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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한 May 01. 2024

그들의 비열함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세상에 100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90명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고, 5명은 당신을 좋아하고, 5명은 당신을 싫어한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으로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다. 나를 싫어하는 5명의 존재는 나에게 관심이 없거나 나를 좋아하는 100명보다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사실 대부분의 양말은 짝을 찾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데도, 짝을 잃은 양말 한 켤레에 목을 메며 스트레스 받는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부정적인 에너지를 민감하게 감지하도록 진화해왔다.


    불안정하거나 폭력적인 가정 환경에서 자란 나는 이 '부정적 에너지 감지 센서'가 과하게 발달되었다. 타인의 눈빛 하나, 말투 하나에도 솜털을 곤두세웠다. 여기에 청소년기 특유의 자의식 과잉이 합쳐지면 세상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타인을 상처주기 위한 누군가의 차갑고 담담한 노력을 나는 족집게처럼 콕콕 골라낼 수 있었다. 


    가장 처음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중학교 1학년 2학기부터 친해진 5명 정도의 그룹이 있었다. 그룹에서도 특히 나, 리더였던 M, S는 붙어다녔다. S는 셋이 있을 때도 M의 앞에서 은근슬쩍 나를 흉보는 일이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체 했다. 그러다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했던 아이가 중학교 2학년 여름쯤 갑자기 전학을 가게 되며 괴롭힘은 더 명확해졌다. S는 급식을 먹으러가는 길에 의도적으로 나를 빼놓고 가거나, 아이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다른 2명의 친구와 웃으며 명랑하게 얘기하다가도, 내가 이야기에 참여하려고 하면 차갑게 등을 돌렸다. 조용하고도 집요한 악의는 나를 힘들게했지만 이내 내가 다른 그룹에 들어가게 되며 S의 괴롭힘도 잦아들었다.


    다시금 그 때의 트라우마가 떠오른 것은 23살, 휴학 중 일하게 된 회사에서다. 6개월 동안 일할 회사를 찾다 얼결에 들어가게 된 공기업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나는 첫 날부터 바짝 얼어 있었다. 본부장은 팀원들에게 나를 소개해주었고, 나는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에 있는 파일과 매뉴얼을 정신 없이 읽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수식과 단어가 머릿 속을 산만하게 어지럽히고 있었다. 같은 팀이지만 업무로는 겹치는 일이 거의 없는 P 대리가 나에게 "모르는게 있으면 물어보세요."라고 웃으며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다소 굳은 얼굴과 딱딱한 말투로 "네"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게 다였다.

    고작 23살의 사회 초년생이 자신의 호의 섞인 말에 조금 딱딱하게 대답했다는 이유로 P 대리의 무시가 시작되었다. 레퍼토리는 중학생 때와 똑같았다. 다른 팀원들의 인사엔 살갑게 인사, 내 인사에는 고개만 까딱 혹은 무시. 일이 있어 같은 라인의 K대리와 P대리, 내가 셋이서 밥을 먹게 된 때에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직접적으로 부딪혔던 것은 이후 다른 팀의 업무를 어거지로 떠맡게 되면서 생겼다.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면서 다른 팀의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를 포함한 인턴들이 축출되었다. 본 업무를 하면서 병행해야하는데 마감 기한까지 빡빡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마침 그 때쯤 새로운 인턴이 팀에 합류했다. 업무의 과중함에 대해 팀의 과장에게 호소하며 "혹시 괜찮다면 이 업무를 L(새로운 인턴)씨에게 조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과장은 "본업에 지장이 가지 않는다면 괜찮겠다"며 긍정적인 대답을 했으므로 나는 L씨에게 새 업무를 조금 떼어 부탁했다. P 대리가 그 모습을 지켜보았고, "류이한 씨, 잠깐 좀 보죠."라며 화난 얼굴로 나를 불러냈다.

    "왜 이한 씨 업무를 L씨한테 줘요? 난 얘기 들은게 없는데."

다리를 꼬고 휴게실에 앉은 P 대리는 내 얘기를 들을 생각 따위 없어보였다. 깊게 패인 미간 주름, X자로 깍지 킨 팔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아침에 과장님께 해당 업무에 대해 여쭤봤는데 과장님께서 괜찮다고 하셔서 부탁드렸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달달 떨며,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게 됐다.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요? 과장님께 말했다고요?"

    "네, 아침에 과장님께 말씀드렸는데...괜찮다고 하셔서..."

    "일단 알겠어요."

    한숨을 쉬며 P 대리는 쌩하고 몸을 돌려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는 한동안 팔딱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휴게실에 앉아 있었다. 울분이 차올랐지만 어쨌든 한 방 먹였다는 마음에 조금 후련하기도 했던 것 같다.


    15살의 S, 23살의 P대리를 지나며 상처에는 딱지가 생겼지만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김 없이 피가 철철 흐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의는 이제 더 이상 겪지 않았으면 했건만 본격적인 직장 생활이 시작되고도 여전하다. 두 번째 학교인 이번 학교에서 만난 남교사 H는 S, P대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나를 대한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해도 내 인사는 무시, 회의가 있을 때는 내 쪽을 절대 바라보지 않고 내 말도 가볍게 무시한다. 한 공간에 있는 다른 사람이 말을 걸었을 때는 웃으면서 대답하고 심지어는 본인이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 딱히 그에게 기대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는 사람을 차별하고 노골적으로 투명 인간 취급을 하면서 자기 말을 무시하는 학생에겐 예의 없다고 혼을 내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더 없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적어도 공과 사는 구분하면서 행동해줬으면 좋겠지만 아마 S, P대리, H교사 같은 인간에게는 그런 류의 상식을 기대할 수 없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인간이지만 셋의 공통점이 있다. '괴롭힘에 딱히 이유가 없다'는 것. 때는 그들의 말과 행동에 사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음침한 인간들의 말과 행동을 굳이 해석하고 알아 줄 필요는 없다. 그런 말과 행동에 무슨 거창한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은 그저 누군가가 상처 받기를 바라며 비뚤어지고 뒤틀린 속내를 당당히 드러내는 것이다. 이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그런 악의 따위 개나 줘버리라는 태도로 뻔뻔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소소하게 바라는 것은 언젠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무시하는 H 교사 앞에 대고 농담인듯 웃으며, 'H 선생님은 제 말은 안 들리시나봐요~'라고 능청스럽게 말해주는 것뿐이다. 당신이 누군가의 악의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부디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하찮은 악의는 술자리에서 마오징어마냥 잘근잘근 씹으며 날려버리길. 그들의 비열함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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