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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킹 Mar 03. 2021

오래도록 고맙도록

내 인생에 없어서는안 될동반 주자들

요즘 대학생들은 대학 생활과 관련된 정보를 어디서 얻을까? 잠시 라떼를 좀 만들자면, 나 때만 하더라도 합격 통지서를 받은 후 싸이월드에서 해당 대학교 학과 모임에 가입하여 자기소개를 하고는 했다. 그리고 일촌 신청을 하고 일촌 파도를 타면서 또래 동기들을 알아가고는 했다. 

학교 또는 학과 홈페이지에는 보통 자유게시판(줄여서 자게)가 있는데 이 자게를 통해서 교양 강의에 대한 평가라든지, 중고거래, 00학과 00학번 누구누구가 연예인 닮았다더라는식의 시시콜콜한 가십거리 공유 등을 하고는 했다. 


군 제대 후 곧바로 2학년으로 복학한 나는 복학 첫 해를 과 동아리 활동으로 바쁘게 보냈고 이듬해 2011년이 되어서야 잊고 있던 군대에서의 달리기 추억을 떠올렸다. 제대하면 함께 달릴 사람을 찾아봐야지 했던 나의 기억에게 조금 미안했다. 행여 또 잊을까 하여 그 길로 학교 컴퓨터실을 찾아가 학교 자게에 접속한 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색해보았다.



러닝.. 동아리...


그러자 게시판 화면이 흰색 배경으로 가득 차더니 맨 위에 한 줄의 게시글을 띄웠다. 놀란 마음과 기쁜 마음이 겹치면서 얼른 제목을 눌러보았다. 

글의 작성자는 현재 러닝 동아리를 운영 중인데 아직 학교 중앙동아리는 아니고 우선은 달리기를 좋아하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 소모임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혹시 달리기에 관심 있는 분들은 오후 5시에 공학관 강의실로 오라고 적어두었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우연이 겹치면 인연이 된다는 말은 정말 누군가의 현실적인 경험에 기반한 말인 것 같다. 만약 내가 우연한 날, 우연한 시점에 궁금증이 들어 검색을 해보지 않았거나 상대방이 그 내용을 학교 자게에 올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인연은 없었을 것이다.




학교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났기에 대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수돗가에서 땀을 씻어내고 물은 대충 털어냈다. 약속된 시간에 늦을까 봐 상기된 얼굴은 감추지 못한 채 강의실에 들어갔다. 떨리는 마음에 상기된 얼굴을 누군가 눈치챈다면 뜨거운 햇빛에 달아올라서 그런 거라고 변명하려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강의실 뒷문을 열고 들어섰다.


바로 그 당시의 사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시커먼 남학생들 뿐이다. 그래도 여학생이 한 명 있기는 했다. 다만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칠판에는 흰색 분필로 동아리 운영 계획, 브랜드 운영 관련 사항 등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강단에는 회장으로 보이는 형이 앞으로의 활동 방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여기 모인 멤버들은 꽤 예전부터 함께 했던 것 같다. 달리기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소모임으로 시작했다고 했으니 다들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새로 들어온 신입부원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날 사람들의 관심은 스포츠 브랜드로부터 협찬받은 신발과 의류에 쏠려있었다. 바로 이 제품들을 나눠주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강의실 뒤편에 홀로  앉은 뒤, 신발과 옷을 받아 들고 지금 당장 갈아입고 오겠다고 신나게 나가는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나마 가장 어려 보이는 친구가 나에게 말을 붙여줬다.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달리기는 얼마나 하셨어요?



몇 마디 주고받다가 이내 옷을 갈아입은 멤버들이 돌아와 함성을 내지른다. 그 길로 당장 밖으로 나가 중랑천 옆 길을 달렸다. 그게 나의 대학생 시절 첫 달리기의 시작이었고, 러너스하이와의 시작이었다. 

그때가 2011년 4월 27일이다.

'러너스하이'와의 첫 만남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동반주자들



그렇게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도 시간의 속도에 맞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요즘 운동할 시간이 없고 달리기도 너무 힘들다며, 아픈 몸 설명하기 대회처럼 여기 아프고 저기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대화의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들여다보는 프로필 속 얼굴에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시절 대학생의 추억이 남아있다. 함께 달리면서 주고받았던 미소가 여전히 눈가에 남아있고,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 속 함박웃음에서는 그 시절 협찬받은 신발을 손에 들고 좋아서 소리 지르던 함성이 함께 들린다. 갓 태어난 아기의 작은 발 속에서는 어엿한 엄마가 된 친구의 설렘과 행복을 함께 들여다본다.


며칠 전 생일을 맞이하여 동아리 후배들과 함께 저녁을 보냈다. 수업을 마치고 동방에 모이는 대신에 직장인 옷차림으로 퇴근한 뒤 만나는 어른스러움과 학생 때와는 달라진 대화 주제가 어느새 이만큼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주로(走路)에서 만난 우리는 인생도 함께 달려가고 있다. 함께 하고 함께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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