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이한 Apr 20. 2024

나의 가족 같은 만성 질환

    어떤 상황에서든 내 곁에 있어주는 것은? 부모? 친구? 연인? 땡. 땡. 땡. 정답은 바로 병이다. 까마득하게 어렸을 때부터 온갖 질병이 나와 동고동락했다. 며칠 전 병원 투어를 하다 문득 나를 스쳐갔던(가는 중인) 병이 몇 개나 되는지 궁금해져 글로 써보기로 했다.


    갓난아기일 때 나는 굉장히 까탈스러웠다고 한다. 양육자의 말에 따르면 육아 난이도가 최상이었다고. 품 안에 안겨 있으면 세상 곤히 잠을 자다가도, 바닥에 몸이 닿을라치면 소스라치게 울어댔다고 한다. 그 덕에 나의 양육자 둘은 교대로 나를 안으며 쪽잠을 잤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집이 떠나가라 울었던 것은 나와 30년을 함께 한 첫 번째 병 '아토피' 때문이었다고 한다. 훗날 엄마는 이때를 회상하며, "네가 왜 그렇게 울어댔는지 그때는 몰랐지. 나중에야 아토피 때문에 불편했다는 걸 알고 엄청 미안했어. 말도 못 하는 게 얼마나 가려웠으면...."이라고 털어놓았다. 지독한 아토피 덕에 나는 초등학생 때까지 햄버거, 핫도그 같은 음식은 꿈도 못 꿨다.


    아토피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 그럭저럭 적응하며 한창 뛰놀던 초등학교 저학년을 지나 중학년이 되었다. 환절기만 되면 목에 가래가 끓고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 쉴 때마다 색색 소리가 났다. 두 번째 만성 질환, 천식이 찾아왔다. 당시만 해도 천식이라는 병은 생소했고 주변에 천식 환자가 드물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 기침이 심한 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길을 지나며 기침을 할 때마다 주위가 홍해처럼 갈라지는 현상을 일상적으로 겪었다. 황사가 오면 증상은 더 심해져 등교하지 못할 정도였고, 링거를 너무 자주 맞아 항상 손등이 얼얼했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석션을 받을 때면 코와 목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다. 이 지긋지긋한 기관지 질환은 약 10년 간 나를 괴롭히다 아토피와 함께 스무 살 전후에 사그라들었다. 


    아토피와 천식이 지나갔으니 이제 좀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나 했다. 하지만 질병 보존의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이들과 바통 터치하듯 새로운 질환이 찾아왔다. 중이염이었다. 이번엔 그전까진 비교적 멀쩡했던 귀가 말썽을 부렸다. 어딜 가든 한결 같이 이어폰을 끼고 다니던, 여름이 점점 덥고 습해졌던 스물넷의 여름이었다. 갑자기 귓속이 미친 듯이 가려웠다. 병원을 가니 중이염이 있어 소독과 통원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그때는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병원을 가는 것도 사치였다. 결국 미친듯한 가려움으로 잠 못 자는 나날이 이어졌다. 임용이 끝난 후 병원을 찾기는 했지만 나아질만하면 악화되는 귀의 상태 때문에 지금은 치료를 포기했다. 


    중이염과 비슷한 시기에 만성 두드러기도 찾아왔다. 갑자기 피부가 미친 듯이 가렵고 부어오르는 상태가 이어졌다. 그 증상이 몇 주, 몇 달간 이어져 결국 피부과를 찾았다. 병원에서는 4주 이상 지속되는 두드러기를 '만성 두드러기'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질병의 치료 기간을 확답할 수 없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의 "언제 나아질지는 아무도 몰라요. 일단 나을 때까지는 계속 약 먹어봅시다"라는 말은 사망 선고 같았다.


    그뿐이던가. 작년엔 오랜 우울감의 마침표를 찍듯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그간 스스로가 우울증 환자일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지만 우울증 환자라고 진단을 받으니 힘이 빠지고 울적했다. 우울증도 최소 20년 이상 내 곁을 지켜온 절친 아닌가. 수북이 들어 있는 알약을 보며 내 몸에 (안 좋은 의미로) 감탄하게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토피, 천식, 중이염, 두드러기, 우울증 모두 만성 질환이다. 우스갯소리로 스스로를 종합병동이라고도 불렀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가끔 진료일이 겹쳐 같은 건물 피부과와 정신과 진료를 한 번에 받을 때도 있다. 시기가 좋지 않아 이비인후과 약, 정신과 약, 두드러기 약을 한 번에 털어 넣을 때면 '이렇게 약을 먹고도 내 간이 멀쩡할까' 싶다.


    나의 만성 질환에 가장 알맞은 이름은 '가족'이다. 피로 묶인 가족은 정말 안 맞고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법이다. 그것처럼 나의 병도 떼어내고 싶지만 떼어낼 수 없는 관계다. 언젠가는 이 지긋지긋한 가족, 병에게서 벗어날 수 있기를. 원인 불명의 질환이 언젠가는 치료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며 오늘도 약을 한 움큼 삼킨다.

작가의 이전글 10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