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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한 Mar 22. 2024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금쪽이였다

    교사로서 교실을 맡아 가르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만나는 아이가 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물건을 찢거나 던지는 아이,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교실을 돌아다니는 아이, 무기력하게 의자에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아이...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금쪽이'다. 작년 우리 반 금쪽이와 비슷한 특이사항을 가진 아이라도 막상 마주하면 작년의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아 당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아이들 개개인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 보편적인 교육 방식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이럴 때마다 교사라는 직업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한숨을 쉬고 맨땅에서부터 다시 모래를 쌓아야한다.


    금쪽이를 지도한다는 것은 피로한 일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문제 행동을 지도하다가도, 가끔 똑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도대체 왜 수업 시간에 종이 접기를 하고 있을까, 몇 번이고 나눠준 학습지를 왜 매번 잃어버릴까.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는 어릴 때 어른들 속을 썩인 적 없는 모범생이었는데, 쟤네는 왜 저럴까.'로 흘러간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다. 흙수저 출신으로 단칸방에서 어렵게 공부하다 성공한 경영인은 어떻게 하면 서민의 혈세를 더 잘 빨아먹을까 고민한다. 어릴적 양육자에 의해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들으며 눈을 흘겼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 자식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수많은 금쪽이를 만나며 고개를 젓던 어느 날, 갑자기 머릿 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나는 정말 모범적이고 착한 아이였을까?


    올 해 초, 새해 기념 대청소를 했을 때였다. 여기 저기를 닦고 쓸다 책을 정리하기 위해 책장을 열었다. 추억의 물건을 보관하는 책장 맨 아랫줄에서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쓰던 교환 일기장을 발견했다. 20년 전의, 이제는 얼굴도 흐릿한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일기장을 열었다. 첫 장에는 친구들의 별명과 일기의 규칙이 적혀 있었다. 


'나, 글씨를 되게 못 썼구나.'

일기를 읽은 첫 감상이었다. 수업 시간 아이들에게 바른 글씨를 강조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내 얼굴은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일기 내용 중에는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느니, 어떤 캐릭터는 내 거라느니하는 유치한 장난이 더러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걸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넘기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는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쓴 부분의 내용은 죄다 이런 식이었다.


'ㅇㅇ아, 죽고 싶어여? ㅡㅡ 화나게 하지 마세여. 그 캐릭터는 제 거예여.'

'ㅇㅇ이랑은 절교예여. 앞으로 말 걸지 마세여.'


처음 장난을 친 친구는 무안해하거나 당황해하며 나에게 사과했고, 나는 곧장 나만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주절주절 말하기 시작했다. 자기 감정에는 민감한 주제에 다른 친구들이 우울해하거나 힘들어하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내가 이런 아이였던가? 머리를 세게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사람의 기억은 쉽게 미화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상처 받았던 일이나 잘했던 일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이나 잘못한 일은 지우개로 지운듯 사라져있었다. 나는 어른들의 속을 썩이지 않는 모범생이 아니었다. 나는 6학년 때까지 알파벳을 쓰지 못했고, 악필이었으며, 걸핏하면 울거나 친구와 다툼을 일으켜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먼지 쌓인 추억의 일기장은 내가 너무나도 서툰 존재였음을, 나도 '금쪽이'였음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교직에 나오고 꽤 오랫동안, 나는 '금쪽 같은 내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다. 이미 교실에서 만나는 금쪽이에게 치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일기장을 발견한 이후 나는 이 프로그램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문제 행동 속에 숨겨져 있는 금쪽이의 진짜 마음을 볼 때면, 나를 스쳐 갔던 수많은 금쪽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당신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금쪽이었다. 주변 사람의 따뜻한 걱정, 엄격한 훈육, 상냥한 배려를 받으며 실패와 수치심과 우울함과 그 많은 감정을 딛고 어엿한 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돌려줘야 할 때가 아닐까? 서툴고 실수하는 작은 존재가 성장할 수 있도록, 조금은 친절한 어른이 되어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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