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나는 항상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에 푹신한 가죽 시트에 몸을 맡긴 채 종이 지도에 의지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멀미가 심해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으며 '왜 이렇게 먼 곳까지 가야 하냐'며 투덜대다가도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탁 트인 풍경과 새로운 공기에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우리 여행은 대부분 제철 음식을 먹기 위한 여정이었다. 맛있는 딸기를 먹기 위해 산청에 있는 딸기 밭을 돌아다니며 딸기를 따고, 비바람이 내리는 제주도에서 만난 생선조림 가게에서 갈치조림 6인분을 먹어 치웠다. 영덕까지 찾아가 수산 시장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홍게를 배불리 먹었고, 8시간을 꼬박 달린 속초 수산물 장터에서 반건조 오징어를 사 먹었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휴가가 아닌 때는 가까운 산과 강으로 떠났다. 봄이면 엄마와 함께 뒷산에 나가 봄나물을 캤다. 고작 7살, 5살 배기였던 나와 동생은 기세 좋게 호미를 들고 나물을 캐다가 30분쯤 지나면 나물 캐기에 흥미를 잃고 근처 도랑에서 소꿉놀이를 했다. 해가 질 무렵 집에 돌아오면 봄나물을 이용한 맛있는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향긋한 달래장도, 쌉싸름한 냉이 나물도 좋았지만 역시 나의 최애 메뉴는 쑥 버무리였다. 쑥을 밀가루 반죽에 버무려 살짝 쪄낸 후 위에 설탕을 솔솔 뿌려 먹는 음식인데, 장떡 같은 밀가루 반죽과 촉촉하면서 약간 질긴 쑥의 식감, 설탕의 달큼함이 어우러져 절묘했다. 봄에는 매일 같이 쑥 버무리를 해달라고 엄마를 졸랐다.
여름엔 시장과 밭을 다니며 제철 과일을 물릴 만큼 먹었다. 복숭아와 자두, 앵두, 수박과 참외.... 가끔 드라이브를 하다 앵두나 살구나무가 보이면 아빠는 꼭 차를 세웠다. 제철을 맞아 발갛게 익어가는 앵두와 살구를 따서 종이컵에 잔뜩 담아 우리에게 주곤 했다. 사 먹는 과일도 맛있었지만 나무에서 직접 따서 먹는 노지의 과일은 훨씬 더 생기가 넘쳤다.
가을부터는 주로 바다에 갔다. 장화를 신고 갯벌에 들어가 직접 조개를 캐고 게를 잡거나, 수산 시장에서 숭어, 우럭, 전어 같은 회를 사먹었다. 남해 수산물 시장에서 회를 포장해 차를 타고 인적이 드문 바닷가로 간다. 그곳에 차를 세운 후 차를 바람막이 삼아 돗자리를 펴고 회를 먹었다. 고소하고 쫄깃한 회의 식감과 달달하고 매콤한 초장이 입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바람이 불어 조금 쌀쌀해지기 시작할 때쯤, 같이 포장해 온 매운탕 재료를 이용해 매운탕을 끓인다. 버너 불에 손을 녹이며 따뜻한 밥과 매운탕으로 2차전을 시작한다.
겨울은 몸을 녹이는 음식을 먹었다. 꽤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연례행사는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고 근처에 있는 국밥집에서 아침으로 국밥을 먹는 일이었다. 새벽 5시, 떨어지지 않는 눈꺼풀을 비비며 비몽사몽 한 상태로 차에 탄다. 엄마는 수평선에 주황빛이 돌 때쯤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패딩으로 중무장을 한 채 밖으로 나가 해돋이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해가 뜨면 한 해의 바람을 담아 기도를 한 후 다시 차를 타고 아침을 먹으러 국밥집으로 향한다.
나는 10대 후반이 되고, 20대가 되면서 제철 음식 투어에 소홀하게 되었다. 왜 동지엔 팥죽을 먹고, 대보름엔 나물비빔밥을 먹어야 하는지. 우리 부모님이 너무 유별나 보였고, 제철 음식을 왜 꼭 그 계절에 먹어야 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도 그냥 다른 집처럼 평범하게 마트에서 과일을 사고,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대 중반에 본가를 나가기 전까지 나는 이상한 반발 심리를 가지고 있었다.
다시 제철 음식을 찾아 먹기 시작한 것은 20대 후반부터였다. 삶의 모든 것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내며 오후를 보내고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멍하니 TV를 보고 나면 밤이 되었다. 내일 직장에서 어떤 문제가 나를 괴롭힐까 걱정하며 뒤척이면 아침이 왔다.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는 몸을 일으켜 꾸역꾸역 출근을 한다. 이걸 다섯 번 반복하면 짧은 주말이 오고, 몇십 번 반복하면 한 달, 일 년이 지나갔다.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메마른 일상.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내가 나라는 형태를 유지하기 힘들어졌던 작년 여름, 결국 일을 쉬게 되었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상담 선생님에게 내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갑작스럽게 많은 시간이 생겼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를 처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엉뚱하게도 내가 떠올린 것은 복숭아였다. 복숭아, 정말 맛있는 복숭아가 먹고 싶었다.
그렇게 작년 하반기엔 맛있는 제철 음식을 찾아 헤맸다. 복날에는 맛있는 삼계탕을 먹기 위해 수도권 맛집을 뒤졌고, 가을엔 맛있는 사과를 사러 농산물 도매 시장에서 사과를 한 알 한 알 만져 보기도 했다. 겨울엔 회를 먹기 위해 강원도 바닷가를 찾았다. 주변에서 반년 남짓한 시간 동안 뭘 하고 쉬었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기 민망할 정도로 먹고 먹고 먹었다.
계절에 따라 철에 맞는 음식을 먹다 보니 깨달았다. 왜 어른들이 그렇게 유난스럽게 제철 음식을 챙겼는지, 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차려 놓고 일가친척을 초대해서 왁자지껄하게 먹었는지를. 그것은 하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일상을 조금이라도 생기 있게, 특별하게 만들기 위한 어른들 나름의 눈물겨운 몸부림이었다. 더운 여름도 복숭아와 수박이 있기에 버틸 수 있고, 추운 겨울도 따뜻한 칼국수와 팥죽이 있기에 견딜 수 있다. 음식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게 하는 연료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영영 지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매서운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출퇴근길 얼굴에 닿는 바람이 따스하다. 오늘 퇴근하면 집에 가서 봄나물을 반찬으로 저녁을 먹어야지. 그리고 후식으로는 마트에서 산 딸기를 먹을 것이다. 여전히 가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날도 있지만, 그럼에도 맛있는 복숭아를 먹고 싶기에 오늘도 살아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