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실제 6
<공저의 힘>
에세이 클럽에서 만난 여덟 명의 에세이스트들과 함께 첫 공저를 펴냈다. 『일상의 평범함이 특별함이 되는 순간』이라는 제목을 단 책은, 202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우리들 품에 날아들었다. 미니멀리즘의 여백, 고 3 엄마가 바라본 수능 세계, 퇴직 후 부부의 시간, 외모에 대한 섬세한 고민, 그리고 여행과 귀촌에 얽힌 이야기까지, 각자의 삶이 하나씩 다른 색으로 물들어 여덟 편의 목소리가 어우러졌다. 책장을 펼치면, 서로 다른 삶이 다른 빛으로 비취면서도 어딘가에선 깊이 맞닿아 있다.
이어서 펴낸 두 번째 공저 『나를 홀린 글쓰기 32』는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 끝에 도달한, 우리만의 작법서였다. 동서고금의 작법서를 함께 읽고, 각자의 언어로 소화한 글들을 엮으며 우리는 꽤 오랜 시간 함께 걸었다. 완성된 책을 함께 마주한 날, 여덟 명의 에세이스트는 조금 더 작가다워졌다. 함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블로그 작가협회 회원 51명이 참여한 세 번째 공저 『Bletter』가 세상에 나왔다. 주제는‘편지’였다. 원고의 부담은 덜했지만, 기쁨은 그보다 훨씬 컸다. 누군가의 안부가, 어떤 이의 마음이, 페이지마다 조용히 스며들었다. 마치 넓은 들판 위에 부드럽게 내리는 비처럼.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한 권의 책 속에 담았다.
나는 글쓰기가 철저히 혼자의 일이라 믿고 있었다. 고요한 시간 속에서 자신과 대화하며, 내면으로 깊이 잠수하는 일. 그것이 글쓰기의 세계였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 쓰는 글을 택하면서 여러 사람의 언어가 모여 한 권의 책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안에는 다채로운 감각과 시선, 겹치는 글의 느낌과 엇갈리는 리듬이 공존했다. 내가 보지 못한 세계를 누군가 대신 보여주기도 하고, 내가 망설이던 언어를 타인이 다정하게 써 내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의 책 속에서 여러 마음이 교차하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어우러져 어느새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공저의 가장 큰 힘은 다른 시선과 감각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주제를 각기 다른 눈으로 바라볼 때, 책은 더 이상 개인의 언어에 머무르지 않는다. 각자의 삶, 문체, 호흡이 교차하면서 책은 입체적인 공간이 된다. 처음엔 이질적으로 보였던 목소리들이 어느 순간 자연스레 어우러지고, 그 조화가 주는 문학적 연대감은 함께 쓰는 일을 계속 이어가게 한다.
하지만 공저는 언제나 쉽지 않다. 모든 동행이 그러하듯, 함께 쓴다는 일에도 조율과 인내가 필요하다. 누구는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또 누구는 짧고 간단한 문장으로 핵심을 겨눈다. 글의 결이 다르고 주제의 무게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충돌이 생기고, 문장이 겹치기도 하며, 어떤 표현은 밀려나기도 한다. 내 문장을 감춰야 할 때가 있고,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할 순간도 있다. 함께 쓴다는 명분 아래 내가 쥔 것을 조금씩 내려놓아야 한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욕심과 조화를 위한 배려가 줄다리기하는 시간. 그 시간이 공저의 본질이기도 하다.
또한 공저는 느리다. 혼자라면 빠르게 지나칠 선택도, 여럿이 함께라면 오래 고민해야 한다. 방향을 정하고 중심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대화와 수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느림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깊어지는 시간이며, 누군가의 삶을 닮아가는 과정이고, 서로의 세계를 천천히 받아들이는 작업이다.
공저는 타인의 글 속에 나를 허락하는 일이다. 내가 쓰지 못한 문장을 다른 이의 손에 맡기고, 서로의 문장이 서로를 덮고 끌어안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 함께 쓰는 이들은 감정과 기억, 문장과 시간 나누는 법을 배운다. 혼자였다면 닫혀 있을 마음의 문이, 누군가의 다정한 글로 인해 조용히 열리기도 한다.
공저는 여러 사람이 빚어낸 하나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매끄럽기보다 약간은 거칠고, 어딘가는 어긋난다. 그러나 그 흔적 속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려는 진심이 깃들어 있다. 함께 쓴 글은 혼자서는 닿을 수 없는 너비와 깊이를 품는다. 같은 주제를 함께 고민하고 썼던 시간은, 글 너머의 신뢰와 관계로 이어진다.
글은 언제나 나를 드러내는 일이다. 하지만 공저는, 나를 드러내면서도 나를 비워내는 일이다. 그 비움 속에 다른 사람의 문장이 들어오고, 함께 쓰는 사람들은 한 권의 책 안에서 서로의 세계를 살아본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소중한 글쓰기.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쓰면서 서로에게 닿으려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글쓰기. 그 흔적 속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글쓰기. 그것이 공저의 진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