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슬램에 대한 고찰
"MBTI가 어떻게 되세요?"
그저 반짝하는 유행에 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성격 유형 검사, MBTI는 이제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혈액형이나 좋아하는 음식처럼 MBTI는 스몰토크의 주제가 되었다. 혈액형이나 별자리에 비하면 사회 심리학적인 부분이 있지만... 여전히 60억 지구(이제는 70억이라고 하는데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람들을 16개의 유형으로 나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서 가벼운 얘깃거리로 던지는 것이야 상관없다지만 서점에서 'INFP 유형에게 추천하는 책' 같은 섹션을 보고 있으면 조금 아찔하다.
아무튼 나는 MBTI를 좋아한다. 처음 이 검사를 접했을 때는 결과를 마냥 신봉하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심리학 책에 꽂혀 한창 심리학 도서만 미친 듯이 읽었던 때가 있었다. 심리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결국 내 성격의 결함을 고치고 싶은 마음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으니... 내가 MBTI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나의 성격 유형은 INFJ, 예언자형이다. 이 MBTI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두 명의 인물이다. 예수와 히틀러. 모든 성격 유형 중 가장 복잡한 내면을 갖고 있으며 수많은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다. INFJ의 해석을 보며 여러 모로 '누군가 내 인생을 사찰하는 것이 아닌가'하며 소름이 돋았지만, 가장 공감이 되었던 것은 INFJ가 인간관계에 대해 갖는 태도인 도어 슬램(Door Slam)이다.
INFJ는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타인을 평가하는데, 상대방의 단점이 보이면 조용히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한다.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여지없이 상대방과의 관계를 방문을 쾅 닫듯이 끊어내 버린다.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이들은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내색하지 않는다.
이 내용을 처음 보았을 때, 성장하면서 겪어 온 수많은 인간관계와 그 관계의 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보통 나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그 사람의 취향에 맞는 깜짝 선물을 해주고, 밤을 새우면서까지 그 사람의 고민을 들어준다. 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된다. 문제는 그 이후다. 아무리 나와 취향이 맞는 사람이라도 맞지 않는 부분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의 경우 그 맞지 않는 부분을 한 번 찾으면 그곳에만 집중한다. 이후로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점수를 매겨, 결국 웃는 얼굴로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끊는다. 그렇게 끊겨 나간 관계가 셀 수 없이 많다.
원체 생각이 많고 의뭉스러운 성격과, 양육 과정에서 갖게 된 회피형 성향이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켰다. 나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대 의견을 내거나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그 사람과 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 똑바로 마주하고 해결할 용기가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도망쳤던 것 같다. 가끔은 나쁜 사람이 되었다면, 분위기가 조금 험악해지더라도 불만을 말했다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문제들이 점점 커지고 곪아서 결국 관계의 끝을 만들었다.
"생일 잊어버린 건 미안~ 근데 난 너와 함께 있으면서 한 번도 네 진짜 친구가 되었다는 느낌을 못 받았어. 그게 너에게 상처였다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
10년 동안 꽤 가깝게 지냈던, 힘든 임용 시절도 함께 보낸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함께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몇 시간이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시간이 지나 몸도 마음도 멀어졌지만 우리 사이의 불문율이 있다면 매년 서로의 생일을 챙기는 것이었다. 그런 친구가 작년 겨울, 내 생일에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원래였다면 그저 참거나 그대로 연락처를 차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용기를 내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10년 동안 서로의 생일을 챙겼는데 올 해는 네가 내 생일에 메시지 한 통 없어서 서운했다. 그 와중에 다른 친구들과 놀러 간 내용을 SNS에 올려서 섭섭했다'는 내용으로.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보았던 건 대충 저런 내용의 뾰족한 메시지였다. '진짜 친구'라는 게 도대체 뭔지. 본인도 섭섭한 게 있었으면서 얘기 안 한건 쌤쌤 아닌지. 여러 복잡한 감정이 겹쳤지만 결국 또 하나의 관계는 끝이 났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스스로 맺어 온 관계에 대해 돌아볼 시간이 많았다. 돌이켜보니 나는 나의 상처에만 민감했을 뿐 언질 하나 없이 손절당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직 어디서 나이 얘기를 할 만한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어른이 된 건지, 갑작스럽게 문 밖에 덩그러니 남겨진 사람들의 황당함도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그 사람들이 내 글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읽고 있다면 심심한 사과를 전하고 싶다. 미안합니다. 나도 그렇게까지 문을 세게 닫을 생각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