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인 우리 부부는 둘 다 글쟁이다. 그이는 교직에서 근무하던 40대 초반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인으로 등단 후 두 권의 시집을 냈지만 그 후로 시는 더 이상 쓰지 않고 주로 공부법과 자녀교육과 한자 어휘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나도 글 쓰는 일에 관심은 있었으나 대학에서 강사생활을 하는 동안 글을 제대로 쓴 적은 없었다. 그러다 회갑을 맞이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던 시절의 나는 언젠가는 글을 써야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대학원에서 전공을 바꾸게 되면서 글 쓰는 일과 멀어졌다. 연애시절의 내 편지를 기억하고 있는 그이는 언제나 나에게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이의 오랜 재촉이 있기도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밖으로 나다니는 활동을 멈추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 쓰는 방향과 주제가 확실한 남편과는 달리 내가 쓰는 글의 주제는 다양하다. 장르 또한 제한 없이 쓰고 싶은 글감이 떠오를 때, 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수필과 소설로 표현하기도 한다. 남편은 이런 나에게 "당신은 시와 소설은 아니야. 에세이가 맞아"라고 말하지만 나는 때론 시적으로 표현할 때와 허구적인 이야기를 써 내려갈 때 좋은 느낌을 받는다.
그이는 퇴직 후 글 쓰는 일에 온전히 시간을 쓰고 있다. 나 또한 그이와 함께 글쟁이로 살고 있다. 집안일을 하거나 식사 시간과 장보기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날은 둘이 같은 공간에 함께 지내면서 각자의 책상에 앉아 자판을 토닥거린다. 글 쓸 때의 집안 분위기는 재깍거리는 시계 소리와 함께 타닥타닥 토독토독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정적 속에서 엇박자를 이룬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글쟁이인 우리 둘은 서로 마주 서서 목례를 한 후 체조와 요가를 섞어서 한다. 여름철이기 때문에 40여분 남짓 맨손 운동을 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는다. 땀이 식기 전에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같이 하며 타월에 비누 거품을 내서 서로의 등을 시원하게 밀어준다. 신혼시절의 매력적인 알몸은 아니지만 이 나이에 아직은 봐줄 만한 몸매들이 아니냐면서 히죽거리기도 한다.
아침 식사를 느긋하게 마치고 나면 각자의 자리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오전 시간엔 집중하기 좋으니 글 쓸 때 최대한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 그이는 20분 정도의 낮잠을 잔다. 한낮 열기를 피해 나무 그늘에서 오수를 즐기는 농부처럼 그이의 오수 시간은 짧지만 달콤해 보인다. 나도 그이를 따라 침대에 눕고 싶지만 낮잠을 자고 나면 새벽녘까지 잠을 못 자기 때문에 안마의자에 앉아 쉬거나 세라젬을 한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그이는 물 한잔을 마신 뒤 책을 읽거나 다시 글을 쓴다. 나도 역시 그이와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그이의 표정은 나와 다르게 비범하기도 하고 전투적이기도 하다. 그이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질 때도 쓸 것이 많아 바빠 죽겠다고 한다. 나는 이런 그이에게 이제는 널려있는 것이 시간인데 무엇이 그리 바쁘단 말이냐며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고 잔소리한다.
저녁 먹기 전까지 글작업을 하다가 식사는 집에서 먹기도 하고 밖에 나가서 사 먹기도 한다. 서산의 해가 뉘엿거리는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저녁 운동을 나선다. 둘이서 아파트 꼭대기 층까지 계단 오르기를 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동네 산책을 한다. 빠른 걸음으로 동네를 돌고 나면 1시간 정도 걸린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시 글을 쓰다가 11시 반이 되어 잠을 자러 침실로 들어간다.
퇴직 후 제2막 인생을 위해 친구들 중 한 친구는 땅을 사서 일구고 있다. 또 한 친구는 일을 다시 잡기도 했다. 여행을 다니는 친구와 골프를 시작한 친구도 있고 손주를 돌보느라 아들딸 집에서 기거하는 친구도 있다. 우리 부부는 2막 인생을 글 쓰는 시간으로 메우고 있다. 글쟁이로 살고 있는 둘 만의 하루하루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지 아닐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손주를 낳게 되면 또 다른 시간 위를 걸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