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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한 Mar 26. 2024

그때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인간이 죽음을 생각하는 가장 이른 나이가 8살 즈음이라고 했던가. 나 역시 그 나이에 죽음을 생각했다. 실수가 잘못이라고 책망당하고, 단지 양육자의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사과를 해야 할 때. 그때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느꼈다. 청소년 시절에는 따돌림, 가정 폭력을 경험하며 더더욱 고립되었다. 감정을 누르다 누르다 결국 새어 나올 때면 일기를 썼다. 일기장에 내 울분을 꾹꾹 눌러 적고 나면 그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소통 방식을 배우지 못한 나는 항상 외롭고 우울했다. 친구들이 의견을 정면으로 반대하거나 싫어하는 별명을 부르며 낄낄대면 바보 같이 웃어넘겼다. 그리고선 집에 와서 몇 날 며칠이고 그 상황을 곱씹었다. 죽고 싶다는 말을 SNS에 몇 번이고 썼다. 그러면 누군가는 나를 위로해 주었고 누군가는 나를 안쓰럽게 여겼다. 나는 그 동정과 연민의 눈빛을 먹으며 자랐다. 


    자기혐오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고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을 습관적으로 반복했다. 친구들은 모두 한편으로 평범하게 행복해 보였기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존재 같았다. 밤마다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깨끗이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던 배우가 죽었다는 뉴스를 듣고는 '그 사람 대신 내가 사라졌어야 했다'며 울었다. 

    

    우울증이 깊어지고 자살 사고가 극에 달했던 시기는 대학생 때였다. 당시 나는 대학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어려운 인간관계, 재미없는 수업. 전공 특성상 발표 수업이 많았고 실습을 해야 했다. 다른 사람의 앞에 서는 것이 죽을 만큼 떨렸다. 그러던 2016년 여름, 나는 3학년 첫 실습에서 예기치 않게 실습생 대표가 되었다. 한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먹지 않고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전까지 '차에 치이고 싶다' '옥상에서 떨어지면 어떨까'라는 생각은 수도 없이 해봤지만 만 죽고 싶은 주제에 아픈 게 무서워서 자해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다. 자살 사고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실습 하루 전날,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식칼을 들었다. 손목을 살짝 찔렀다. 역시 아팠다. 결국 나는 칼을 들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참을 엉엉 울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에 짓눌려 죽어버릴 것 같은데, 누구도 내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결국 나는 한 번도 선택하지 않은, 도망치는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엄마에게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 편지 내용은 뒤죽박죽이었고, 엄청나게 길어졌지만 아직까지도 한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찾지 마세요, 저는 살기 위해 도망가는 거예요.' 22살의 여름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주말 아침에 문득 잠에서 깨어 사랑하는 존재와 충만한 하루를 보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죽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그 후에도 죽고 싶은 날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나는 살아남았고 그래서 나를 살고 싶게 하는 것을 많이 찾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앵무들을 만나고,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를 만났다. 무언가가 당신을 죽고 싶게 만들 때, 그곳에서 도망쳐도 괜찮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지만 잠깐 쉴만한 벤치는 있을 것이다. 잠깐 쉬었다면 다시 일어나서 당신을 살게 하는 것을 찾으러 가자. 떡볶이를 먹을 수 있어서, 푹신한 침대에서 잠이 들 수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찬란한 햇빛 아래를 거닐 수 있어서, 이 글을 쓸 수 있어서, 그때 죽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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