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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한 Jun 12. 2024

아웃사이더라도 괜찮아

    '아싸'라는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나는 주류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푹 빠졍 있었고, MP3에 일본 노래를 가득 담고 다녔다. 종합장에는 늘 만화를 끄적거리며 어딘가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오타쿠'라고 불리는 부류였다. 


    단지 내가 오타쿠였다는 이유로 아웃사이더였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규칙이 불편하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지금보다도 성인지 감수성이 한참 떨어졌던 2000년대, 모두가 당연하게 '여자는 핑크, 남자는 블루'를 외칠 때도 나는 파란색을 고집했다. 여자 친구들이 불편함 없이 입던 치마는 거추장스러웠고, 인형 놀이나 소꿉장난 대신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게임을 하며 놀았다. 부모는 우스갯소리로 내가 아들 같다고 말하곤 했다.


    커가면서 나의 성 정체성과 지향성에도 변화가 생겨 나는 더더욱 내가 외곽으로 밀려나는 것을 느꼈다. 몇 명을 동시에 사랑하기도 했고, 그 대상이 여성이기도 했다. 내 몸이 내 정신과 맞지 않는 것 같은 감각인 디스포리아도 느꼈다.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회의감, 결혼 제도에 대한 거부감. 다른 사람들이 태연하게 웃는 순간 속에서 홀로 정색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아웃사이더임을 인정해야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다수가 속한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다는 것은 외롭고 쓸쓸한 일이었다. 나 혼자만 어딘가 다른 모양의 퍼즐 조각 같았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자신의 성별에 만족하고, 한 명의 이성만을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이 이상한 퍼즐판에 꼭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다. 정상성에 부합하는 점이 하나도 없던 내가 정상성의 집합체인 교육대학에 들어간 것은 참 얄궂은 일이었다. 대학 생활 내내 나는 동기들과 같은 언어로 말하는 외계인이 된 느낌이었다.


    절대 정상성에 근접한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내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찌감치 결혼 제도에 반대하며 비혼을 선언했고, 부모는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내가 결혼을 한 것은 결혼 제도 자체를 수용한 것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비혼주의자였던 나도 결혼을 했다'는 식의 낭만적인 포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쨌든 사람들은 나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을 내렸다. 내가 속으로 결혼 제도를 반대하든,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든 그런 것은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퀴어로서 나의 내면은 미혼일 때와 바뀐 것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나를 '자연스럽게' 정상성 사회에 포함시켰다. 갑작스럽게 그 사회에 편입된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한동안은 내심 주류에 속해있다는 아늑함에 안도하기도 했다.


    "그 나이대에는 안 만들려고 해도 애가 생기잖아요."

    결혼 이후 동학년 전담 교사의 너무나 일상적인 말 한 마디에 눈이 번쩍 뜨였다. 

    "애 낳을 거면 젊을 때 낳는게 낫지. 우리도 셋째 가지려고 했는데 나이가 있다보니까 생각보다 잘 안 되더라고."

    "아직은 애 생각이 없겠지만 또 모르지.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학교를 옮긴 후에도 어김없이, 친분과 장소에 관계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말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건 성희롱인데'라는 생각을 했고 수치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친하지도 않은 남교사의 섹스 장면을 저절로 떠올려야 했고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알아야하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의 잠자리 사정을 왜 그렇게들 궁금해하시는건지. 로맨틱하거나 섹슈얼한 관계가 '결혼'이라는 정상성과 만나면 공적인 관계가 되기라도 하는건지 의아했다. 다만, 대놓고 '이거 성희롱인데요'라고 말했다간 이상한 눈길을 받을 것이므로 적당히 웃으며 얼버무리곤 했다.


    외모는 바꿀 수 있지만 본질은 바꿀 수 없다. 조금 더 투박한 말이지만 SNS에서 보았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나는 외적인 부분에서는 분명 주류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성에 가까운 인간이지만 본질은 절대 주류 사회에 속할 수 없는, 지독한 아웃사이더다. 그리고 정상성의 피곤함에 지쳐버린 지금은 결코 주류 사회에 대해 동경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잠자리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멋진 아웃사이더 어른이 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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