지난날의 내가 떠오른다... 결핍은 참 중요하다.

(친구와 함께 타던 사진은 없어 최근 그네 사진을 첨부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네 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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