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구성을 위한 정보 2
프롤로그에서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지 충분히 표현했다면, 이제는 마음의 표현이 흘러갈 길을 그려야 한다. 그 길은 단순한 줄 세우기가 아니다. 글의 감정이 물이라면, 목차는 물이 흐를 수 있도록 품어주는 강줄기다. 고여 있던 마음이 흐르기 시작하려면, 먼저 물길부터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목차는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글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향해 가는지를 정하는, 가장 섬세하고도 논리적인 설계 과정이다.
뼈대 없는 집이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단단한 벽돌이라도 질서 없이 쌓이면 그저 돌무더기에 불과하다. 글도 그렇다. 감정이 아무리 풍부해도, 문장이 아무리 정성껏 쓰였어도, 그것들이 어우러질 구조가 없다면 한 권의 책이 될 수 없다. 목차는 여러 개의 글을 하나로 묶는 힘이며, 독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손을 잡아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글의 구조는 인간의 몸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머리부터 목, 가슴, 허리, 그리고 다리까지, 모든 부분이 제자리를 지켜야 건강한 몸이 되듯, 글도 각 장이 고루 숨 쉬고 서로를 지탱해야 한다. 머리만 지나치게 크다거나, 다리가 너무 짧아도 균형은 깨진다. 가슴은 따뜻해야 하고, 허리는 중심을 잡아야 하듯, 목차도 감정의 온도와 의미의 무게가 조화롭게 배치되어야 한다.
우리 몸의 척추가 휘면 몸이 불편해지듯, 목차의 연결이 반듯하지 않으면 글의 흐름이 어긋난다. 하고 싶은 이야기의 어떤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어떤 내용을 중간에, 그리고 마지막에 둘지 고민해야 한다. 독자의 마음이 글을 따라올 수 있도록 감정의 무늬를 길 위에 정갈하게 펼쳐두는 일, 그것이 곧 목차 구성의 본질이다.
나는 종종 책상 앞에 앉아 구성해둔 목차를 가만히 바라볼 때가 있다. 마치 지도처럼, 그 이야기가 흘러갈 길을 그려보며 상상한다. 이 장면과 다음 장면 사이에는 어떤 감정의 다리를 놓아야 할까. 이 에피소드는 정말 필요한가. 그렇게 질문하고 지우고 다시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목차는 하나의 서사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나는 본문을 쓸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목차를 구성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이야기의 흐름, 주제의 명료함, 감정의 일관성. 이 중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점은 이야기의 흐름이다. 삶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듯, 글의 연결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연대기적 배열이 어울릴 때도 있고, 감정의 고조에 따라 재배열해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억지스럽지 않음’이다. 물 흐르듯, 바람 불듯, 독자의 마음이 페이지를 넘기며 자연스럽게 이끌릴 수 있도록 각 장은 서로 부드럽게 이어져야 한다.
그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주제의 명료함이다. 글을 쓰다 보면 처음에 품었던 마음이 희미해지거나, 여러 감정이 뒤섞이면서 중심을 잃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고 싶은 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일수록 ‘내가 이 글을 통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를 되물어야 한다. 분명한 주제가 있어야 각 장의 제목과 내용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중심이 흐려지면, 이야기는 곧 흩어진다. 그 중심을 붙드는 것이 목차이며, 그것이 글 전체의 토대가 된다.
마지막으로 목차를 짤 때 신경 쓰는 점은 감정의 일관성이다. 각 장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도, 감정의 결이 너무 달라지면 글 전체의 인상이 깨진다. 감정은 색감과도 같다. 꼭 한 가지 색으로만 채울 필요는 없지만, 서로 어울리는 색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붉은 감정과 푸른 침묵, 회색의 성찰이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이 되도록, 감정의 톤과 농도를 섬세하게 다듬어야 한다.
목차를 짠다는 건, 혼자 하는 회의 시간이다. 무엇을 먼저 꺼내놓고, 어떤 이야기를 남겨둘 것인지. 어떤 에피소드는 줄이고, 어떤 장면은 더 살릴 것인지. 그 회의 속에서 끝없이 되물어야 한다.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글은 단 한 줄도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차 짜는 일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수없이 다듬고, 지우고, 포기하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며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흐름을 찾아내야 하니까.
생각을 층층이 쌓고, 감정을 가지런히 배치하고, 이야기의 무게를 균형 있게 담을 때,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안은 치열한 사유와 다짐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독자에게 다가가는 가장 논리적인 방식, 가장 따뜻한 준비의 시간이 바로 목차 짜는 일이다.
프롤로그에서 시작된 뜨거운 마음은 목차라는 틀을 통해 형체를 갖게 된다. 이런 형태가 있어야 비로소 문장들이 길을 걷는다. 그래서 목차는 작가의 글이 집을 짓기 위한 첫 번째 도면이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가장 먼저 그려야 할, 가장 소중한 설계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