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내 삶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아동기에는 잦은 이사와 각종 질환으로, 청소년기에는 가족과 친구 관계로, 청년 시절에는 진로 고민으로. 누군가가 내 삶이 파란만장했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렇게 말하긴 어렵겠다. 하지만 누구나 겪는 사적인 고난이 내 삶에도 잔뜩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고난에 꺾여 도망쳐나온 것이 작년이었다.
작년 6월, 5년차 교사로 학교에 다니며 처음으로 병가를 내고 휴직이라는 것을 했다. 학급에 있는 몇몇 학생들의 반복적이고도 끈질긴 소음을 견딜 수 없었다. 원래 나는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루는 남편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옆에서 30초만에 잠드는 사람이었다. 스트레스가 가장 심했던 임고생 시절에도 잠은 꼬박꼬박 7시간씩 잤다. 그러던 내가 처음으로 불면증이라는 것을 앓게 되었다.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괴로웠다. 차분한 어둠 속에서 의식이 점점 흐려질 때쯤 나의 훈계에 웃음 짓던 그 애의 모습, 그에 당황해 말을 더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일은 또 걔가 누구에게 시비를 걸어 나를 괴롭힐까, 내일도 내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은 없겠지. 그 다음날도, 그 다다음날도. 이런 저런 불안과 걱정이 스멀스멀 몰려와 어느새 머리를 꽉 채웠다. 걱정의 안개는 걷히지 않고 오래오래 나를 괴롭게 했다.
휴직을 하고 정신과 약을 먹으며 상담을 다녔다. 내 상태는 생각보다 빠르게 안정되었다. 일단 물리적으로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도 상담사 선생님도 모두 내게 일어난 일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남편도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다. 가끔씩 불쑥 찾아오는 불안과 악몽은 오롯이 내 스스로 견뎌야했지만 주위의 도움과 약의 힘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짧은 휴직을 끝내고 돌아온 올 해, 작년 아이들은 6학년으로 올라가고 나는 4학년으로 내려왔다. 점심시간도 쓰는 층도 겹치지 않아 학교에서 그 아이들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어느정도 안심이 되었다. 일과 시간 중 불쑥 작년 아이들을 마주하고 얼굴을 볼 때 조금 괴로웠지만 그 때뿐이었다.
나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지난주 금요일, 아침에 메시지가 왔다. '6학년 보결 알려드립니다.' 전담이 없는데 왜? 의아했는데 떡하니 6교시에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금요일이라 오후에 조퇴하는 인원이 많은 모양이었다. 교무실에 전화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했지만 어차피 1시간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점심 시간에는 작년 부장님이 나에게 다가와 '괜찮겠어?'라고 물어주었다. 본인도 보결 수업을 들어갔는데 내 이름을 보고 걱정됐다며. 상냥한 부장님의 위로를 웃어넘기며 찾아온 6교시. 6학년 교실로 올라갔다.
6학년 교실은 어수선했다. 수업을 하러 내가 교실에 들어갔는데도 무관심했다. 작년에 가르쳤던 몇몇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하러 오는 아이는 없었다.
'그래, 이럴줄 알았잖아. 뭘 신경쓰고 있어. 그냥 한 시간 수업하러 온건데. 신경쓰지 말자.'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수업을 시작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아이들은 정말... 여전했다. 아니, 더 예의가 없어졌다. 작년에는 모범적이고 차분했던 아이들마저 태도가 불량해졌다. 다른 학생의 발표 내용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특수 학생의 말 한 마디에 큰 소리로 비웃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단호하게 그런 말과 행동을 제지하지도 못한 채 허둥대며 수업을 이어갔다. 필요한 학습지를 인쇄하러 협의실에 간 사이 학급의 한 아이가 내 말투가 이상하다고 놀렸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옆 반에는 내가 수업하러 올라왔다는 소문이 돌았는지 내가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작년 그 애가 복도로 나와 기웃거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애와 눈이 마주쳤고 작년처럼 실실 웃으며 인사를 하는 그 애에게 굳은 얼굴로 인사를 해줘야만 했다.
한 시간 수업이 몇 달처럼 길게 느껴졌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내려오자 진이 빠져 한참을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었다. 겨우 40분 동안 보결 수업을 하러 들어갔을뿐인데, 마음이 순식간에 작년 교실로 돌아가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 많은 폭력과 문제를 폭탄처럼 끌어안고 죽어갔다. 꼬박 1년이 지났는데도 내 마음은 여전히 지옥에 있구나.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혹은 어떤 범죄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을 떠올려본다. 사람들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냐'며 송곳처럼 날카로운 말을 던진다. 그들이 겪었을 일에 비하면 이런 일은 작은 생채기일텐데, 생채기조차 쉬이 낫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이제 그만 잊어라' '극복해라'는 말은 상처를 더 깊게 찌르는 비수가 될뿐이다. 어떤 상처는 너무 깊고, 지난하고, 또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