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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작성하기

책 구성을 위한 정보 1

by 김경희

프롤로그는 글을 여는 대문이다. 독자가 책의 첫 장을 펼치기 전, 마음 한 자락 내어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이 짧은 글의 힘에 달려 있다. 프롤로그는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마치 집 앞에 놓인 초인종처럼, 누군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눌러줄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할 때에도 프롤로그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책을 낼지 말지, 첫인상만으로 판단해야 하는 경우, 그 기준점이 바로 프롤로그가 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장력, 감수성, 주제 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 독자를 향한 첫 문이자, 출판사를 향한 첫 설득의 언어. 그래서 프롤로그는 짧은 글이지만, 전심(全心)을 담아야 한다.


나는 책의 원고를 시작할 때 언제나 프롤로그부터 적는다. 본문을 쓰기 전, 왜 이 글을 시작하는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어떤 감정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지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 묻는다. 때로는 프롤로그 쓰는 일이 본문에 실릴 한 꼭지의 글을 쓸 때 보다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다. 어눌한 문장을 되뇌고 고치고 다시 쓰고, 또 지우며 내가 품은 이야기의 씨앗을 붙잡는다. 이렇게 어렴풋한 감정이 방향이 되고, 방향은 곧 길이 된다.


함께 글을 쓰고 있는 남편은 이런 내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언제나 체계적인 사람이다. 목차를 먼저 짜고, 각 장의 구성을 계획한 다음, 전체 흐름을 파악한 후에야 프롤로그를 쓴다. 전체 글의 흐름을 파악한 후에 독자에게 어떤 문으로 초대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 방식도 분명 타당하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에게 프롤로그는 문이기 이전에 씨앗이다. 글 전체를 품고 자라나게 할 정서적 뿌리 같은 것이다. 그래서 먼저 써야 한다. 처음부터 이 글이 무엇을 품고 있는지 알아야, 그다음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롤로그는 때로 편지처럼 시작된다.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 솔직하게 고백하며, 얼굴도 모를 독자에게 마음을 건넨다. 누군가는 이런 고백에 이끌려 페이지를 넘기고, 누군가는 조용히 책을 덮는다. 그래서 프롤로그는 문턱이기도 하다. 문턱은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아야 하며, 독자가 자연스럽게 발을 들일 수 있도록 말의 매트를 깔아 두어야 한다.


때로는 원고 완성 후, 프롤로그를 읽어보면 처음의 감정과 달라져 있음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분명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던 글이, 글을 쓰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으로 나간 적도 있다. 그런 순간, 다시 프롤로그로 돌아간다. 이 글은 정말 내가 바라던 이야기의 방향으로 흘렀는가? 나는 왜 이 문장을 쓰기 시작했는가? 프롤로그는 나에게 있어 끝까지 되짚어야 할, 글쓰기의 윤리이자 중심이다.


프롤로그를 쓴다는 것은, 글을 쓰겠다는 조용한 다짐이다. 어떤 원고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컴퓨터 속에 잠들어 있지만, 프롤로그를 적기 시작하면 이미 글 속으로 발을 들인 나를 발견한다. 이처럼 프롤로그는 글의 세계로 들어가겠다고 스스로에게 선포하는 일이기에 그 선포가 있어야 목차가 떠오르고, 각 장의 이야기들이 하나둘 자리 잡는다.


물론 모두가 나와 같은 순서를 따를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본문을 먼저 쓰고, 흐름에 맞춰 프롤로그를 덧붙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예 프롤로그를 쓰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프롤로그는 단지 서문이 아니라 ‘왜 쓰는가’에 대한 가장 깊고 진솔한 대답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가장 정직한 말로 마주하는 일이다. 프롤로그는 이런 과정에서 첫 고백이 된다. “나는 이 글로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글은 살아 있는 목소리를 갖게 된다. 그러니 프롤로그는 작지만, 가장 뜨거운 시작이다.






프롤로그에 담으면 좋은 내용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책을 쓰게 된 계기와 문제의식을 솔직히 밝히는 일이다.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어떤 필요와 마음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드러낼 때 독자는 작가의 진정성을 느낀다.


둘째, 독자에게 질문을 건네는 것이다. “당신도 나처럼 이런 고민을 해본 적 있나요?” “혹시 이런 경험이 낯설지 않으신가요?” 같은 물음은 책 속의 이야기를 독자의 이야기로 확장시켜, 그가 책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오게 만든다.


셋째, 강렬한 장면이나 작은 사건으로 문을 여는 방법도 있다. 한 줄의 인상적인 문장, 짧은 일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시작하면 독자는 긴장과 호기심 속에서 본문으로 자연스럽게 이끌린다.


넷째, 책이 다루는 주제와 흐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 책이 어떤 길을 따라가며,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독자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은근히 밝혀두면 독자는 방향성을 잃지 않는다.


다섯째, 감성적 분위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프롤로그는 설명서가 아니라 초대장이며, 작은 서정의 문이다. 독자가 “이건 내 이야기일지도 몰라” 하고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따뜻한 어조와 진솔한 고백이 담기면 더욱 좋다.


결국 프롤로그는 책 전체를 압축한 서문이자 독자를 불러들이는 문지방이다. 설명과 안내를 넘어, 작은 설렘과 울림을 전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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