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실제 4
<일기와 에세이 사이, 그 부드러운 거리>
‘에세이와 일기의 차이는 뭘까?’ 에세이는 ‘나를 위한 글’이면서 동시에 ‘타인을 위한 글’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일기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일기는 철저히 개인의 기록에 머무를 수 있지만, 에세이는 나의 경험과 사유를 넘어 타인의 마음에 닿으려는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둘 사이의 경계가 언제나 뚜렷한 것은 아니다.
나는 오랜 시간 써둔 일기를 엮어 책을 낸 적 있고, 별도로 에세이를 모아 출간한 경험도 있다. 이처럼 일기든 에세이든, 글은 다듬고 엮는 과정을 거치면 충분히 책이 될 수 있다. 다만 에세이는 애초부터 ‘책이 될 수 있는 글’이지만, 일기는 원문 그대로 책에 실을 수 없다. 에세이처럼 다듬고 수정한 뒤에야 비로소 독자에게 내놓을 수 있는 글이 된다. 그렇기에 ‘써놓은 일기’는 에세이를 쓰기 위한 훌륭한 재료, 다시 말해 글감 창고가 된다.
일기와 에세이는 모두 ‘나’를 중심에 두고 쓰는 글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일기는‘내 마음의 안쪽’을 거르지 않고 솔직하게 적어 내려가는 글이다. 하루 동안의 감정, 생각, 기억에 대해서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흘려보낸다. 결국, 일기는‘나에게 쓰는 글’이다.
반면 에세이는‘나로부터 출발하지만,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글’이다. 나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이 독자에게 어떤 울림이나 공감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에세이는 구체적인 일상에서 출발하지만, 감정을 곧바로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비껴가며, 한 걸음 물러서서 사유하고, 문장으로 가다듬는다. 그래서 에세이는 때로는 문장 안에 슬픔을 숨기고, 사소한 장면 속에서 삶의 본질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오늘 친구와 다투었다.”라는 문장은 일기에 기록해 둘 수 있는 문장이지만, 에세이에는 그 다툼을 통해 관계의 민감함, 오해의 시작, 혹은 성장의 한순간을 포착해낼 수 있다. 일기가‘기억의 보관함’이라면, 에세이는‘의미를 건져내는 그물망’이다. 일기는 내 안에 갇힌 채로 남을 수 있는 글이지만, 에세이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열려 있는 글이다. 이 차이가 두 글을 본질적으로 구분 짓는다.
일기와 에세이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하지만, 일기는 충분히 에세이로 바꿀 수 있다. 실제로 일기는 에세이의 가장 적합한 재료다. 예를 들어, 일기에는 “오늘은 너무 속상했다”와 같은 감정을 단순하게 기록할 수 있다. 이런 문장을 에세이로 바꾸려면 ‘왜 속상했는가’,‘그 감정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유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걷다가 기분이 엉망이었다.”라고 일기에 쓴 문장을 에세이로 바꾸면 다양한 결을 입힐 수 있다.
*감각적 이미지 중심으로 전환: “비는 예고 없이 쏟아졌다. 우산 하나 없이 그 속을 걷는 동안, 나는 온전히 젖었다. 몸도, 마음도. 어쩌면 삶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피할 틈도 없이, 가끔은 젖게 된다.”
*내면의 감정에 초점 맞추기: “빗속을 걷다 보면, 감정도 서서히 축축해진다. 우산이 없었던 건 단지 물리적인 사실이 아니라, 마음을 덮어 줄 무언가가 없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나는 비에 맞은 것이 아니라, 조금쯤 삶에 들킨 기분이었다.”
*철학적 사유 덧붙이기: “인생에는 때때로 준비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날의 예보 없는 비처럼. 우산이 없던 나는 처음엔 당황했지만, 곧 그 젖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든 계획이 무력해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담담하고 일상적인 톤으로 전환하기: “퇴근길, 갑작스런 비를 만났다. 우산은 없었고, 마음도 그날따라 허술했다. 사람들은 뛰었지만, 나는 그냥 걸었다. 젖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루쯤은 그런 날도 있는 거니까. 예상 밖의 날씨처럼, 감정도 늘 예측대로 흐르지 않는다.”
이처럼 일기는 에세이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첫 책『남의 일기는 왜 훔쳐봐가지고』는 수백 편의 일기 중 54편을 골라 에세이로 바꾸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문장을 최대한 털어낸 후, 시처럼 리듬을 살려 짧은 글로 만들었다. 이런 작업을 거친 후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감정을 사유로, 경험을 서사로 바꾸면, 일기는 독자의 마음에 닿는 에세이로 새롭게 태어난다. 좋은 에세이는 결국 진심 어린 일기에서 비롯되어, 그것을 정제된 언어로 다듬을 때 비로소‘책이 되는 글’이 된다.
에세이를 쓰는 방법도 거창하지 않다. 다만 몇 가지 길잡이를 따라가면 된다. 먼저 글의 시간적 배경을 정해야한다. 봄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오후인지, 혹은 늦은 겨울밤 창가에 기대어 앉아 있는 순간인지, 작은 단서 하나가 글의 호흡을 달라지게 한다. 또한 공간적 배경을 살려내는 일도 소중하다. 낡은 카페의 나무 의자일 수도 있고, 시골집 마당의 흙냄새일 수도 있다. 공간은 곧 이야기가 숨 쉬는 무대가 된다.
또한 어떤 시점으로 글을 풀어낼지도 생각해야 한다. ‘나’의 목소리로 속삭이면 독자는 곧 가까운 벗처럼 느낄 것이고, 한 걸음 물러나 관찰자의 눈으로 그려내면 이야기는 차분한 사색의 울림을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줄거리도 반드시 특별할 필요 없다. 큰 사건이 없어도 좋다. 작고 사소한 하루의 한 장면, 사소한 물건에 담긴 생각, 문득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드는 감정 등을 진심 담아 쓰는 순간 누군가의 마음을 흔드는 서사가 된다.
결국 에세이란 기술을 겨루는 글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글이다. 나의 하루와 기억을 빌려, 아직 만나지 못한 독자의 마음을 은은하게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는 글, 그것이 우리가 쓰고 싶은 에세이, 써야할 에세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