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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짓기

책 구성을 위한 정보 2

by 김경희

<마음을 요약하는 한 문장 >


책의 제목은 작가의 영역이기도 하고, 동시에 출판사의 영역이기도 하다. 제목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글이 담고 있는 전체의 세계를 응축한 한 문장이자 책의 얼굴이다. 글 전체를 꿰뚫어야 하며, 독자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하고, 서점의 수많은 책 속에서 단번에 눈에 띄어야 한다. 그래서 제목을 짓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복잡한 감각 작업이다.


작가에게 제목은 글의 마지막 고백에 가깝다. 글을 다 쓰고 나서야 비로소 떠오르는 말들이 있다. 처음부터 제목을 정해두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작가들은 원고를 완성한 뒤에야 제대로 된 제목이 보인다고 말한다. 글을 쓰는 동안 천천히 익혀온 감정과 의미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응결되는 시간. 그래서 제목은 종종 글 전체를 품은 하나의 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첫 번째 책이 나오기 전, 제목을 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아내의 일기장』이라 붙이고 싶었다. 책의 내용을 떠올리면 ‘툭’ 하고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말이었고, 무엇보다 그 책이 시작된 계기 자체가 남편이 내 일기장을 읽고 “이건 책이 되어야 해”라고 말한 순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제목은 남편과 나의 감정과 맥락을 모두 품고 있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다른 제안을 했다. 조금 더 강렬한 제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편집팀장은 책의 메시지를 살리면서도 서점 매대에서 단번에 눈에 띌 수 있는 제목을 원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제목이 『남의 일기는 왜 훔쳐봐가지고』였다. 처음엔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고, 우리 마음에 딱 맞진 않았다. 마치 우리가 써온 글에 맞지 않는 옷을 입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이 세상에 나오고 나서, 우리는 그 제목이 가진 힘을 실감했다. 독자들이 제목을 보고 웃으며 다가왔고, 그 유쾌한 첫인상이 책의 진지한 내용을 가볍지 않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었다. 제목이 곧 책의 문이 되었고, 그 문을 연 독자들은 안으로 들어왔다. 제목 하나가 책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였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책 『맛의 위로』도 나는 ‘이야기가 있는 요리’나 '작가의 부엌'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 요리책을 내고 싶었던 마음을 충족시켜주는 제목이기도 했고, 요리와 산문이 어우러져 독자들에게 푸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판사의 편집자가 내 원고를 읽으며 울다가 웃다가 또 가슴 찡한 순간을 경험하며 위로받았다면서 『맛의 위로』라는 제목을 제안했다. 들어보니 ‘맛의 위로’라는 제목이 ‘이야기가 있는 요리’, '작가의 부엌'이라는 제목보다 더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내가 쓴 글들과 아주 잘 어울렸다.


이처럼 계약 출판의 경우, 제목은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나 기획 방향에 따라 조율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가 출판이나 원고를 먼저 제출하는 방식의 출판이라면, 제목은 작가가 책임지고 정해야 한다. 그 순간, 작가는 단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책의 외피를 설계하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독자에게 인상 깊게 다가갈 수 있는 제목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글을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능력은 작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감각이다. 제목을 붙이는 과정은 어쩌면 글을 쓰는 마음의 마지막 결산이다. 그때 처음의 열정, 중간의 혼란, 마지막의 다짐, 이 모두를 하나의 짧은 문장 안에 녹여내야 한다.


동시에 제목은 독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이 책은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라고 속삭이는 첫 문장. 그러니 단순히 멋져 보이는 말보다, 진심과 매력이 공존하는 제목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독자에게 ‘읽고 싶다’는 감정을 일으키는 첫 번째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책 제목이 곧 마케팅이 되기도 한다. 검색 알고리즘을 고려해 키워드를 넣거나, SNS에서 회자될 만한 문장으로 구성하는 경우도 많다. 다소 계산적인 접근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독자에게 닿기 위한 방식이라면 무시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진심과 출판사의 전략 사이에서 최적의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책의 제목은 타협의 산물이기도 하다. 작가가 품은 마음과 출판사가 기대하는 가능성 사이에서, 가장 적절한 이름을 붙이는 일. 그 이름이 책이라는 긴 여정을 훌륭하게 수행해낼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이 되어야 한다. 독자가 책장을 열기 전, 가장 먼저 마주할 얼굴. 나는 그래서 제목 붙이는 시간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처음으로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는 마음과도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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